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법률적 오류를 톺아보다

[양지훈 변호사의 법과 책] <9번의 일>·<밤의 마침>·<최단경로>

형사 소송 절차와 내용이 최근 한국 소설에서 이전보다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신문 보도에서 재판이 사회면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사회적 갈등들이 시민들의 토론 등으로 해결되기보다 결국 법적 쟁송으로 비화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좋은 현상일까?) 어찌 되었든 최근에는 장르 문학이 아닌 이른바 순수 문학에서도 형사(소송) 절차나 개념이 훨씬 더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 같다. 문제는 소설 속에서 사용되는 법률 용어나 용례, 개념의 정확성이다. 문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부 내용에서 발견된 법률적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의미있을 것 같아 문학 애호가의 입장에서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해보았다.

▲ <9번의 일>(김혜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밤이 지나간다>(편혜영 지음, 창비 펴냄), <최단경로>(강희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김혜진 <9번의 일>

대기업 노동자가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소재로 한 김혜진의 <9번의 일>(한겨레출판 펴냄)은, 격동의 80년대 이후 등장한 '2019년의 노동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의미와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이 감상을 포함하여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평가는 오로지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일 뿐이지만).

통신설비 보수 등의 일을 하던 주인공은 회사의 명예퇴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몇 차례 인사발령을 받다가, 급기야 회사와 지역 주민이 '혐오시설'의 건설로 인해 대치하고 있던 작업장에까지 배치를 받고 일하게 된다(말하자면 사직을 강제하기 위한 징계성 배치전환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즈음, 소설 속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던 장면에서 작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회사는 주민들의 벌금 일부를 감면해주는 것으로 도의적인 책임을 졌다."(<9번의 일> 236쪽)

회사의 환경 유해 시설 건립에 맞서 싸우던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형사상 불법행위에 따라 처벌받게 되었고 이후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벌금형이 내려졌는데, 여기서 회사가 '주민들의 벌금 일부를 감면'해주었다고 서술한 것이다.

일단 저자는 민사 절차와 형사 절차를 혼동한 것 같다(작가들이 하는 가장 흔한 실수로 민사상 '피고'와 형사상 '피고인'을 혼용해서 쓰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의 실수라고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사절차에서 범죄의 피해자는 범죄자가 국가에 납부하는 벌금에 대하여 어떠한 처분권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범죄의 피해자였던 회사가 국가에 내는 벌금을 '감면'해주는 것 역시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범죄의 피해자가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가해자의 징역형을 감면해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가의 형벌 집행에 대하여 피해자의 의사표시는 법원의 선고 시 양형 사유로 기능할 수는 있어도, 법원의 최종 판결에 대한 처분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사실이 이 소설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작가 역시 정확한 취재 없이 위 장면을 서술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절차의 혼동은, 아래 소설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편혜영 <밤이 지나간다> 중 <밤의 마침>

편혜영의 소설집 <밤이 지나간다>(창비 펴냄)에 수록된 <밤의 마침>이란 단편은, 주인공이 실제로는 강제추행죄를 저지른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을 속이고 자신의 거짓된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히려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는 이야기다. 결국 진실과는 달리 성추행을 당한 실제 피해자가 무고죄로 처벌을 받을 무렵, 검사는 주인공에게 '무고죄까지 가지 말고 적당히 합의하라'는 조언을 하게 되는데, 그는 제안을 거부하고 "벌떡 일어나 검사에게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온다". 이어서 문제의 대목이다.

"기어이 벌금을 다 받아냈지만 그 돈으로 카메라도, 시계도 사지 않는다. 아내에게도 선물하지 않는다."(<밤이 지나간다> 48쪽)

작가는 범죄자가 형벌로 부과된 벌금형에 따라 벌금을 납부하면 그것이 곧바로 범죄 피해자(실은 성추행범이지만 무고죄로 진짜 피해자를 고소하여 벌금을 '받아내려' 한 주인공)의 계좌로 입금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본 것처럼 피해자가 가해자의 벌금을 감면할 수 있다는 오류보다 더 큰 오류라고 하겠다. 앞서 본 것처럼 범죄 피해자가 납부하는 벌금은 국가에게 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결정적인 사실관계를 잘못된 법률 지식에 따라 현실과 완전히 다르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 부분은 소설의 리얼리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강희영 <최단경로>

기성 소설가가 아닌 신인 작가의 소설에서도 법률적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제25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강희영의 장편소설 <최단경로>(문학동네 펴냄)에는 법률 용어의 오류가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로도 그곳은 한동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피의자의 항소이유 때문이었다. (중략) 그는 지난달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사고를 당한 독일인 유학생을 참고인으로 신청했다."(<최단경로> 102쪽)

이 소설의 공간은 네덜란드이긴 하지만, 네덜란드의 수사와 재판 절차 등 형사소송에서의 흐름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2011년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제26집) '네덜란드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의 지위'(하재욱, 2011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제26집) 참조) 여기서 우리 형사소송법을 전제로 위 내용을 검토해보면, 본문 중에 "피의자의 항소이유"는 그 자체로 잘못된 용어다. 피의자는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되면 그 신분이 '피고인'으로 바뀌므로 "피고인의 항소이유"가 맞는 표현이다. 아직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는 지위에 있는 피의자는 1심 재판에 대한 불복인 항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의자의 항소이유는 법률상 '형용모순'과 같은 표현이다. 또한, 재판 절차에서 사건 관계인을 소환하여 신문할 때 그의 신분은 참고인이 아니라 증인에 해당하므로, 위에서 지적한 두 번째 문장은 우리 형사소송법상 '증인'으로 바뀌어야 옳은 표현이다.

이상 살펴본 세 소설에서 나타난 법률의 오류가 소설적 장치로써 어느 범위 안에서 허용되어야 하는지, 이른바 '문학적 허용'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지적을 했다. 다만, 이 지적들이 작가들에게 상처만을 주는 것이라면 애호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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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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