아직도 85호 크레인은 도처에서 휘청인다

[희망뚜벅이 김진숙] 재난을 택한 사람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투기자본 매각 반대와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했다. 월요일을 빼고 매일 걸어서 청와대까지 행진 중이다. 2월 7일을 도착일로 하는 행진은 애초 김 지도위원을 포함해 3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50~60명으로 늘어났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지난달 22일부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5명이 단식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행진을 하고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실을 예정이다.

여전한 85호 크레인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그러고는 사지를 번쩍 들어서 내다 버린다. 경호권 발동해 가벼워진 단식자를 들고 나가던 공권력은 계속 “다치시면 안 됩니다”를 연발한다. 그 침착한 말투에 모욕감이 든다. 저 침착한 말투가 서글픈 이유는 감정조차 제거되어 동요하지 않는, 아니 동요할 이유 없는, 그리하여 실제론 이 아우성 속에서도 아무런 상관없는 기계적 관계임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송경동은 외친다. “언론! 어디 있나요?” 계속 몸부림친다. “내 의지에 반해서 날 어디로 보내?” 그러나 그는 순식간에 허깨비처럼 끌려나갔다.

2월 5일 금요일 오후에 김진숙 복직을 요구하며 시민사회 대표로 송경용 신부,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송경동 시인이 박병석 국회의장과 면담했다. 시민사회 대표자들은 박병석 의장에게 김진숙 복직에 관한 국회의 노력을 요청했고, 국가폭력에 의한 부당해고에 대해 국회가 입장을 표명하길 바랐다. 또한 민주화 운동을 인정해 해고 기간의 임금을 지급할 것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기업의 구조조정 시에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에 돌아온 국회의장의 답변은 '기업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전날에 노사 간 교섭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측은 '위로금 지급' 안을 강요했다. 부당해고에 따른 복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렇게 교섭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런데 의장실 면담 중에 한진중공업 측이 일방적으로 교섭을 파기해 버렸린 것이다. 이에 국회의장실에 교섭이 재개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식 46일차인 송경동은 절망에 눈이 돌아갔다. 회사가 성실하게 교섭에 응할 때까지 소금과 효소 같은 최소한의 생명 연장 방법도 끊어버린 채 기다리겠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청와대 앞에서, 동물우리보다 못한 곳에서 천대와 탄압을 받으면서 46일을 굶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장이 거부하고, 정부 여당이 동조해주고 있습니다. 사측은 그 뒤에 숨어 여전히 김진숙과 사회를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다를 거라는 마지막 희망을 내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결정은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음을 밝혀 둡니다."

누가 재난을 택하는가?

김진숙의 복직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 단식에 애가 탔다. 단식하던 사람이 잇따라 쓰러졌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형편없이 망가지고 그을린 얼굴들은 청와대 앞을 떠나지 않았다. 송경동이 노숙으로 단식하는 청와대 앞은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의 한탄으로 쌓아 올린 망루나 다름없다. 더러는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 믿기도 했을 것이다. 며칠 전엔 한 친구가 기타를 들고 단식투쟁자들을 찾아갔다가 질서를 헤치는 물품이라 반입이 금지된다는 경찰과 실랑이를 했다. 멈춰 선 거리에서 외따로 "평화가 무엇이냐"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 앞을 광장으로 부르지 못한다. 오히려 내게 그곳은 더는 걸 것 없는 이들이 유서를 품고 올라갔던 85호 크레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차마 두려워 85호 크레인이라고는 정말이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김진숙이 그리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진숙은 1986년 2월 노조 대의원으로 신분으로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제작해서 배포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고, 해고당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민주화 위원회)는 2009년 11월 2일 해고 등이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고, 2020년 9월에도 복직을 재권고했다.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해고당한 스물여섯 여성 노동자 김진숙, 그의 복직은 인간으로서의 존엄 문제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일은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의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복직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 오랜 단식은 김진숙이라는 개인을 넘어서는 인간과 인간의 연대일 것이다.

그러나 단식하거나 몸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모는 방식으로 투쟁하는 것은, 최소한 인간 존엄성을 모두가 믿(고 있을 거라)는 세계를 가정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절인가? 옆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이 세계는 태연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지 않던가. 자본이나 국가뿐 아니라 우리 역시 더는 사람이 목숨을 건다고 해도 누군가를 압박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거는 투쟁은 사라지지 ‘못’했다.

우리는 그간 '인간은 왜 목숨을 거는가?'라며 질문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누가 목숨을 거는가?'로 물음을 바꿔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목소리의 지분을 받지 못한 자들이 목소리를 가진 존재임을 알리고 세상에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재난을 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느니 스스로 재난을 부여해서라도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사람들, 재난을 택함으로써만 '없는 (안 보이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권한이 없는 사람들,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 시민의 명찰을 하고 있으나 역할이 없는 자들, 국가의 일원이나 국민이 아닌 자들 가운데 나와 당신도 있는 것이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노동자 김진숙 명예회복 및 복직을 위한 긴급 토론회에서 증언 및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이 패배인가?

친구들이 청와대 앞에 모여 단식이라는 재난을 선택한 뒤로, 나는 자꾸 '1991년 봄'을 떠올린다. 민중은 혁명을 고대했으나, 그 세상은 처절한 죽음만을 남기고 여태 도래하지 못했다. 공권력의 강경 진압으로 학생이 죽고, 그에 항의하고 투쟁을 호소하며 분신을 했다.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는 안기부에 불려 나간 뒤 의문사했다. 죽음의 원인을 확인하기도 전에 백골단이 해머로 장례식장 벽을 부수고 들어와 시신을 강탈해갔다. 권력은 목숨을 내건 투쟁에 배후가 있음을 지목하며 환멸의 근거를 마련했다. 효과적으로 민중을 겁박했으며,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으나 승산 없는 싸움에 질린 민중은 투쟁이 재빨리 종결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랐고, 우리는 잇따라 동지를 빼앗기고 나를 쓰러뜨리며 오늘에 닿았다. 오늘(5일) 송경동이 남긴 말의 마지막 문장인 "이 결정은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음을 밝혀 둡니다"라는 말이 끝내 마음에 걸렸던 이유다. 내 결정에 배후가 없음을 밝혀야 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대체 어떻게해야 목소리를 가질 수 있던 말인가?

2003년 10월 17일, 고 김주익 열사(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가 구조조정 반대·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촉구하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다 목숨을 끊었다. 뜨거운 여름을 넘기며 35미터 상공에서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권력은 그를 방치하며 압박했다. 당시는 김진숙 등과 노동법을 함께 공부했다던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대통령, 그 정권이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라며 반 노동자의 입장을 드러냈던 것이고, 이에 힘을 받은 한진 측은 김주익이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교섭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노동자는 허공에 매달린 채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 죽음의 공분조차 봉쇄당하자 동료 노동자 곽재규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동료 곁에 섰다. 김주익에 이어 곽재규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사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사합의가 급물살을 탔고 해고자 전원 복직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김진숙만은 제외되었다. 김진숙은 안 된다고 했다.

어제(4일)도 한진중공업 측은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대신 '위로금 지급' 안을 강요했다. 2008년에도 사측은 김진숙에게 생계비 월 200만 원을 제시하며 복직 투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김진숙은 그들이 강요하는 굴종을 거절했다. 2011년 12월, 사측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내세워 400명의 정리해고안을 발표하자 김진숙은 동료 김주익이 스스로 삶을 끝낸, 바로 그 85호 크레인에 올라갔다. 그리고 허공에서 309일을 살았다. 희망버스를 비롯한 동료시민들의 연대를 끌어냈고, 정리해고가 철회됐다. 이번에야말로 김진숙은 복직되는 듯 했다. 그러나, 김진숙은, 김진숙만은 끝내 복직되지 않았다. 같은 노동자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여성이라서 더 괘씸했다. 감히 파란옷 입은 노동자 주제에 명령에 불족종 했다.

세상을 알기도 전에 멸시를 먼저 만나고,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으므로 절망에도 숨죽였던 가난한 청년들은 얼마든지 많았다. 조국 근대화의 용사로 내몰린 여성들은 더욱 많았다. 그러나 김진숙이 그걸 거부했다. 감히 어린 것이, 감히 여자가 노동해방을 주장하다니, 자본으로서는 김진숙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니 매달 큰돈을 줄 테니 복직 운동을 멈추라고 꼬드겼을 것이다. 김진숙이라는 이름이 돈 몇 푼에 무릎 꿇어야 ‘저 무식한 노동자들의 목적은 돈 몇 푼’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렇게 조롱해야 분을 풀릴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여성 노동자를 꺾지 못했다. 그러므로 안 되는 것이다. 김진숙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패배는 누구의 몫인가? 노동자 민중은 기실 자본에 패배한 적이 없다.

그러니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김진숙은 '기어이 돌아가야' 한다. 85호 크레인에 여전히 내려오지 못한 김주익의 유서처럼,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김진숙이라는 사람의 오랜 싸움이기도 하지만, 실은 노동자 시민의 정신까지 구속하려는 자본 권력과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기 때문이다. 해고와 복직은 정의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과정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싸움의 진실을 알아차린 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거는 것 아닌가.

다시, 망루가 되어버린 그곳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2월 7일에 김진숙은 동료시민들과 함께 친구들이 먼저 와 기다리던 그곳에 닿을 것이다. 하필 그날은 2년 전 나의 친구들이 자본의 약탈에 저항하기 위해 단식하는 몸으로 제주도청 머리 위로 올라간 지 2년째 되는 그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2012년 2월 6일, 제주 제2공항 여론조사를 앞두고 피해지역 성산의 주민들과 시민들은 삼보일배로 제주를 지켜달라며 겨울 찬 바닥을 기고 있다. 2019년 2월 7일 새벽에 관청 옥상에서 바라보았던 세상을 기억한다. 함께 올라간 우리는 모두 아침을 보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아침이 올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아침에 놓여있던 사람들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우리는 처음에 제주 제2공항 문제로 의견을 전하고 싶어 관청 앞으로 달려갔으나, 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접근을 금지당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이 바로 '안 보는 권력'이란 것을 알았다. 보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굶었고, 그래서 관청 옥상에 사다리를 걸었다. 듣지 않고 보지 않는 공권력을 향해 우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런 일은 도청에서 흔하다. 그 아침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오늘도 길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걷고 있지 않는가?

아직도 85호 크레인은 도처에서 휘청인다. 여전히 사람은 목소리를 얻기 위해 자기 몸을 내놓아야 한다. 수십 년 동안 구호가 변하지 않는 완고한 세상에서, 인간은 차라리 재난을 택하고 만다. 그렇게 해야만 겨우 보이는 존재들의 자각 속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인간은 다시 지워진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울며불며 함께 걷는다. 그러니 돌아갈 것이다. 김진숙이 복직하는 그 아침이 올 것이다. 우리의 그 아침은 와야 한다, 기어이.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진숙 지도위원의 2003년 한진 중공업 김주익 열사 장례식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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