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세상과 새로운 표준, 코로나가 나눌 4가지의 계급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③ 코로나, 세상을 바꾸다(비경제 부문)

코로나19와의 전쟁이 1년을 맞고 있다. 지구상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인류는 자신의 생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 경험은 고통스런 것이었고 대다수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지겹고 불안한 삶이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힙겹게 지내고 있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코로나19에 얼마나 잘 대처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코로나가 일상이 된 현실을 어떻게 현명하게 타개해나갈지를 성찰해야 한다. 정치가 과학을 무시하거나 과학 위에 군림할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코로나19에 잘 대처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시대에 나타난 인간의 군상들은 어떠했는지 톺아보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 불안에 빠진 사람들을 겨냥해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제품과 상품을 파는 장사꾼들과 이들의 홍보꾼으로 전락한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도 다시금 되짚어야 한다. 방역 우선이란 무기를 앞세워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일은 없었는지 살피는 것은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성찰이다.

코로나가 바꾼 세상과 앞으로 바꿀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 지에 대한 통찰과 분석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그리고 각자도생과 각국도생이 아니라 국제협력을 바탕으로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는 한 코로나가 지구를 떠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씩 냉철하고 과학적으로 톺아보고 이를 토대로 코로나 일상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개인과 국가, 세계가 터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코로나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① 오늘은 '코로나 전쟁' 발발 1주기...종군기자가 돌아본 '인간과 인간의 전쟁'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② 코로나 2차 가을·겨울 대유행, 스페인 독감 유행의 재현인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예비 소집일인 2일 오후 대전시 서구 갈마동 한밭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장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염병, 특히 세계적 대유행 감염병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바꾼다. 흑사병이 그랬고, 콜레라가 그랬다. 두창은 말할 것도 없다. 스페인 독감과 에이즈를 빼놓아도 해당 감염병 바이러스들이 섭섭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들 치명적 팬데믹은 각자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주고 있는 감염병이란 타이틀을 이미 거머쥔 코로나19는 지금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보건의료, 과학기술 등 많은 분야를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는 중이다. 또 잠잘 때만 빼고 마스크를 하게끔 하고 악수를 하지 않게 만드는 등 일상생활의 습관과 모습을 이전과는 전혀 달리 만들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가 바꾸었거나 바꾸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고 또 앞으로 어디까지 어떻게 바꿀지를 분석하는 것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대량 실업을 야기하고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비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진단했다.

코로나에 앞서 먼저 앞서 우리 인류를 위험에 빠트렸던 악명의 팬데믹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를 톺아보자. 흑사병을 빼놓고 이를 논할 수 없다.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 유럽을 중심으로 창궐을 한 선페스트, 즉 흑사병(The Plague)은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7천5백만~2억 명을 숨지게 한 역사적 최악의 감염병으로 인류에게 각인돼 있다.

중세 흑사병, 봉건체제를 무너뜨리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1347년에서 1351년 사이 5년 동안에 발생했으니 얼마나 폭발적이고 심각한 대유행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흑사병은 치명적 대유행 감염병 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을 다투는 감염병이다. 검역차단, 즉 콰란틴이란 개념도 흑사병 때문에 생긴 것이다.

중세 흑사병 대유행만큼 사회 변혁을 가져온 감염병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4세기 중세 흑사병의 창궐은 엄청난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재앙이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아시아 일부에서 전체 인구의 4분의 1 내지 절반가량이 죽었다. 인구는 15세기 후반까지 감소했다.

흑사병은 당시 유럽의 인구 구조 자체를 바꾸었다. 이 점에서는 코로나19가 흑사병을 따라가기에는 족탈불급이다. 농노의 급격한 감소로 이들을 기반으로 한 노동과 생산 체계가 무너져 결국 중세 봉건 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

흑사병 이후 노동력 감소는 영지 귀족들의 부와 권력을 잠식하였고 농노들은 소지주 또는 독립된 장인이 되었다. 이는 유럽을 노예무역에 개입하도록 자극하는 촉매 구실을 했다. 사회 질서의 이완은 농민과 노동자들의 봉기를 촉발하였다.

흑사병에 대한 교회의 부절절한 대응은 사람들의 신앙과 믿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흑사병으로 인한 대몰살 자체가 곧바로 봉건 사회를 종식시키거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또는 세속 국가의 등장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의 등장과 다른 많은 변화를 가속화한 것만은 분명하다. 흑사병은 경제, 환경, 인권, 사회 등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미술부터 상업에 이르기까지 유럽인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전염병의 문화사> 아노 카렌 지음, 권복규 옮김, 사이언스북스, 141~142쪽.)

흑사병, 생태계 변화 초래, 유태인 학살 등 인권 유린

흑사병이 환경과 생태계에도 큰 변화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페스트 대유행으로 인한 무수한 죽음이 땅을 비우게 하고 재조림을 촉발함으로써 기후를 차갑게 했다고 믿는다. 이것이 소빙하 시대(the Little Ice Age)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흑사병은 유태인 등에 대한 박해와 인권 유린을 촉발했다. 감염병 역사에서 매우 부끄럽고 떠올리기 괴로운 일들이 이 시기에 벌어졌다. 코로나19로 지난 1년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와 폭력 등은 흑사병에 견주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종교적 열정과 광신적 행동이 흑사병의 여파로 피어났다. 일부 유럽인들은 유대인, 수도사, 외국인, 거지, 순례자, 나병(한센병) 환자, 집시와 같은 다양한 집단이 감염병 대재앙의 위기를 가져왔다며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살육했다. 나병 환자와 여드름이나 건선과 같은 피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유럽 전역에서 살해되었다. 14세기에는 이 괴이한 질병의 창궐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유태인의 우물에 독 타기 등을 질병의 가능한 원인으로 보았고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공격이 독일 등에서 많이 일어났다. 1349년 2월 스트라스부르 학살로 약 2천 명의 유대인이 숨졌다. 1349년 8월 마인츠와 쾰른의 유대인 공동체는 전멸했다. 1351년까지 60개의 주요 유대인 공동체와 150개의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유대인들이 폴란드로 이주하는 등 유대인 공동체의 대부분은 유럽 대륙의 서부에서 동부로 옮기는 대탈주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흑사병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채찍고행단(Flagellant)이라는 매우 독특하고 이상한 종교집단이 탄생했다. 이는 흑사병 유행에서만 일어난 독특한 현상이었다.

역사가들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 대유행이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 대항해 시대를 여는 것을 늦추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 뒤 과도기를 거쳐 숨을 고른 유럽 국가들은 북미와 남미 대륙 탐험과 정복에 나섰다. 콜럼버스가 대표적인 상징 인물이다.

대항해 시대 두창,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초토화해 인구 구조 바꿔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정벌은 두창과 함께했다. 두창 등에 감염된 유럽인들의 발이 닿은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지역에서 그곳 원주민들은 한 세대 안에 열 명 중 아홉 명이 두창이나 이와 유사한 치명적 감염병에 걸려 자신의 아이를 가지기도 전에 죽어갔다.(<전염병과 역사-제국은 어떻게 전염병을 유행시켰는가>, 셀던 와츠 지음, 태경섭, 한경호 공역, 모티브 북, 16쪽.)콜럼버스가 죽은 뒤 20년 안에 벌어진 일이다.

두창에 의해 북남미 대륙에서 벌어진 대재앙은 코르테스를 비롯한 백인들의 황금에 대한 탐욕 등과 맞물려 아메리카 대륙의 인종 구성을 완전히 바꾸었고 번창하던 중·남미의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을 계기로 유럽의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된 원주민들은 그 뒤 50년이 채 되지 않아 인구가 10분의 1로 감소한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인구는 계속 줄어 1620년에는 160만 명가량으로 최저를 기록했으며 그 후 약 30년 동안 회복세에 접어들지 못했다.(<전염병의 세계사>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이산, 224쪽.)

콜레라는 공중보건 개혁, 스페인독감은 마스크 시대 열어

콜레라 또한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7차례나 대유행을 하면서 인류 사회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콜레라의 대유행은 질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miasma, 미아스마) 탓이라는, 히포크라테스 이후 중세까지 풍미했던 인간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영국의 존 스노와 에드윈 채드윅 등은 안전한 식수와 질병 예방을 위한 대대적인 공중보건 개혁 운동과 관련 법 제정 등 시스템 정비를 하도록 만들었다.

20세기 최악의 팬데믹인 스페인독감은 감염병 최초로 마스크 시대를 열었다. 또 대유행 기간 동안 태아였다 출생한 집단은 다른 출생 집단에 견줘 교육 성취도 감소, 신체장애 비율 증가, 소득 감소, 사회 경제적 지위 감소가 나타났으며 감염병 생존자들은 높은 사망 위험에 놓였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에이즈, 즉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유행은 성문화의 변화와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신장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편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온 그 어느 팬데믹 유행 때에도 보지 못한 사회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거의 모든 팬데믹 유행 때 익히 보아왔던 낙인과 혐오,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극도의 마스크 의존 행태와 비대면 사회를 초래했다. 교육, 문화, 스포츠, 쇼핑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접촉 만남과 관람,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 불평등 심화하고 감시·홀로 사회 열 듯

이 때문에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코로나 대유행이 새로운 종류의 노동 계급 분열과 불평등을 초래해 코로나 이후 사회는 (1)원격 근무 가능 노동자(The Remotes), 즉 위기 이전과 거의 동일한 급여를 받는 전문직, 관리직 및 기술 노동자와 (2)간호사, 보육 노동자, 농장 노동자, 식품 가공업체, 트럭 운전사, 창고 및 운송 근로자, 약국 직원, 경찰관, 소방관, 군대 등 필수 노동자(The Essentials) (3)실업자와 무급휴직자 등 무급자(The Unpaid) (4)감옥, 불법 이주자 수용소, 노숙자 보호소 등에 지내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집단(The Forgotten)의 네 가지 계급으로 재구성될 것으로 내다봤다.(‘Covid-19 pandemic shines a light on a new kind of class divide and its inequalities’ Robert Reich, <The Guardian>, 2020.4.26.)

또 사회학자인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코로나 이후 사회는 (1)코로나 19의 확산으로 경제가 L자형 침체의 심연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맞을 경우 도래할 정체 사회, (2) ‘거리두기’ 수칙이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되어 원격교육, 원격근무, 원격거래가 성행하는 비대면 사회, (3) 기존 ‘집콕’ 추세를 가속화해 혼밥, 혼술, 혼거 등을 선호하는 홀로족을 양산하는 홀로 사회 (4) 대인적 행위의 수준을 넘어 데이터 감시에 치중하는 감시 사회 등을 예상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 김문조, <2020 정신건강비전포럼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 자료집, 국립건강정신센터, 2020.11.27.)

이밖에 코로나 이후는 △빅·스마트 정부 △국가 우선주의 △반(反)세계화와 지역화 △탈도시화와 생태주의 삶 추구 △미중 대결에서 벗어나는 탈 패권국 체제 등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코로나19가 세상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는 있지만 이런 근본적인 변화까지 초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효과적 백신의 등장과 신속한 보급으로 앞으로 1~2년 안에 사실상 코로나에서 탈출하게 되면 인류가 다시 코로나 이전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에서 살게 될 가능성도 크다. 코로나19가 바꾸는 세상은 실은 인간이 바꾸는 세상이란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