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의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의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시 내년 상반기까지 북미대화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이 대북정책 재검토와 한반도 및 동아시아팀을 구성하는 데에 6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예를 들어보자. 2009년 1월 20일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출범 직후엔 대화파인 스티븐 보즈워스를 대북정책 특별정책으로 임명했고 힐러리 클린턴은 2월 하순 동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그리고 보즈워스를 대북 특사로 파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반대 및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 그리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유엔 안보리 회부 등이 맞물리면서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공백기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하나의 가능성'이지 '정해진 미래'는 아니다. 관건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직후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임명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 직책은 상원의 인준을 요하지도 않는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에게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조속히 임명해 한미간의 정책 협의에 나서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이 밝힌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와 닮은꼴
또 하나의 관심사는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때의 '전략적 인내'를 답습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문재인 정부 안팎에선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는 북한이 핵보유국이 아니었던 반면에 현재는 미국 본토에 위협을 가할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만큼 전략적 인내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주된 근거이다. 또한 미국 조야에서도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만큼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표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이를 답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바이든이 대선 후보 때 밝힌 대북정책 방향이 전략적 인내와 흡사하다. 그의 대북정책 방향은 2020년 3월 <뉴욕타임스>와 서면 인터뷰에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개인적인 외교를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다만 "트럼프처럼 보여주기식 헛된 만남이 아니라 비핵화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실질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김정은을 만날 의사는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은 10월 22일 마지막 TV 토론에서도 "김정은이 북한의 핵 능력을 감축하는 데에 동의한다면"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정상회담은 임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정상회담을 통해 성과를 만들려고 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차이가 있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이 강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강력한 제재를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답한 반면에, '클린턴 대통령이 시도했던 것처럼,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동결할 경우 상응조치로 점진적인 제재 완화를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제재 완화에 앞서 북한이 중대한 핵폐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2020년 7월 미국 외교협회(CFR)에 보낸 입장문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그는 "세 차례의 TV용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낸 것이 없다"며, "하나의 미사일이나 핵무기도 폐기된 것이 없고 단 한명의 사찰관도 현장에 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 1기 시기에 "북한의 능력은 더욱 강해"졌고, "트럼프 덕분에 잔인한 독재자인 김정은은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고립된 부랑아가 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마지막 TV 대선 토론에서도 김정은을 "폭력배(thug)"라고 불렀다.
이러한 답변 내용은 전략적 인내와 친화성을 갖는다.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있었던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제재를 유지·강화하면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고 믿거나 믿는 척 하면서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말았다. 그 결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바이든이 지금까지 밝혀온 대북정책의 방향은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이든은 김정은을 "잔인한 독재자", "고립된 부랑아", "폭력배" 등으로 불러왔는데, 이러한 북한에 대한 '악마화' 화법은 전략적 인내의 토대 가운데 하나였다.
바이든과 그의 참모진이 동아시아에서 현상 유지를 선호해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가 부통령으로 있었고 참모진이 고위 외교안보 관리를 맡고 있었던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전략적 인내'로 압축된다.
그런데 전략적 인내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두 정책은 2010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되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북한 위협을 구실로 삼아 한미·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구축해 중국을 견제·포위하는 데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캠프가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초점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친분을 우선시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바이든 집권시 미국은 적극적인 대북 협상보다는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동맹 강화 및 한미일 군사협력 복원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 더욱 높아졌기에 이러한 전망은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수전 라이스, "북핵 감내 가능"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기회로 인식한 기류도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잘 보여준 장면이 2009년 7월 한미일 국방회담이었다. 이 회담에서 마이클 쉬퍼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갖춘 핵보유국이 되려고" 한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협력 강화란 MD를 기반으로 삼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였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에드워드 라이스 주일미군 사령관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은 "3자 MD 협력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good chance)"라고까지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국무장관에서 퇴임한 직후인 2013년 6월 4일 골드만삭스가 주최한 '비공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북한이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는 굳이 나쁘게 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길 만하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비롯한 요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주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북미간에 위기가 고조되던 2017년 8월 10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북한이 금지선을 넘지 않는 한" 북한의 핵무장을 감내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수천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소련을 감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보다 핵 능력이 훨씬 떨어지는 북한의 핵보유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스가 이런 주장을 한 데에는 북핵 감내가 전쟁보다는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깔려 있었다. 동시에 북핵 대처 방안으로 대북 억제력 강화, 미국의 호전적인 언사 자제, 동맹국들과 MD 능력 및 대북 제재 강화, 중국과의 협의를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 제안은 전략적 인내 시기의 대북정책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관건은 내년 초 한미연합군사훈련
바이든의 집권은 한반도 정세의 중대 변수이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바이든의 대북정책도 유동적일 수 있다. 한국 및 북한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전략적 인내'도 오바마 행정부의 자체적인 판단 못지않게 북한의 도발적 언행 및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퇴행적인 선택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많은 이들의 전망처럼 내년 여름까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공백 상태로 이어지면, 그 다음엔 한국이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나쁜 시나리오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최선의 전망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데에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문재인 정부가 내년 2-3월에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선제적으로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바이든의 미국과 한반도(3)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취소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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