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후 사망 신고' 사태를 키운 진짜 원인은?

[안종주의 안전사회]

지난 한 주 동안 국민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끈 것은 코로나19가 아니라 독감 백신의 안전성 문제였다. 질병관리청이 23일과 24일 전문가들이 참여한 예방접종전문위원회를 열어 독감 예방 접종 후 사망 신고 사례와 백신 접종 간 인과관계가 매우 낮은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예방접종을 계속 하기로 하면서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논란은 가라앉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어르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매년 독감 예방 접종을 받아왔는데 유독 올해 들어 이렇게 안전성 논란이 사회 문제로까지 번졌는지에 대해서는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언론의 과도한 보도로 생긴 시민들의 불안이 백신 안전성과 관련을 짓는 잇단 사망 신고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인천의 한 고등학생이 무료 백신을 접종받고 이틀이 지난 뒤인 16일 갑자기 숨지면서 독감 예방접종 후 사망 논란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어 20일에는 전북 고창에서 70대 여성이, 대전에서는 80대 남성이 각각 독감 백신을 맞은 뒤 숨졌다고 신고한 뒤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접종 후 사망자가 나왔다.

언론은 이를 경마중계를 하듯이 매일 유사 사망자 숫자를 보도했다. 이 보도는 다시 누군가 접종 후 하루 이틀 혹은 며칠 뒤 사망하면 그 가족들이 이를 언론에 제보하거나 당국에 신고하게끔 했다. 24일까지 무려 48명으로 늘어났다. 만약 이 가운데 절반 또는 3분의 1이라도 백신 때문이라면 이는 정말 엄청난 문제다.

백신 접종 후 사망은 위험 인식 높이는 역사적 사례

그동안 백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양한 감염병을 잡기 위해 제조돼 접종됐다. 접종 과정에서 중증 급성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스와 길랑바레증후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해 접종자들이 다수 사망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신 접종 후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작용 사례가 발생한 적이 가끔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지닌 위험에 대해서 실제보다 더 강하게 위험 인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위험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진 바 있다. 백신 접종 후 사망 논란이 빚어지자 일반 시민들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상당수가 접종을 기피하거나 연기한 배경에는 이런 위험 인식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다 일부 전문가가 백신을 만들기 위해 독감 바이러스를 배양하는데 사용하는 유정란 내에 독소나 균이 기준치 이상 존재하게 될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하는 쇼크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밝혀 대중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백신의 출하를 승인할 때 무균검사와 독소검사를 하지만 일부 샘플 검사만 실시하고, 백신 제조사의 생산 과정이나 유통 과정에 있는 백신의 균 또는 독소 여부는 따로 점검하지 않고 있다는 야당의원의 지적 등도 불안 심리를 키웠다.

이런 불안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언론을 통해 증폭되면서 질병관리청 등 정부 당국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와 이것 또한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상당수 접종 대상자들이 독감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일부 전문가들과 전문가단체들은 마침내 일시적 접종 중단까지 요구하고 나서 독감 백신 후 사망 신고 급증 사태는 정치·사회적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10월엔 하루 사망자만 1천5백명, 신고자도 여기에 포함

질병관리청은 독감 예방 접종을 계속하기로 하고 동시에 접종 후 사망 신고 사례에 대해서도 매일 그 수치를 발표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세 차례만 공표하기로 했다. 이 사안이 매일 발표를 해야 할 만큼 긴급 사안도 아니고 예년에도 독감 백신 접종 후 서로 인과관계가 없이 사망한 사례가 연간 1500건 가량 있었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이런 결정을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30만 명가량이 질병과 사고, 고령 등으로 숨지고 그 가운데 10월 무렵에는 사망자가 하루 평균 1천 명가량이나 된다. 다수 전문가와 질병관리청은 이번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신고가 ‘오비이락’ 격으로 접종과 사망 간 선후 관계만 있을 뿐 인과관계를 단정 짓거나 의심할만한 사례는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에서 독감 접종 후 사망 신고 사례가 잇따랐을까? 왜 올해만 유독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그 배경을 확실히 진단해야만 현재 논란도 확실히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또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사 현상도 조기에 해결하고 궁극적으로는 미리 차단할 수 있는 정책 또는 소통 전략을 펼 수 있다.

올해는 다른 때와 달리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독감 백신을 대대적으로 접종하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다른 때와 달리 코로나19와 독감이 이번 겨울에 동시에 유행하게 되면 어떤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한다. 감염병의 쌍끌이 유행, 즉 ‘트윈데믹’의 두려움이 시민들로 하여금 독감 백신 접종 행렬로 이끌었다.

백신 상온 유통과 백색 침전물 사태가 사망 신고 급증의 배경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본격적인 독감 예방 접종을 앞두고 백신 상온 유통과 백신 내 백색 침전물 발생이라는, 안전과 관련될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발생했다. 상당 수 백신은 수거됐다. 이런 백신을 맞고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 많은 시민들의 뇌리에 잠재됐다. 이런 사태는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는 감염병의 쌍끌이 불안, 즉 ‘트윈포비아’ 현상이 퍼져 있었다.

다시 말해 독감 백신 유통업체의 백신 안전 관리와 정부 당국의 백신 유통업체 안전 관리가 매우 허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로 하여금 백신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이것이 곧 이어 발생한 백신 접종 후 사망을 백신 자체의 문제점과 연관 짓도록 했고 여기에 언론의 과잉 의제 설정, 백신 내 독소 등 전문가들의 지나친 최악의 시나리오 제시 등과 맞물려 ‘백신 공포’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위험은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위험 인식은 과학적 분석과 함께 사회적 현상, 심리적 요인 등을 함께 버무려 분석해야 한다. 과잉 위험 인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촉발된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인식이 뇌에 뿌리를 박기 전에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다. 코로나19와 같은 치명적 감염병에 대해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듯이 ‘백신 공포’도 신속 대응이 중요했다. 정부는 바로 이 점에서 최선을 다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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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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