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출판물도 여럿 나왔다. 그 중에는 그의 결단을 현대판 영웅담 비슷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포착하려는 시도들도 있는 듯하다. 그러자면 물론 당시의 노동운동부터 다시 바라봐야 하겠지만,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그 시대 정치권의 반응과 동향이다.
전태일의 죽음이 있고 나서 약 반 년 뒤인 1971년 4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와 신민당의 김대중이 맞붙었고, 이때 김대중 후보를 어렵게 이긴 박정희는 곧바로 유신 독재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한데 1970년 9월에 이미 신민당의 '40대 기수' 대선 후보로 뽑힌 김대중은 1971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태일 사건은 대선을 앞둔 당시 한국 정치의 뜨거운 분위기와 아주 긴밀히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전태일 정신 계승"을 밝힌 김대중 후보 진영은 과연 어떤 공약으로 이를 구현하려 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의 죽음이 던져준 충격이 생생했을 그때 한국 사회에서 변화를 내세운 세력이 제시한 대안은 무엇이었던가?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약속한 <대중경제 100문 100답>
김대중 후보 진영의 대안을 보여주는 자료로 지금 내 손 안에 있는 것은 편자가 대중경제연구소로 돼 있고 범우사가 출간한 <김대중 씨의 대중경제 100문 100답>(이하 <100문 100답>)이다. 대선 한 달 전인 1971년 3월에 나온 이 300쪽짜리 문고본은 선거공약집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공약집보다 수준 높게 김대중 후보의 경제 비전을 설명한다.
사실 이 책의 저자를 놓고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대중경제연구소 편"이라 된 것으로 봐 김대중 후보가 홀로 직접 쓴 책이 아님은 틀림없다. 한창 선거운동으로 바쁠 때이니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누가 주 저자일까? 이에 대해,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좌파 경제학자 박현채 선생이 실제 저자였다는 증언이 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김대중 후보와 여러 정책 보좌진의 집단 저작으로 봐야지 박현채만의 작품이라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100문 100답>이 김대중 자신의 오랜 고민과 당대 남한 좌파 경제학 역량이 만나 이뤄낸 결실이라는 점이다. 이희호 여사도 "남편이 ... 김병태, 정윤형, 박현채, 최호진 같은 경제학자들과 일대일 토론을 거쳐 대중경제론을 다듬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대선 후보 김대중' 소식에 박정희는 줄담배만 ...", <한겨레> 2015년 8월 2일).
그럼 <100문 100답>은 전태일 사건을 낳은 당대 노동 현장에 대해 어떤 처방을 내놓는가? 당연히 근로기준법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이 법이 노동 조건을 규제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거니와 전태일의 마지막 외침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아니었던가. <100문 100답>은 이렇게 말한다.
"자본 공세의 초점이 되고 있는 근로기준법은 고수되어야 한다. 노동 조건의 개선을 위한 최저한의 요구인 노동기준법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우리들이 목표로서 추구해야 할 강령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의 시행을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최저한의 요구로부터 새로운 요구가 점차 추가되도록 할 것이다." (<100문 100답> 266쪽)
"자본 공세의 초점"이라니, 당시 여론 지형을 알만 하다. 전태일 사건에도 불구하고 자본 진영은 기왕의 근로기준법마저 후퇴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십중팔구 이들은 봉제 사업장 등의 열악한 지불 능력을 이유로 들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계속 틀어막으려 했을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하청 작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가 무시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며, 전태일 열사가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100문 100답>의 노동 공약이 지극히 수세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한데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놀랍게도 <100문 100답>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대안은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다.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 경영 참여라니, 너무 앞서 간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유신 독재를 앞둔 1970년대 벽두의 한국 사회와는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주장이 아닌가.
그러나 <100문 100답>이 제시하는 대중경제론의 틀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중경제론은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이제 독점자본과 국가만이 아니라 대중이 사회 발전의 뚜렷한 한 주역으로 성장했다는 대중사회론을 전제한다. 이런 대중사회론에 따른다면, 노동은 절대로 자본 축적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될뿐만 아니라 그런 피해에 대한 보호만을 요구하는 수동적 주체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국가 및 자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 세력으로서 대우받고 성장해야 한다. 대중사회 상황에서는 자본과 노동 간의 세력 균형이 확보되어야만 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있다.
"계층간의 배분의 조정 문제는 최종적으로는 이익집단의 자유스러운 활동을 보장하는 대중민주주의적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밑받침된 근로대중과 자본가 그룹 간의 힘의 균형관계에 의해 해결되어질 것이나, 우리는 이를 사전적으로 자본에 대한 약간의 제약과 근로자의 기업 경영에의 참여에서 제도적으로 밑받침할 것이다." (위의 책, 62쪽)
노동조합의 경영 참가라는 대안은 이런 입장에서 비롯된 당연한 귀결이다. <100문 100답>은 이렇게 못 박는다.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는 종업원 지주제도의 도입, 노조가 선출하는 직장위원에 의한 직접적 경영 참여, 이윤에 대한 참여에서 보장될 것이지만, 자본과 노동 간의 힘의 균형 관계에 비추어 국가가 이에 개입하여 실질적인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토록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칭 공정위원회를 두어 일체의 기업에게 동 위원회에게로 영업보고서의 제출을 의무 지우는 동시에 이 위원회의 권고가 기업을 규제력을 갖도록 할 것이다." (위의 책, 268쪽)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1970년대 벽두에 세계 곳곳에서는 전후의 제도적 족쇄를 깨고 점점 더 사회를 압도하는 힘을 과시하는 대자본에 맞서 여러 대안이 등장했다. 영국 노동당에서는 주요 대기업의 국유화와 산업민주주의를 결합하려는 구상이 힘을 얻었고, 스웨덴 노동운동에서는 노동자들을 각 기업의 최대 소유주이자 주요 결정권자로 만드는 임노동자기금 구상이 대두했다.
<100문 100답>의 지향은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의 한국판이었다. 이를 알아야 우리는 대선 뒤에 박정희가 부랴부랴 유신 독재를 밀어붙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좌파-노동 진영의 대안들에 맞서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가 전개돼야 했던 것처럼, 유신 시대는 <100문 100답>이 가리키는 출구를 봉쇄하기 위한 저들 나름의 결단이었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평화시장'에 대한 대안은? - 노동이 주도하는 플랫폼 산업
50년 전에 당시의 야당이 내놓은 경제 대안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그 역사적 후계자인 정당과는 별 상관이 없다. 이제 와서 더불어민주당에게 1970년의 김대중 후보에게 배우라고 이야기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실은 김대중 자신이 1980년대 미국 망명과 1996-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애초의 대중경제론을 폐기했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신자유주의화한 뒤 김대중의 경제 기조를 충실히 잇고 있을 따름이다. <100문 100답>은 저들의 정통 계보 안에서는 이제 자리가 없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실은 오늘날의 '전태일'들 혹은 '평화시장 노동자'들 때문이다. 전태일 사건이 있고 반세기나 까마득히 시간이 흘렀는데도 노동 현장의 비인간적 현실은 여전하다. 아니, 몰라보게 화려해진 작업장 밖 풍경과 대비되며 더욱 황량하고 살벌해졌을 따름이다. 본래도 산업 재해,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업 재해가 심각한 나라였는데, 최근에는 플랫폼 산업의 확산과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배달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정치 세력과 노동운동이 내놓아야 할 대안은 무엇일까? 물론 노동 조건에 대한 더욱 강력한 규제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입법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50년 전 보수야당의 젊은 후보에게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던 그 정신이 아닐까. 지금의 이 현실을 딛고 나아가야 할 미래 사회에 대한 정확한 방향 측정에 바탕을 둔 과감한 대안 말이다. 그때에 그 대안이 노동조합의 경영 참가였다면, 지금은 무엇일까?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배달 노동이 사회를 떠받치는 필수 노동임을 절감했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론의 온갖 수사에도 불구하고 유통업을 움직이는 것은 이른바 플랫폼들이 아니라 과로하면 죽을 수 있는 인간들, 배달 노동자들임을 확인했다. 이렇게 노동이 중심이 되는 산업이라면, 소유와 경영에서도 노동이 적어도 그만큼은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상태에 도달해야만 플랫폼 산업들은 비로소 인간 세상의 일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이동한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필수 노동자 지원과 해당 산업의 대안적 지배구조로의 전환", <정의와 대안> 2020년 10월호)에서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안을 내놓는다. 그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전국민고용보험 적용"과 "노동조합 강화" 등과 동시에 "정부의 역할을 매개로 노동자의 소유지분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가령 택배 노동자들이 플랫폼, 물류센터 시설, 화물차 등을 집단적으로 보유하게 하는 방식으로 현존 택배 기업들을 노동자 협동조합이나 노동자 소유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1970년에 노동자 경영 참여가 논의되던 상황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택배 노동자들의 지역별 협동조합이 연합체를 이루고 이 연합체가 플랫폼, 물류센터 등을 공동 관리하는 대안 기업을 만들어 기존 택배 기업들과 경쟁하게 만들 수 있다. 혹은 플랫폼, 물류센터 등을 공공이 투자해 구축하고 관리하며 택배 노동자들의 지역별 협동조합이 이와 연계를 맺는 방식을 실험할 수도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와 어울리는 기업 형태는 분명히 작금의 노동 수탈 실험들이 아니라 이런 대안적 실험들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부조리한 현실은, 5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노동을 자본과 대등한 주체로 성장시키는 가장 야심찬 대안을 통해서만 제대로 치유될 수 있다. 노동이 주도하는 플랫폼 산업은 충분히 가능하며, 어쩌면 '유일한' 인간적, 민주적 대안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노동자 경영 참가, 노동자 자주 경영과 생산자 협동조합, 이해관계자 공동 경영과 사회적 소유 기업 등등, 그간 먼지더미에 처박아놨던 말들을 다시 끄집어내자. 그럴 때가 됐다. 이게 우리 시대 진보 정치 세력과 노동운동의 긴급한 과제다. 전태일의 죽음 뒤에 누군가는 곧바로 대중경제론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던 것처럼, 이것이야말로 그의 50주년을 추념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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