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과 비핵화를 아우를 수 있는 대안

[정욱식 칼럼] 평화협상 개시 선언과 한반도 비핵지대

종전선언이 계속 겉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강한 의지를 피력할수록 국내에서 논란은 커진다. 미국은 비핵화와 연계한다는 방침이고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이와 관련해 이수혁 주미대사는 12일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 고위 관리를 접촉한 결과 북한만 동의한다면 미국은 아무런 이견이 없다고 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관건은 종전선언과 한반도 비핵화 사이의 관계이다. 이와 관련해 이달 중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수뇌부를 만난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은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 과정과 따로 놀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라면서도 "문제는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선후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또는 비핵화와의 결합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관계와 관련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먼저 종전선언을 "북한 비핵화"와 주고받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의 문제이다.

종전선언의 1차적인 취지는 한국전쟁의 핵심적인 교전 당사자들인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데에 있다. 이에 따라 종전선언을 북한에 주는 선물로 보는 것은 종전이 품고 있는 역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제대로 포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인식이 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의 고위관료들도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합의한 표현은 "한반도 비핵화"이고, 여기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의무도 포함된다. 북핵 문제도 마땅히 해결되어야 하지만, 70년 동안 존재해온 미국의 대북 핵위협과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종전선언을 "북한의 비핵화"의 상응조치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게 되면, '종전선언을 했느니 비핵화를 하라'는 식의 일방적인 요구만 난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방주의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다는 것은 지난 30년 동안 톡톡히 목도해온 바이기도 하다.

'종전선언이 비핵화와 따로 놀 수 없는 것은 상식'인데, 이게 잘 안 되는 구체적인 이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둘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문제는 종전선언의 위상과 내용이다. 즉, 종전선언에 실질적인 내용물이 많아질수록 비핵화와의 결합도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다. 즉, 종전선언을 해도 정전협정은 남게 되어 '정치적으로는 종전인데, 법적으로는 정전 상태'가 유지된다. 또한 이번 한미연례안보회의(SCM) 공동성명에도 담긴 것처럼, 한미 양국은 한미연합훈련과 대규모 군비증강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종전선언의 내용은 없고 비핵화 요구만 강해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여 종전선언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대안도 검토하면서 이를 비핵화와의 선순환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종전과 비핵화 방안을 찾아내 둘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법적인 종전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면 가능해진다. 그런데 평화협정 협상 개시부터 타결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진통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비핵화와 연계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정전협정 체결 이래 한 번도 없었던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 선언이다.

평화협정 협상 개시 선언은 내용적으로 종전선언의 취지를 품으면서도 종전선언이 잉태하고 있는 '정치적 종전과 법적인 정전 사이의 어색한 동거'를 피할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 때까지는 정전협정이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과거에 평화협정 협상이 비핵화에 추동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던 만큼, 비핵화 프로세스에도 탄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동시에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비핵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통한 '법적 구속력을 갖춘 비핵화'가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은 남북한이 '지대 안' 당사자로,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5대 공식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지대 밖' 당사자로 참여하는 구도를 일컫는다.

졸저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에서 자세히 다룬 것처럼 이는 충분히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를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로 삼으면 '뭐가 비핵화지?'라는 오랜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비핵화의 출발점과 종착지를 분명히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대북 제재 해결, 평화 체제, 북미수교, 군비통제와 같은 사안들을 풀어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냉정하게 볼 때, 종전선언은 실제로 하기도 어렵고 해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비핵화가 초점과 좌표를 잃은 지도 오래다. 그래서 호소하게 된다. 평화협정 협상 개시와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검토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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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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