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 코로나 백신 시대

[안종주의 안전사회] 세계는 코로나 백신 전쟁, 한국도 백신 확보에 국가 명운 걸어야

영국이 9일 코로나 백신 접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세계 각 국은 백신 전쟁에 돌입했다. 백신은 감염병 전쟁에서 핵무기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힘을 지녔다. 코로나가 발생하자마자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등 세계 많은 나라들이 앞 다퉈 총력을 기울여 코로나 백신 개발 또는 백신 확보 전쟁을 벌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백신의 시간이다. 세계는 백신 확보·접종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나뉜다.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이스라엘, 멕시코, 중국, 러시아, 말레이시아, 일본, 베트남, 태국 등 10여 개 이상 국가는 실질적인 코로나 백신 확보 내지 접종 시작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반면 북한, 미얀마를 포함한 다수 개발도상국과 저소득 국가는 사실상 백신 확보·접종 국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부끄럽고 안타깝지만 한국도 아직 여기에 포함하는 것이 합리적인 분류다.

우리나라는 최근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존슨(얀센), 코백스(글로벌백신공동구매프로젝트), 아스트라제네카 등에서 모두 4천400만 명분의 코로나 백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은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한테서만 1천만 명 접종 분량만 계약을 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구두 약속만 받고 정식 계약을 맺지 못해 조만간 들여올 수 있는 분량은 매우 부족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일부 물량만 계약, 살얼음판 위 걸어

하지만 우리의 희망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마저도 아직 개발국인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적 권위를 지닌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의 승인을 받지 못한 단계이다. 임상 3상 관문을 아직 완전히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을 거쳐 시중에 나올지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백신 확보에 정부가 과연 심혈을 기울였느냐는 비판을 일부 전문가와 야당, 언론 등이 거세게 제기하고 있다.

개발과 상용화에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코로나 백신은 미국의 화이자, 모더나, 중국 시노팜·시노백,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등이다. 그 뒤를 미국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얀센이 만드는 백신,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등이 잇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넥신이란 바이오기업이 백신 개발을 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 임상 1상도 마치지 못했다. 2상과 3상을 모두 순조롭게 마치고 심사를 거쳐 시판 허가를 받으려면 일러야 내년 말이고 2022년이 되어야 시장에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현재로서는 외국 백신을 들여오는 길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다.

화이자·모더나 백신은 우리가 아직 정식 계약도 맺지 못했다. 만약에 공급 계약을 맺는다 해도 이미 부자 나라들이 이들 회사가 생산한 백신 물량 대부분을 가져가기로 한 상태여서 우리가 백신을 실제로 개발회사한테서 받으려면 2022년이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본다. 아니면 이미 공급이 확정된 국가들로부터 웃돈 등을 주고 일부를 확보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성과는 불투명하다.

미국, 유럽 선진국 등 봄부터 백신 개발·확보 투자에 올인

코로나가 올 봄부터 본격 유행하자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 백신 접종이라고 보고 그동안 백신 개발과 확보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현재 인구 1인당 캐나다가 10.9회 접종 물량을, 미국이 7.9회, 일본이 2.3회, 그리고 베트남도 1.5회 분의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 인구 3억3000만 명인 미국의 경우 26억 회 이상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했다.

대부분의 코로나 백신은 두 번 접종을 받아야 면역력을 확실히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항체 형성이 1년간 지속된다면 거의 전 인구가 매년 접종을 받아야 한다. 선구매 한 백신이 나중에 안전성과 유효성 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어 이렇게 대량 확보 작전을 벌인 것이다. 미국의 경우 4년 치 분에 해당한다. 백신을 많이 확보하려는 노력이 전쟁처럼 이루어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코로나 백신 전쟁에서 무엇이 먼저 고지를 점령한 국가와 뒤늦게 고지에 오르려고 허덕거리는 국가로 나뉘게 만들었는가? 먼저 돈과 국력을 꼽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 등 선진국들은 부자 국가이다. 이들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백신 개발 선두 회사들에 일찌감치 돈을 대 필요한 물량 이상으로 입도선매했다. 그 결과가 최근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코로나가 대유행을 하고 있는 국가일수록 백신에 대한 갈망이 컸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선진국이면서도 코로나 대유행국가에 속한다. 이들 국가는 어떻게 해서라도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 수렁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목마른 국가가 먼저 우물을 판 것이다.

부자 국가는 아니지만 브라질, 인도 등 인구대국이자 코로나 대유행 국가들은 백신 회사들이 외려 군침을 흘리는 고객이다. 한 국가 당 많은 양의 백신을 공급할 수 있어 구미(歐美) 제약회사는 물론이고 러시아, 중국 백신 회사들도 최근 이들 국가에 매우 유리한 조건들을 제시하며 백신 공급을 타진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백신에 몰두할 이유가 낮다는 안이한 판단이 자초한 결과(?)

이런 나라들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면 안 되었지만 매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었고 백신 확보 성적표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이나 서구에 비해 한국은 부자 국가도 아니고 인구대국도 아니다. 코로나 대유행 국가도 아니다. 여러 모로 백신 확보에 열을 올릴 이유가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6개월 동안, 즉 지난 6월부터 백신 확보에 노력해왔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 견주어 지금의 매우 저조한 백신 확보 성적표를 보면 그동안 과연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 어느 곳에서도 이와 관련해 국민에게 투명하고 자세하게 그 경과를 밝히고 있지 않아 더욱 그렇다.

백신 확보와 관련한 주무 부처가 어디인지, 어떤 부처들이 여기에 관여했는지, 청와대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선진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은 화이자, 모더나 등 여러 백신 개발 회사의 공급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일부는 접종까지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제대로 된 확보조차 할 수 없었는지 등 국민이 궁금하게 여길 사안에 대해 속 시원한 설명이 시급하다.

물론 정부가 확언하고 있는 바대로 내년 2월부터 물량을 확보해 본격 백신 접종에 들어가 1~2개월 안에 즉 내년 3~4월에 4천4백만 명을 대상으로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백신을 접종할 수 있게 되면 이 모든 것은 괜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설혹 그때 코로나가 지금보다 더 유행하더라도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면역을 달성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불신과 불안 등을 일시에 씻을 수 있게 된다.

백신 확보 관련 정보 공개의 투명성이 문제 해결의 열쇠

확진자 발생과 사망자 수뿐만 아니라 집단 감염 상황 등 방역이나 감염병 확산과 관련한 정보를 제때 국민에게 투명하게 밝히는 일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위기 탈출에 가장 중요한 위기(위험) 소통의 알파요 오메가다.

한편에서는 우리가 목을 매달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개발 국가인 영국이나 미국에서 완전히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만약에 세계 최초로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한 뒤 유통 허가를 내주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우려되는 위험을 지적한다. 이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식약처가 철저하게 검증함으로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백신 유효성과 안전성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100% 과학의 영역이다. 정치적 상황에 휘둘려 설마 아직 완전하지 않은 백신을 들여와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점도 식약처와 질병관리청이 자체의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검증을 하겠다는 것을 미리 강조해 밝혀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검증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백신 유통과 관련해 불필요한 잡음과 가짜뉴스, 음해, 루머 등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백신 시대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이다. 만약에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놀라운 속도로 확진자 발생이 줄어드는 국가가 나오기 시작한다고 하자.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코로나 유행이 멈추지 않은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안과 불만이 팽배해 시위와 폭동 등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는 백신 확보에 지금이라도 국가의 명운을 걸고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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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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