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내가 찜했다", "니가 이뻐서 그래"라는 말들의 폭력성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2] 열 번째 이야기

"대학교 1학년. 불안정한데 설레는 시간, 낯설지만 잘해보고 싶은 사람들.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됐어요. 그런데 과 학생회장 선배가 환영회 자리에서부터 계속 저를 두고 '얘, 내가 찜했다'라는 말을 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환영회 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려고 차를 타러 이동하는 중에 제 입술에 돌연 뽀뽀를 했어요. 과 학생회장 선배랑 친한 다른 여자 선배가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분명히 보고 당황한 것 같았는데, 얼른 고개를 돌리더라구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일단 집에 왔는데, 황당하고 속상한 건 물론이고 이제 1학년인데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더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다음 날 과 학생회장 선배랑 다른 여자 선배 봤을 때 기억을 못 하는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대했어요.

그런데 이후로 과 학생회장 선배가 자꾸 카카오톡을 보내서 자기랑 사귀고 싶냐는 둥, 저랑 사귀고 싶다는 둥, 제 볼을 만지고 싶다는 둥 그런 말을 했어요. 이미 있었던 일을 모른 척 해서 화를 낼 수도 없고, 혹시라도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닐까 봐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적당히 좋게 거절하며 지나갔는데 몇 달째 그런 중이고…. 학과에서 제 남자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굴곤 했어요. 안 되겠어서 최근에 직접 말을 해봤는데 무시하고 계속하고 있고 오히려 심해졌어요.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는데, '니가 이뻐서 그런다', '좋은 때다' 같은 말만 하시네요."

예전에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엔 고통을 호소하는 말에 '짓궂은 장난'이란 대답이 흔히 통용됐다. 경미(?)하게는 머리핀을 뺏어 도망치거나 놀고 있는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거나 치마를 걷어 올리는 속칭 '아이스케키' 장난질이 있었다. 심하게는 때리거나 탈의실이나 화장실을 훔쳐보다 걸리는 일이 있었고, 싫다고 해도 계속 따라다니며 추근거리는 일이 있었다. 당하는 사람은 괴로운데, 어른들의 눈에는 그 행위를 하는 아이의 미성숙이 먼저 배려됐다.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니가 예뻐서 따라다니는 거야." "좀 크면 안 그럴 거야." 미성숙한 아이가 저지르는 불쾌한 일은 고스란히 다른 아이의 이해와 인내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때도 늘 의문이었다. 내가 예쁘다 치고, 나를 좋아해서라고 치자. 그런데 나의 예쁨이 왜 다른 사람이 내게 하는 폭력의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되는지,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왜 내가 나를 향한 폭력을 이해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미성숙한 타인이 성숙해져서 나를 가해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라니…. 그런 어른들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다. 안타깝게도 그런 어른들은 사방에 있었다. 집에서, 학교에서, 길에서, 그렇게 미성숙한 누군가가 아직 덜 커서 좋아하는 감정으로든 싫어하는 감정으로든 행하는 폭력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라고 말했다. 아무도 그 폭력으로 고통받는 쪽 역시 어리다는 것을, 미성숙한 개체로부터의 폭력에도 취약한 더 약한 존재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들이 된 지금은 어떨까. 다행히 오늘날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이 같은 일 대게가 '폭력'으로 교육되고 있다. 또 신고가 되면 조사를 해서 분리 조치든 징계나 계도든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있다. 특히 좋아한다며 일방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언동이 그렇다. 더 난감한 것은 '스무 살' 능선이다. 열아홉 살이 스무 살이 된다고 갑자기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피해자가 스무 살을 넘긴 순간, 보호 장막이 이전보다 현저히 걷힌다는 점이다. 특히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고백받는 설렘이 본격적으로 허용되는 시점이다 보니, 누군가 일방적인 감정을 무리하게 표출하거나 이를 반복하는 일들로 발생하는 고통까지도 쉽게 낭만으로 포장되고 치부되는 일들이 생긴다. 더구나 어떤 고백은 거절했는데도 불편하게 이어지는 정도를 넘어 불이익이나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일일수록 피해자가 혼자 감내하는 시간이 길고, '니가 예뻐 그러니 봐줘라'는 말로 취급받기에 십상이다. 피해자가 이런저런 걱정으로 좋게 거절해온 노력은, 시간이 흘러 피해가 중첩돼서 세상에 꺼내놓았을 때 피해자 탓도 있다는 말로 돌아오기 일쑤다.

위 사연에는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는 강제추행의 범죄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가해자의 행위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진 않지만, 피해자가 거절을 했는데도 구애랍시고 했던 말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면 그 표현의 내용이나 빈도, 이를 거절함으로써 일상에서 생긴 불이익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여타 불안감 조성 등의 범죄 행위나 성희롱이라는 불법 행위로 의율될 여지도 있다. 교수 등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사람이 이런 일을 고지받으면 이를 상부에 고지하거나 자체적으로라도 당사자들을 분리 조치하고 조사하여 조치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신고를 억제시키거나 자책하게 만드는 표현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피해자가 신고한 내용이나 이에 대하여 한 부적절한 표현의 수위에 따라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기도 하고, 소속기관의 사용자 책임까지 비화할 수 있다. 그러니 사연 속 피해자가 피해가 중첩된다면 이를 피해로 규정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등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너를 좋아해서 그런다'라며 행해지는 괴롭힘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좋게 거절하는 것은 한두 번이면 족하다. 나는 거절했지만 나를 좋아했던 상대방이 그 마음을 쉽게 접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좋은 친구 관계로 남고자 노력할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바뀌진 않았는지 물어올 수도 있다.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이런 일을 괴롭힘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교제를 거절했는데도 계속하여 사귀고 싶다거나 만지고 싶다는 식의 불편한 표현을 일방적으로 반복해온다면, 이것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의 발현이 아니다. 듣는 이를 위한 배려가 삭제된 말은 무례하다. 무례에 대한 답은 배려가 아니다. 한두 번 좋게 거절했는데도 반복된다면 철저히 무시하거나 더 분명하게 거절해야 한다. 가해자가 언동을 반복하여 나중에 일이 커질 때는, 좋게 한 거절이 발목을 잡는다.

둘째, 거절은 분명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에둘러 한 표현은 스스로를 위해서나 상대방을 위해 좋지 않다. 더구나 상대방이 가해자의 습성이 있다면 제멋대로 해석하고, 나중에 피해가 이어져 사법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길 때 상대방이 제대로 의율되지 않고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들어주게 된다. 호의를 거절할 때 신경 써야 할 것은 표현의 완화가 아니라 정중한 태도다.

셋째, 추행이나 폭행으로 여겨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면 당장 강한 조치에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메일이나 문자, 카카오톡 등 구체적인 문언으로 남겨두자. '여성긴급전화 1366'이나 상담소 등에 상담을 하고 이력을 남겨두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건데 내가 너무 하는 건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 내가 불편하다는 데도 계속 이어질 리가 없지 않겠나. 좋아한다는 말로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언동이 이어진다면, 좋아한다는 그 말은 마음이 아니라 포장지에 불과함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알아야 한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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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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