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문재인 정부는 이를 남북관계의 전화위복으로 간주했다. 북한의 보건의료 체계가 부실한 만큼, 방역 물자 지원과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겨온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북한의 묵묵부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생산이 본격화되면서 내년에는 이들 물자의 대북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개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가 남북관계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북한의 대처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악성 바이러스 침투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문을 완전히 닫아건 것이다. 또 하나는 외부, 특히 남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은 현재까지 한 명의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이를 희화화하면서 불신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 회의에서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북한이 더 폐쇄적으로 되고 있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발언이었다. 또한 강 장관은 "그들(북한)은 여전히 어떠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믿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강 장관 발언의 취지는 남북한 및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었지만, 사족이 길어지면서 오해를 낳고 말았다.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불필요한 발언을 해서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외교부 장관이 '평론가'가 한 나라의 입장을 대표하는 자리이자 정책 결정 및 실행을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북한도 발끈하고 나서고 말았다. 8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강 장관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는,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며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한 것이다.
이렇듯 강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과 김 부부장의 비난 담화가 맞물리면서 코로나19는 남북관계의 '전화위복'이 아니라 '설상가상'이 될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방역 협력과 대북 지원을 남북관계 회복의 유력한 지렛대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을 거치면서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더욱 위축되었다. 남측의 제안이 "확진자나 사망자가 없다"는 북측의 발표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코로나19를 남북관계의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것은 계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방비 감축을 통해 적절한 군사력 건설과 남북정상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을 동시에 도모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연기 내지 취소하는 것이었다.
민생 수요가 폭등하고 있는 만큼 국방비를 과감히 줄여 인간안보를 돌보는 데에 사용하려고 했어야 했다. 한미 양국 모두 코로나 대처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 만큼 연합훈련도 방역 차원에서 자제했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방역 물자를 받지 않겠다는 북한에 주겠다고 채근하기보다는 북한의 발표를 신뢰하면서 북한의 '요청 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민간단체들의 대북 접촉과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고선 말이다.
그리고 하루 빨리 내년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자제하겠다고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년 1월 북한의 당대회와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방비 지출을 과감히 줄여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는 데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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