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노조는 실제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복수노조 제도 10년 ②] 고광완 민주우체국본부 사무처장을 만나다

2011년 7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됐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을 시 일차적으로 과반수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고 소수노조와의 교섭 여부는 회사가 정하게 하는 제도다.

제도가 이와 같다면, 회사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노조를 과반수노조로 만들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노조가 소수노조가 되면 '소수노조와 교섭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의사 표시로 해당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 속 가정이 아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10년을 돌아보면, 삼성, 유성기업 등에서 실제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해왔다. 소수·미조직 노동자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복수노조 제도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약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결합해 왜곡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5월 회사 입맛에 따라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게 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9월부터는 헌법재판소 앞 1인 시위도 매일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일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민주노조'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왜 폐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민주노총의 법률적 검토 및 주장,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싣는다.

우리나라 우정사업을 책임지는 기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우본, 구 체신청)이다. 우본에는 소속기관을 포함해 약 4만 명의 공무원과 공무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고, 그중 약 2만 7000명이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에 가입해 있다. 우정노조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8년 대한노총 산하 노동조합으로 설립돼 현재 한국노총 소속 단위 노동조합 가운데 최대 규모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우정노조는 오래도록 우본 측과 협조적 관계를 유지해왔고 종종 사측 관리부서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들어왔다. 우정노조 내의 '민주파' 조합원들은 내부개혁과 민주화를 추진했지만 완고한 벽에 부딪혀 한계를 절감한 뒤 2016년 우정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노동조합인 전국집배노동조합(집배노조)을 설립하는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비정규직 및 산하기관 노동자들의 조직과 통합해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산하 업종본부인 민주우체국본부를 세웠다.

고광완 민주우체국본부 사무처장을 만나 우정노조 개혁 투쟁부터 민주우체국본부 결성까지의 분투기와 향후의 전망에 대해 들었다.

김형규 새 사무실에는 처음 와봤는데 깨끗하고 좋습니다. 이사는 언제 하신 건가요?

고광완 저희가 이 사무실을 따내려고 작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중앙우체국 앞에서 200일 동안 천막 농성을 했습니다. 우본은 처음에 세종시에 사무실을 주겠다고 했는데 거기는 조합활동이 완전히 불가능한 곳이었고, 다음에는 왕십리우체국을 제안했지만 조합원들이 오가기에 교통이 불편한 곳이고 무엇보다 집배원이 없는 관서라서 저희가 반대했습니다. 노조는 현장의 조합원들과 떨어져서는 안 되니까요. 지금 충정로우체국 사무실도 좁은 편이고 전국의 조합원과 소통하기 좋은 곳은 아니지만 급해서 임시로 들어왔습니다.

김형규 200일이면 천막에서 겨울을 꼬박 나신 거네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소수노조의 길은 험난하군요.

고광완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우정노조 시절에는 독자노선에 절대 반대했던 사람인데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웃음)

김형규 지금 조합원 수는 얼마나 되나요?

고광완 민주우체국본부에 정규직이 1400명, 비정규직이 500명, 산하기관인 우체국시설관리단 소속이 1300명 정도 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대개 우정노조 소속이었다가 탈퇴하고 넘어오신 분들이에요. 처음 집배노조를 세웠을 때 100명 정도였으니까 정규직 기준으로만 해도 13배 늘어난 셈입니다.

집배노조를 설립하기 전의 상황

김형규 우정노조가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아오긴 했는데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가요?

고광완 제가 입사했던 2003년 무렵만 해도 우정노조는 사측의 관리부서나 다를 바 없었어요. 처음에 우체국에 가니까 우정노조 지부장이 업무배치를 하고 있는 거예요. 관리자한테 '이 사람은 여기 넣고 저 사람은 저기 넣어주세요' 그러는 거죠. 노조 지부장이 아니라 무슨 과장쯤 되는 줄 알았어요. 실제로 많은 우체국에서 지부장은 일을 안 했고요. 요즘은 우리가 문제제기를 세게 하니까 사무 분장은 받고 있는데 제대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부장 선거는 선거라기보다 전임이 후임을 지목해서 승계하는 형식이었고요. 심지어 위원장 선거는 수십 년 동안 삼중 간선제였고 거의 단독 후보로 선거를 치렀어요. 철도노조 삼중 간선제 위헌 결정이 난 뒤에야 간선제로 바뀌었습니다. 다음 선거부터는 직선으로 한다더군요.

김형규 위원장 선거는 삼중 간선제에 정권 교체는 없고 현장의 지부장들은 특혜를 받으면서 사실상 관리자 역할을 해왔다는 거네요. 그럼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사측에 맞서거나 투쟁을 벌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겠어요.

고광완 조합원 절대다수가 찬성했던 작년 총파업도 마음대로 철회하는 판에요.

김형규 우체국 집배원들의 근로조건이나 노동환경이 열악하기로 유명한데 노조는 유명무실했다는 말씀이군요.

고광완 예전 이야기긴 하지만 현장 관리자들은 집배원들을 야, 이렇게 불렀어요.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사람들 앞에 세워두고 인민재판 하듯이 혼을 내고, 책상이나 옷장 뒤지는 것도 일상이었습니다. 노조가 있는데도 노동절 집회를 나가려고 하면 '집회 참가는 불법이다' 이런 공문이 내려왔고요. 업무가 힘들고 노동시간 긴 것은 다 아는 이야기고 그래서 지금도 과로사가 정말 많습니다. 그나마 우리 노조가 생기고 나서 근로조건이나 관리자들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죠.

김형규 유신이나 5공 시절 노동현장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내부적인 저항은 없었나요?

고광완 철도노조가 민주화되니까 그 영향을 받아서 60년 절대권력을 한번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정노조 지부가 300개쯤 됐는데 50명쯤 되는 지부장이 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회유에 넘어가서 유야무야됐습니다. 우정노조는 반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회유했습니다. 제일 쉬운 게 지역이나 중앙의 간부 자리를 주는 거였어요. 회유해도 안 되면 고립시키고 탄압했죠.

집배노조를 만들기까지

김형규 그런 상황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계기랄까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까? 체신민노회 같은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고광완 2000년대 초반에 광주와 서울에서 우정노조에 대항해서 비정규직 복수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상시위탁집배원 노동자 협의회'라고. 그런데 오래 가지 못하고 무산됐어요. 그나마 인천, 서울, 전북에 몇 분이 남았는데 그분들이 모여서 2004년에 현장조직인 '체신민노회'를 만든 거죠. 한 15명 정도 됐습니다.

김형규 정말 소수로 출발하신 거네요.

고광완 한 달에 한 번씩 모였습니다. 평일에는 안 되니까 토요일에 일 마치고 대전에서 모였어요. 밤 10시, 12시에 시작해서 밤새고 새벽 6시, 7시에 끝나면 아침밥 먹고 헤어졌죠. 당시는 일요일도 한 달에 두 번씩 근무했기 때문에 곧바로 출근해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김형규 소수 조직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천적인 활동을 모색했을 텐데요.

고광완 기치는 우정노조 민주화였어요. 직선제랑. 이 두 개를 가지고 위원장 선거에 대응하기 시작했죠. 후보도 냈습니다. 네 번 정도 냈어요. 한두 표 나오고 그랬지만. (웃음)

김형규 간선제니까. 그래도 후보 내면 벽보도 붙이고 그럴 수 있었겠네요.

고광완 네. 그런데 지지부진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기존 인원들이 정년 돼서 나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2013년에 직종개편 문제가 터졌어요. 기능직을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김형규 그런데 일반직이 아니라 우정직으로 바뀌었죠.

고광완 맞아요. 계리원들이 가장 분노했어요. 우체국 가면 창구에 계신 분들요. 그때 계리원들과 함께 '올바른 직종개편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저한테는 충격적인 게 있었어요. 저희는 조직하려면 전화번호를 알거나 직접 우체국으로 찾아가야 하는데 그분들은 인트라넷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소통하는 거예요. 그 무렵 스마트폰이 나오고 밴드도 생기니까, 이거구나 싶었죠.

김형규 직종개편 투쟁은 어떻게 됐나요?

고광완 싸움은 졌어요. 계리원분들께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분들은 따로 노조를 꾸리셨습니다.

김형규 우체국노조죠?

고광완 네. 아무튼 그분들과 함께 싸우면서 깨달은 게, '우리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쟁점을 건드리지 말고 잘할 수 있는 거 하나에 집중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운동연구소'와 집배원들의 고충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2013년 11월에 한 주 동안 세 분의 집배원이 과로사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때 국회 정론관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하게 됩니다.

김형규 그 다음에 토요택배 문제가 터지죠?

고광완 그건 2015년이에요. 토요택배가 잠시 없어졌다가 9월에 다시 부활합니다. 우정노조는 동의해줬고요. 그래서 우리가 따로 집회를 개최했어요. 1차는 서울에서 했는데 600명 정도 모였습니다. 집배원들이 그렇게 모인 게 사상 처음이었죠. 2차는 대전에서, 3차는 부산에서 했습니다.

김형규 그렇게 토요택배 반대투쟁을 하시다가 이듬해인 2016년에 노조를 띄우는데, 제가 짐작하기로는 내부적으로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철도처럼 어쨌든 안에서 뒤집어야 한다. 밖에 나가면 춥고 소수노조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런 입장도 있었을 것 같고요.

고광완 맞아요. 내부개혁파와 독자생존파로 나누어집니다. 1차 집회 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내부개혁파는 2차 집회부터 참여하지 않게 됐어요. 그래서 2차부터는 집회 동력도 떨어지고, 안정된 조직이 아니다 보니까 내부적으로 말도 많았죠. 결국 노조를 세우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시점이 문제였는데, 당시 2015년 말이 단체협약 갱신이라 지금부터 준비하더라도 단협에서 배제되잖아요. 그래서 2017년 말에 설립해서 2018년 단협에 들어가자, 그런 계획이었습니다.

김형규 그런데 왜 2016년에 갑자기 띄우게 된 건가요?

고광완 2015년에는 우정노조 위원장 선거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복수 후보였는데 우리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가진 표가 11표 정도 있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표까지 합치면 30표 정도 됐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던 후보가 9표 차이로 당선됐거든요. 그 후보 측에서 약속한 게 직선제였어요.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니까 직선제는 안 하고 토요택배만 부활시켰죠. 원래는 직선제가 되면 지역본부 두 곳에 후보를 낼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무리하게 중앙선거판에 들어가지 말고 지역부터 변화시켜 나가자. 그런데 직선제도 안 되고 토요택배만 부활시키니까 현장 분위기가 급선회를 하게 됩니다. 독자생존 쪽으로. 아무리 용을 써봐야 어느 세월에…. 게다가 지역본부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지부장들은 여전히 승계, 라인, 이런 게 만연해 있어서 60년 동안 만들어진 판을 쉽게 바꿀 수 없을 거라는 회의가 있었어요.

김형규 지역본부 한두 군데 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데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다?

고광완 철도처럼 탑다운 방식으로 민주화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김형규 철도랑 우정은 쌍둥이잖아요. 기간망이고, 사이즈도 비슷하고, 신분도 공무원이었고.

고광완 그래서 철도분들 모시고 교육도 받고 토론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철도는 조합원이 집중돼 있고 소통망이 있는데 우리는 3000개 넘는 우체국에 산개돼 있다 보니…. 그나마 스마트폰과 밴드가 우리를 살린 거죠. 집배원 밴드에 6000명 정도 가입돼 있습니다.

김형규 조합원이 1,400명이니까 몇 배는 많네요. 그래서 결국 독자생존의 길을 가기로 한 건데, 말이 쉽지 탄압이 말도 못했을 것 같은데요.

고광완 어마어마했어요. 집배노조가 집배원을 위한다고 하니 가입은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우정노조 탈퇴서를 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걸 평소에 말도 함부로 못 붙이는 지부장한테 직접 내야 탈퇴를 시켜줬습니다. 우본 노무관리팀은 우정노조에서 탈퇴서가 들어오면 그제야 우리 조합원이라고 인정을 하고 체크오프를 해줬고요. 이 문제로 우본이랑 엄청 싸웠습니다.

김형규 제가 듣기로 회의실 같은 시설사용도 못 하게 했다고.

고광완 처음에는 우체국에서 허락을 안 했어요. 그때는 공문을 보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때였으니까. 창립총회를 열 회의실도 싸워서야 얻을 수 있었어요. 심지어 부여우체국 지부는 장소를 내주지 않아서 우체국 앞 인도에 앉아서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에 우본이 시민단체들한테서 살인기업특별상을 받고, 그래서 민주노총이랑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도 같이 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김형규 다른 탄압이나 차별도 많았죠? 위원장님 징계도 받으시고.

고광완 위원장님, 수석부위원장님 다 징계하고 멀리멀리 전보 보내고, 심지어 해고된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투쟁과 소송을 통해 원직복직 되었지만요. 조합원들은 힘든 구역으로 옮겨버리고, 우체국에 노조 명패도 못 달게 하고, 우체국 총괄국장이 우리 지부장하고는 면담도 안 해줬어요. 부르는 호칭부터 다릅니다. 우정노조 지부장은 '지부장님'이고 우리 지부장은 무슨무슨 씨라고 부르고.

김형규 그런 상황에서 집배노조를 가입한다는 게 현장의 조합원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결단이잖아요. 우정노조가 그냥 노조가 아니니까. 사실상 관리부서 역할도 했다고 하셨고요. 입사 이래 수십 년간 우정노조 조합원이었고, 지부장은 무섭고, 동료들도 다 우정노조인데, 그런데도 집배노조에 가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면.

고광완 우리가 투쟁을 하면 실제로 근로조건이나 노동환경이 개선되는 우체국들이 있어요. 우리는 문제가 심각한 우체국을 타겟으로 정하고, 가서 싸워서 개선하고, 여론전을 통해 일반화하는 방식을 쓰거든요. 갑질 문제든,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문제든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면 관리자들도 자기 우체국이 타겟이 되지 않으려고 조심을 할 수밖에 없고요.

소수노조가 겪는 어려움

김형규 그래도 소수노조로서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고광완 당연한 거지만 노조에게 제일 중요한 건 교섭권이잖아요. 교섭권이 없다는 게 가장 큽니다. 우리가 여론전이든 뭐든 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면 우정노조가 갑자기 나타나서 성과를 가로채 가요. 요즘은 우리도 세를 좀 늘려서 달라진 부분이 있지만 우정노조는 초기에 우리를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했어요.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홍보해주는 셈이 되니까.

김형규 단체협약 관련해서 공정대표의무위반 같은 문제는 없었나요?

고광완 지난 단협 때는 기준 조합원 수가 240명 정도였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부 사무실을 안 주니까 우리는 전 지부가 우체국 마당이나 주차장에다 천막을 치고 사무실로 썼어요. 그러니까 부속합의 때는 그 시점으로 조합원 수를 산정해서 3~4군데 지부 사무실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형규 그때 지부가 몇 개 정도였나요?

고광완 50여 개 정도 됐어요.

김형규 교섭 과정에서 절차 진행이나 교섭안에 대해 공유해주던가요?

고광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김형규 작년에 토요택배 문제로 파업이 있을 뻔했잖아요. 그때는 분위기가 어땠나요? 협조가 좀 됐나요?

고광완 우정노조는 처음부터 실제로 파업을 할 의사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없었다고 봐요. 우리도 교섭참가노조니까 공동투쟁본부를 제안했더니 우정노조가 받기는 했는데, 그 뒤로는 아무것도 공유해주지 않았어요. 회의를 좀 하자고 해도 안 하고.

김형규 소수노조가 참 서럽네요.

고광완 노조는 노조인데 교섭권이 없으니까. 대화도 안 해주고 결국은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여론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게…. 창구단일화제도가 문제입니다.

김형규 민주노총도 지금 교섭창구단일화제도에 대해 여러 방법으로 문제제기를 하려 하고 있어요. 복수노조는 허용해놓고 정작 교섭은 못 하게 하고. (웃음)

고광완 저희한테는 정말 치명적이에요.

김형규 만약에 우리가 다수노조가 되면 그땐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고광완 창구단일화제도에 맹점이 있잖아요. 사측은 개별교섭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결국 사측 마음대로 하는 거죠. 저는 우리가 다수가 되더라도 우본은 우정노조와 개별교섭을 할 거라고 봐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하는 노조

김형규 최근에 민주우체국본부로 통합을 하셨잖아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광완 사실 저도 비정규직 출신이에요. 일용직으로 시작해서 비정규직 거쳐서 4년 정도 일한 뒤에 정규직이 됐거든요. 우리 조합원 중에 상당수가 비정규직 출신입니다. 차별적인 취급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는 거죠. 비정규직 투쟁 자체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기도 하고. 우본과 맞서려면 단일한 대오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강했죠. 물론 여러 차이도 있지만 대의가 있었던 거예요.

김형규 쉽지 않은 걸음을 내디디셨어요. 실제 통합까지 이루어내셨고요. 우정노조와 경쟁하는 데도 힘이 되겠습니다.

고광완 비정규직이나 산하기관에 계신 분들은 노조가 있더라도 사측의 탄압에 많이 취약하세요. 우체국시설관리단 같은 경우는 지부장까지 해고했고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이제는 정규직과 함께하는 노조가 됐다고 하니 기대감이 크신 것 같아요.

김형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원청과 자회사 노동자들이 같이 노조를 하는 경우가 정말 드물잖아요. 같은 산별노조 소속인데도 지부를 따로 꾸리는 마당에. 정말 모범적인 조직입니다.

고광완 혼돈의 카오스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웃음)

김형규 장기적인 목표가 있으시다면?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 같기도 합니다만.

고광완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교섭대표노조가 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죠. 지금 당장은 죽지 않는 일터, 차별받지 않는 현장을 만드는 거고요. 너무 비인간적이고 구시대적인 노동환경입니다. 바꿔 나가야죠. 인력증원 투쟁도 그렇고 작년에 2500명의 상시계약 집배원과 직접고용 택배원을 전원 공무원화해낸 승리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형규 준비해온 것은 다 여쭸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고광완 우정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는 우본이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합니다. 일용직, 비정규직, 파견노동이라는 분화된 고용 형태가 결국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것이거든요. 통합노조 건설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우체국본부와 함께하는 조합원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많은 것을 배웁니다.

김형규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광완 감사합니다.

우정사업본부의 사례에서 보듯 노동자들이 힘들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행사하려 해도 현행 노동조합법의 교섭창구단일화제도 하에서 소수노조는 단결권 외에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일절 행사할 수 없다. 단결의 궁극적인 목적이 교섭과 쟁의를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데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결권조차 무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민주우체국본부는 오늘도 새로운 지부를 세우고 현장의 악습과 적폐와 싸우며 나날이 더 많은 우정노동자의 신뢰를 얻고 있다. 고광완 사무처장을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한 이는 그가 노조 민주화 투쟁의 산 역사 같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산 역사치고는 인터뷰 내내 한시도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밝은 얼굴이었다. 그와 동지들의 시련과 분투는 한동안 계속되겠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의지와 낙관이 마침내는 승리를 이뤄낼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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