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보급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인권으로 읽는 세상]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고민과 과제

정부가 백신 접종 계획을 발표하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고 있다. 당초 백신 개발은 아무리 빨라도 2~3년 이상 걸리리라 예상되었고, 이조차 통상 백신 개발에 걸리는 8년에 비해서 월등히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2~3년도 너무 길다고 느껴질 만큼 전 지구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일까. 각국 정부와 제약회사의 전폭적 지원과 연구 끝에 1년도 되지 않아 백신 개발이 완료되었고, 일부 국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진행 중이다.

백신 개발 소식과 함께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가 조심스레 피어오른다. 그러나 백신 접종에 따른 항체 형성기간이 짧기 때문에 백신이 보급되더라도 향후 몇 년간은 방역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바이러스의 변이로 인해 백신과 면역이 순식간에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전망, 백신의 개발기간이 짧았던 만큼 부작용에 대한 불안도 동시에 존재한다. 시급하게 백신 접종을 시작해야 하며 지금도 너무 늦었다는 언론 보도, 백신 도입은 환영하지만 당장 맞기보다는 부작용을 지켜본 뒤 맞겠다는 여론 조사 결과까지, 백신을 둘러싼 기대와 불안 속에서 다가오는 2월부터 접종이 시작될 예정이다.

백신,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을 수 있을까

작년 12월 18일,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확보 현황과 함께 접종 계획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시점에서 4400만 회분의 백신을 확보했으며, 2021년 2월 말부터 접종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2021년 11월까지 전체 인구 중 60%인 3000만 명의 우선접종대상자에게 접종 완료하는 걸 목표로 하며, 이는 집단면역 형성의 기준인 ‘전체 인구 중 60%의 항체 보유’와 연결된다. 현재까지 정부가 발표한 우선접종순위에 따르면 2021년 1분기에 집단생활시설 거주 노인과 의료진을 시작으로 2분기에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백신 접종이 이어질 예정이다. 의료계 전문가와 보건 공무원으로 구성된 ‘예방접종전문위원회’에서 백신별 공급 시기, 특성, 유통 및 보관 방법 등을 고려해 여타 우선순위를 심의중이라고 알려졌다. 아직 우선접종대상이 구체적으로 확정되기도 전에 개별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자신들의 업무 중요도를 역설하며 우선접종 대상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우선순위인 사람들에게 백신이 잘 가닿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정부가 정책을 펼쳐온 방식을 돌아볼 때 이미 공백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다던 1차 재난지원금은 주민등록기준상 세대주에게만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했기에 주소지가 불명확한 홈리스나 세대주와 관계가 단절된 가족구성원은 수령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정부 주도하에 공적마스크가 배급될 때,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난민은 마스크에 접근할 수 없었다. 우선접종순위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방역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에게 우선 접종한다고 할 때, 동시에 방역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격리병동의 청소노동자나 간병노동자와 같은 비-의료노동자들은 우선 접종 대상이 될 수 있을까? 65세 이상 노인에게 우선 접종한다면, 거주지가 불명확한 홈리스는 어떻게 찾아내 접종까지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전국민 무료 접종이라는 정책은 과연 난민이나 이주민 앞에서도 유효할까? 현재 정부가 제시하는 우선순위 명단만으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백신 접종의 원칙은

현재 백신 우선접종순위를 선정하고 접종을 진행하는 과정은 ‘의료 전문 영역’의 일, 정부와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하면 되는 일처럼 여겨진다. 정부가 제시하는 우선순위 중 의료인과 노인에 대한 우선접종 기준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교정시설을 포함한 집단거주시설, 감염과 치명도가 높다고 알려진 기저질환자, 교육·소방과 같은 소위 ‘필수노동자’를 우선 접종한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이 전 사회 구성원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만큼,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해 의견 개진과 논의를 거쳐야 하는 일이다. 백신과 집단 면역이 개인적 권리가 아닌 사회적 권리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감염병 백신은 항체 보유자를 늘려 집단 면역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백신과 면역이 그저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자격이나 증명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 조금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은 그저 ‘정부가 촘촘히 설계한 방역 체계’를 의미하지 않았다. 거리두기나 잠시 멈춤과 같은 방역 정책을 몸으로 수행해온 사람들의 힘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해왔듯이, 백신을 통한 집단 면역 형성도 수치 뒤에 가려진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백신 접종 과정에서 ‘공공성 강화’와 ‘불평등 완화-사회적 약자 우선’이라는 원칙은, 집단 면역이 상호의존적이고 사회적인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정부의 역할은 백신을 많이 확보해서 잘 보급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선접종순위를 통해서 정말 긴요한 사람들에게 백신이 가닿을 수 있도록, 집단 면역 형성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이나 거부감 없이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히 소통한 끝에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지구적 집단 면역이라는 목표

공공성, 불평등 완화 등 인권의 원칙에 기반한 백신 배분과 접종이라는 원칙은 한국과 같은 개별 국가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왔다. 백신 개발이 한창이던 2020년 여름, 미국, 영국 등 서구 국가에서 경쟁적으로 백신 수량을 확보하는 데 비해 한국 정부가 백신 확보에 미온적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많은 언론이 묘사했듯이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백신 확보는 마치 국가간 경쟁의 장처럼 보였다. 작년 12월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EU, 중동 국가 등에서는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13퍼센트만을 차지하는 부유한 국가들이 개발 예정인 백신의 절반 이상을 구매했다고 한다.

인권의 원칙인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 누구도 혼자서 권리를 세우거나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백신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집단 면역은 일국 차원에서 형성할 수 없기에 ‘백신이기주의’, ‘백신국가주의’는 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안전을 해치는 기제이기도 하다. 제약회사에서 주장하는 지적 재산권도 마찬가지이다. 생명과 안전이 권리라면, 공중 보건의 문제는 기업의 지적재산권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WHO는 세계적 집단 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백신 보급이 개별 국가에만 편중되지 않도록 국제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를 발족했으며 2020년 9월 21일 코로나19 백신의 충분하고 공평한 배분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통해 국제사회의 백신 배분을 위한 다자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백신 확보와 보급을 통해서 집단 면역을 만드는 일은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세우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 그렇기에 백신 우선순위와 접종 계획은 비차별과 상호의존이라는 인권의 원칙에 기반해서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기억하자.

백신과 집단 면역 이후의 사회

백신 접종과 집단 면역이 사회 구성원의 힘으로 안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면, 백신 접종 이후의 사회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간 정부는 철저한 방역, 동선 추적, 전파자에 대한 처벌 등 '코로나가 드러낸 문제'에 대응하기보다는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만 대응해왔으며, 이는 마치 바이러스를 억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착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드러낸 문제에 가깝다. 집단 거주시설이나 거리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받은 사람들의 문제, 성소수자나 이주민 등 특정 정체성을 향한 혐오와 차별, '잠시 멈춤'이 가능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바이러스 이전에도 존재해왔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백신과 집단 면역은 이러한 차이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줄여나가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시, 백신 접종의 원칙과 정부의 책무를 묻게 된다. 배제 없는 백신 접종을 위한 우선접종순위는 무엇일지, 집단 면역을 형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이 가닿을 수 있도록 할지, 집단 면역 이후의 사회는 어떠해야 할지, 정부에게는 이러한 질문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 책무가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대응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작용에 대한 불안, 정보와 소통의 부재, 사회적 신뢰의 저하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이 백신 접종을 꺼리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도 중요할 것이다. 나아가 백신이 또 다른 시민권이나 자격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권리의 분할이나 제한이 아니라 권리의 확장이라는 목표를 확인하자. 백신과 집단 면역은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줄지언정 코로나가 드러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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