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앱으로 만난 그, 성관계 후에 잠수탔어요"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2] 다섯 번째 이야기

디지털시대, 어렵고 시간 걸리는 인연 맺기를 단박에 해결해줄 것 같은 솔깃한 손짓들이 생겨났다. '즉석만남'이나 소개팅 앱, 혹은 게임을 하면서 생성된 대화창들, '밴드' 같은 것들이 그렇다. 대면해서 감수해야 할 것들이 소거된 상태에서,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은 실제인지 확인할 수 없는 '스펙'과 겉모습, 그리고 달콤한 말들이다.

"소개팅 앱을 통해 만나게 되었어요. 그 사람은 저를 처음 본 순간 반했다고 했고, 굉장히 적극적이었어요. 첫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지는데 아쉽다며, 와인 한잔하며 영화 보자고 했어요. 걱정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도 했어요. 저는 너무 늦지 않게 결혼하고 싶기도 했고, 그 사람 조건도 나쁘지 않은데 제게 구애하는 것이 싫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묵고 있다는 호텔에 들어갔는데, 결국 성관계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싫다고 해서 실랑이도 좀 있었지만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로 했는데 계속 뿌리치기 그랬어요. 그런데 막상 그날 이후 연락도 잘 되지 않고 잘 만나지 못하는 중이에요. 속은 것 같아요."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하게 되었고, 데이트 약속을 잡게 되었어요. 두어 번 만난 끝에 상대가 졸라서 저희 집에 들어오게 됐고, 관계를 맺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이 제게 민망한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했어요. 거절하니까 만남을 피하기 시작했어요. 화가 나서 만나서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잠수를 탔어요. 지금까지도 제 연락을 안 받고 있는데. 사랑한다고 속이고 성관계를 하게 만든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하소연을 자주 만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던 초창기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었다. 순수한 마음을 악용하는 상대방이 나쁘긴 한데, 과거에는 합의해서 맺은 관계가 그 후 아예 사귀지 않게 된다거나 급격히 파국을 맞거나 해서 범죄라고 여겨지는 것이 옳은지가 고민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비슷한 사연들을 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악용당한 이들이 입은 내상이 얼마나 큰지를 자주 마주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가 나쁘다고 말하는 행동들이 모두 범죄가 되거나 불법성이 있다고 인정되지는 않는다. 성인 기준 성범죄로 의율되는 간음은 폭행, 협박, 피해자의 항거불능상태, 업무상위력 등이 동원되었을 경우다. 여기에 상대의 마음을 악용하여 속여서 행하는 것은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 이 기준이 꼭 옳은 걸까? 성관계를 목적으로 관계성을 속이는 것이 덜 나쁘다는 것은 누구의 기준일까? 이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받는 상처가 덜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건 누구의 기준인가? 이런 상처를 주는 이들은 타인의 마음을 악용하는 것이 대단한 능력이라거나 속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궤변을 가능하게 하는 건 사회가 가해자에게 사뭇 관용적이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오랜 기간 그런 나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은연중에 '속인 게 나쁘긴 한데 속은 게 더 문제'인 것처럼 한발 물러서 있었다. 그러니 이런 사건들에서 지금까지의 기준이 꼭 옳은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을 꿈꾸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수단을 이용하기 앞서 쉽고 이른 디지털 수단들이 갖는 속성과 그런 온라인 모임과 데이팅 앱 등의 문화를 먼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사람들이 갖는 전반적 특성이 모두에게 100%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어플리케이션들은 상대방이 올려놓은 이런 정보를 손쉽게 검색하고 빨리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갖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자신에게 기반하여, 비슷한 상대방들이 존재할 것이라 믿고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 어플로는 실제 각자 올려둔 스펙을 검증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온갖 검증자료를 올렸다지만 가입한 이와 그 이름으로 접속한 이가 같은 이인지, 검증자료가 실제 위변조 없는 자료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있다고 해서 책임질 주체도 없다. 한편 진지하게 사랑을 꿈꾸는 사람만큼이나, 쉽게 하룻밤 또는 한동안의 섹스파트너를 쉽게 만났다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상담을 하다보면, 사랑과 연애를 목적으로 디지털 어플을 이용했던 여성들이 단순히 육체적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남성들을 만나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적지 않다.

단순히 디지털 만남의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거나 지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런 쉽고 빠른 수단이 갖는 속성과 그래서 거기 어떤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지 알고 이용하든 이용을 자제하든 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성교육이나 성폭력 교육을 하고 있지만, 정작 어떤 경우 범죄가 되는지나 어떤 경우 범죄는 아니지만 인간을 훼손시키는 일인지, 타인의 진지한 마음에 기생하여 타인을 착취하는 일이 얼마나 비루하고 천박한지 가르쳐오지 않았다. 과거 범죄냐 아니냐, 부끄러운 일이냐 자랑스러운 일이냐를 나누는 기준이 가해자의 입장에 편향되어 있어 나타난 오류다. 불편하더라도 현실이라면 이야기해야 한다. 상처 입을 수 있는 입장에서 미리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상처 주는 일이 부끄러운 일임을 가르쳐야 한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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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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