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1월 23일(현지 시각) F-35A (F-35A Lightning II) 전투기에서 전술 핵폭탄 투하 실험을 실시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김정은이 떨 소식"이라고 전했고, <주간동아>는 "평양 지하시설 초토화시킨다"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다.
실제로 미국은 신형 전술핵 개발 이유를 북한에서 찾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2018년 핵 태세 검토(NPR) 보고서에서는 북한의 지하시설을 겨냥해 "이들 시설을 탄착지로 삼는 재래식 및 핵 능력을 계속 배치할 것"이라며 동북아에 비전략 핵무기 배치 가능성도 시사했다. 또한 찰스 리처드 전략사령관은 지난 9월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을 언급하면서 B61-12 등의 저위력 핵폭탄의 현대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이 놓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미 7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신형 핵무기 개발·보유에 나설수록 한반도 비핵화는 멀어지고 핵전쟁의 위험은 높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이 "스마트 핵무기"로 부르는 B61-12의 출현에 대해 국내 언론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B61-12는 주로 적대국의 핵무기 보유고와 같은 주요 군사 시설, 특히 지하 요새를 타격하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다. 이를 위해 정밀유도 장치를 달아 정확도는 크게 높이는 대신에 폭발력은 크게 낮추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폭발력은 다이얼로 조절할 수 있는데 최소 300톤에서 최대 50킬로톤 사이에서 정할 수 있다. 정확도는 원형공산오차(CEP)로 평가할 수 있는데, 기존 B61 핵폭탄은 110-170미터에 달한 반면에 B61-12는 약 30미터에 불과하다고 한다. 군사적 효율성은 극대화하면서 부수적 피해와 방사능 오염은 최소화해 미국의 핵 공격 옵션을 다양화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이 무기는 미국의 현존 전략폭격기인 B-2A와 현재 개발 중인 B-21, 그리고 이중 능력 전투기(dual-capable aircraft)인 F-15E와 F-35A 등에 장착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2020년 상반기에 두 차례에 걸쳐 B61-12를 장착한 F-15E의 비행 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F-35A에서 B61-12 투하 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이 갖는 함의는 핵폭탄을 내부에 장착함으로써 적대국의 탐지·추적을 회피하는 데 보다 용이한 능력을 선보였다는 데에 있다.
미국은 이 폭탄을 두고 "스마트", 즉 영리함을 강조하지만 가장 큰 어리석음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핵무기와 비핵 무기의 경계선을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공격하는 쪽이나 공격받는 쪽 모두에 해당된다. 공격자 입장에서는 '스마트 핵폭탄'이 대량 살상을 야기하지 않고도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만큼 핵무기 사용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
반면 피격자 입장에서는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길 수 있다. 그만큼 피격자의 핵 보복의 문턱이 낮아져 핵전쟁이 일어날 우려가 커지게 된다. 특히 F-35A와 이중 능력 전투기에 핵폭탄이 장착되면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미국의 적대국이 이들 전투기의 출현시 핵폭탄 장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핵전쟁 경계 태세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 핵군축 협상을 벌이면서 전술핵부터 폐기한 것도 이러한 위험성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작고 위험한 핵무기"를 부활시킨 당사자는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선불'로 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오바마가 한 일들을 뒤집는 것을 주특기로 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독 이 무기의 개발만은 계승하고 말았다. 미국의 핵 숭배주의가 정파를 초월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둔 조 바이든 당선자가 그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핵무기와 관련해 바이든의 핵심 공약은 "미국의 안보 정책에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또다시 빈말로 끝날지 여부를 판가름할 핵심 지표가 바로 B61-12이다.
이를 둘러싼 논쟁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민주당 내 진보파는 국방비 감축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B61-12와 같은 신형 핵무기 개발 예산부터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상당수 미국 주류는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위협 대처를 위해 신형 핵무기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군산복합체의 저항 역시 고개를 들고 있다.
향후 미국의 선택은 한반도의 미래에도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B61-12의 본격적인 생산은 2022년부터 예정되어 있다. 이는 한국 대선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한반도 정세가 계속 교착되거나 악화되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미국 전술핵의 한국 내 재배치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정세와 정치의 혼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대안적 담론과 정책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지대가 그것 가운데 하나이다.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방법으로 택하면, 북핵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도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신간 보러가기 :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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