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사'의 나라 미국, 안보 부담 동맹국에 떠넘길까?

[정욱식 칼럼] 바이든의 미국과 한반도 (1) 안보의 경제성

미국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천신만고 끝에 사실상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한반도 정책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전략과 대북정책, 그리고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하지만 이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직면한 거대하고도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해야만 한반도와 직결된 정책 방향도 제대로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미국 안보전략의 화두는 무엇이 될까? 어떻게 표현을 하든, '안보의 경제성'을 피할 수는 없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5성 장군 출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 "미국은 안보와 지불능력(solvency)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며 "사실, 군사적인 힘도 경제력에서 나온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폭등한 군사비를 조절하지 않으면 경제에 큰 부담을 야기하고 이것이 군사력 건설에도 장애요인이 된다는 여긴 것이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재임시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급기야 그는 퇴임 기자회견에선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의 현주소는 어떤가? 과거에 미국 경제가 잘 나갈 때에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 경찰이든 깡패든 나라 밖 일에 적극 개입하는 것에 대해 반감이 크지 않았었다. 하지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장기 전쟁을 치르는 사이에 미국인들의 삶의 질과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뚜렷이 악화되었다.

▲ 지난 7일(현지 시각) 델라웨어 주 월밍턴 체이스 센터에서 조 바이든(왼쪽에서 세 번째) 대통령 당선인과 카밀라 해리스(왼쪽에서 두 번째) 부통령 당선인이 승리연설을 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러한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절망사(deaths of despair)"이다. 절망사는 자살과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을 일컫는데, 미국이 주요 선진국들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절망사로 인해 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으로 미국인들의 기대 수명이 줄어들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18년 동안 사망한 미국인보다 2주마다 절망사로 목숨을 잃은 미국인들이 더 많을 정도이다. 주목할 점은 절망사가 백인 저학력 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를 석권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미국병'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의 최대 피해국이 되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기본적인 생계와 안전을 확보하는 일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오늘날 미국의 위기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대공황 시기 때보다 악화될 공산이 크다.

대공황 당시에는 공공 분야에서 대규모 사업을 일으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봉쇄(Great Lockdown)' 시대이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및 생산이 완료될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간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여의치 않게 될 수 있다. 이는 거꾸로 실업수당이든 재난기본소득이든 정부의 직접 지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 때 첫발을 내디뎠다가 트럼프에 의해 엎어진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의 도입도 시급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안보의 경제성'이 향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많은 미국인들이 질병과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행정부가 나라 밖 일에 대한 개입을 유지하거나 높이면 그 행정부가 정치적으로 무사할 수 있겠는가? 8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국방비를 줄이지 않고 폭증하는 보건의료와 민생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미국의 절박하고도 구조적인 문제는 군사력을 앞세워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추구해온 미국의 관성과 상당한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목표는 정권 재창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원하든 그렇지 않든 아이젠하워가 던진 화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실 아이젠하워의 국정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한 나라가 바로 미국의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이다. 개혁개방의 기수 덩샤오핑은 '중국식 국가핵무력 완성'을 서둘러 끝내고 재래식 군비 부담을 줄여 경제발전에 투입했다. 그리고 경제력이 급성장하자 군사력 건설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세계 최빈곤국 가운데 하나였던 중국은 경제력 세계 2위, 군사력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이러한 현실은 바이든 행정부가 '안보의 경제성'을 외면하면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도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힘들게 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미국은 초당적인 목표를 중국 견제에 두면서 이를 위해 동맹 변화 및 대규모 군비증강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국력 및 패권경쟁의 척도로 더욱 중시되고 있다. 중국보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안보의 경제성'은 바이든 시대의 한미관계 및 한국의 선택과 관련해서도 중대한 함의를 지닐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안보의 경제성'을 추구하는 방식은 비용이나 역할, 혹은 둘 모두를 동맹국이 더 많이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돈을 우선시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역할을 중시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한일간의 역사 갈등 해결을 압박하면서 한미일 군사정보보호약정,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사드 배치를 요구·관철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이었다. 한미일이 MD 자산을 통합하면 경제적인 방식으로 군사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는 그 최대 구실을 북한에서 찾았고 본질적으로는 중국을 염두에 뒀다.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와 "아시아 재균형"을 동시에 공식화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의 전략을 계승·강화해야 한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더욱 강해졌고 중국과의 전략 경쟁도 더욱 첨예해지는 반면에, 군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면,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가중되고 한국이 미중관계의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위험도 커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에 다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한미가 같이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를 추구해 안보 수요 자체를 줄임으로써 군사비 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수단'이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상호간의 위협을 감소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낯선 얘기가 아니다. 미소 냉전 종식 직후 샘 넌과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추진한 것이자 민주당 출신의 현인으로 불려온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의 호소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어질 글 : 바이든의 미국과 한반도(2) '전략적 인내'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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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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