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조사단 "의료자원이 아니라 '공공의료자원'이 부족하다"

공공병원 의존 취약계층, 코로나19로 사각지대에 내몰렸다

#평상시 몸이 안 좋을 때 주로 국립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이용했다. 위 통증으로 인해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을 찾아갔으나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입원과 치료 모두 거부당했다. 이용 가능한 다른 병원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상황에서 큰 대학병원을 가기에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병원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동자동 사랑방 주민 A 씨)

#심장에 심한 통증으로 인해 병원을 이동하려 했으나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진료가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열도, 기침도 없었지만 '당신들은 거짓말해서 입원할 수도 있고, 속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입원이 불가하다는 전달을 받고 약만 처방받아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후 통증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해진 상황에서 주변의 다른 친구가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하던 도중 사망했다. (이주노동자 B 씨)

코로나19 대확산으로 공공병원이 문는 닫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병원에 의존하고 있던 사회적 취약계층의 건강권은 코로나19 위기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등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은 2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보고회를 열고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공공의료자원 확보를 촉구했다.

공공병원에 의존하고 있던 취약계층...코로나19로 갈 곳 없어져

실태조사단이 발표한 심층 인터뷰에서 쪽방촌 주민, 장애인, 이주민 등은 하나같이 "평소 이용하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이용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0%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쪽방 주민, 노숙인, 이주노동자 그리고 HIV 감염인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은 적은 수의 공공병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에게 민간병원은 부담이 된다. 부담을 감수하고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 해도 수급자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하곤 한다. 취약계층에게는 사실 공공병원 이외에 선택권이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연한 사회적 취약계층 진료거부...코로나19로 심화

빈곤층은 의료급여를 통해 의료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정부는 빈곤층의 기초적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수급권을 적극 보장하기보다는 "수급의 악용 가능성을 막는다"는 이유로 의료서비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시행해왔다.

민간병원에서도 의료급여수급자는 환대받는 존재가 아니다. 조사단은 "민간의료기관에서는 관행적으로 보호자 없는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입원을 거부한다"며 "상당수가 1인가구로 살아가는 의료급여수급자들은 입원보증인이나 간병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보호자를 찾기 어려워 민간병원으로부터 사실상의 진료거부를 당하는 셈"이라고 짚었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일상적인 진료거부는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심화됐다. 조사단은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취약계층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민간병원을 찾는 수밖에 없으나, 코로나19라는 이유로 되레 진료거부와 차별적 조치가 정당화됐다"고 지적했다.

진료거부는 HIV 환자나 이주민 및 난민, 장애인들이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겪어왔다. HIV 환자들은 감염을 이유로 응급수술을 거부당해 영구 장애를 입기도 한다. 이주민과 난민은 코로나19 상황에 기본적인 정보도 공유되지 않았다. 마스크 등 기본적인 방역 비품은 물론 재난지원금, 의료에서의 진료·치료거부를 겪었다.

장애인들도 진료거부를 빈번하게 겪는다. 의료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거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민간 병·의원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가벼운 진료조차 거부한다. 공공연하고 만성화된 진료거부는 코로나19 상황에 더욱 심각해진다.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보고서 발표회 '코로나19와 의료공백, 존엄과 평등으로 채우다'가 2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렸다.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의료자원이 아닌 '공공의료자원'이 부족하다

조사단은 "한국은 의료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 자원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인구 당 병상 수를 비교했을 때 OECD 국가가 평균적으로 인구 1000명당 3.0개의 공공병상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1.3개로 멕시코 1.3개 다음으로 가장 낮다.

조사단은 지난 2~3월 대구·경북에서의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언급하며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인구 240만, 제4의 도시 대구·경북에서 1분기(3월 31일 24시 기준) 8006명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전국의 감염률 중 80%를 차지했다. 심지어 당시 사망자는 154명으로 전국 사망자의 93%를 차지했다.

대구·경북에서 경증환자를 제외한 감염된 환자의 약 4분의 3이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3월초 대구에서 4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을 때 2300여 명은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해야했다.

대구·경북은 병상 수 자체만 보면 결코 취약한 지역이 아니다. 2018년도 기준 지역인구 대비 병상 수를 보면 1000 명당 대구 15, 경북 16.6으로 전국평균 13.6보다 높다.

그러나 대다수가 민간병원 병상이었다. 2017년 기준 대구의 지역 인구 대비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1.48, 경북은 1.71로 전체 병상 수의 10분의 1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이러한 공공병원·병상 부족이라는 구조적인 의료공백으로 인해 3월 중순까지 발생한 전체 사망자 75명 중 17명이 입원도 못한 채 사망했다.

공공성에서 이탈한 의료자원 쏠림현상...의료의 공공성 확보해야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과대안 팀장은 "한국 보건의료와 체계는 민간 중심에 맡겨져 있다"며 "때문에 감염병 확산과 같은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재난 상황에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공공성에서 이탈한 의료자원의 문제는 병상 수에서 드러난다. 한국 병원의 병상 수는 OECD 평균의 2.6배다. 고가의 검사 장비인 CT는 OECD 평균보다 1.4배 많고 MRI는 1.7배나 많다.

최 팀장은 "OECD 보고서에서도 한국에 과잉 공급된 병상과 각종 고가의 검사 장비를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을 정도"라며 "반면 감염병 확산을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공공병상과 음악 격리병상,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즉, 의료자원이 부족한 게 아니라 공공성을 가진 의료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최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경기도만 보더라도 총 65개의 병원이 있으며 2만5000개가 넘는 병상이 있다. 그러나 이중 현재 코로나19 전담병원은 7개의 지역 공공병원, 다 합쳐봐야 1614개의 병상이 전부다. 시설을 비롯해 의료인력 등 모든 면에서 더 나은 94%의 병원을 두고 6%의 공공병원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쏠림현상은 평소 그 6%의 공공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취약계층을 다시 '의료공백'에 처하게 만든다.

최 팀장은 "코로나19에 감염된, 혹은 감염이 의심되는 2000여 명이 입원을 못한 것에 더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공병원이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그곳에 있던 환자들은 치료를 받다가 쫓겨난다"며 "대구·경북 지역의 1분기 초과사망자수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을 제외하고서도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은 이러한 의료공백의 결과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조사에 참여한 김동현 대한역학회 회장은 이에 대해 "코로나19로 전체 의료기관이 방역 대응에 집중하다보니 다른 질환자들의 사망이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허탁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도 "코로나19로 희생된 사람보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컸다"며 "초창기에 대구·경북 중심로 많은 환자가 입원을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현장에선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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