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하면 대한민국이 사라진다?

[황재옥의 '한반도 톡']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기우(杞憂)

9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언급한 이후 김종인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월 12일, "종전선언은 대한민국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행위로서,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를 저버리는 반헌법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종전선언을 비판하는 배경과 이론적 근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혹시라도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이는 오늘날의 동북아 국제정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비현실적인 전망이요, 기우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16일 폼페이오 장관과 면담 후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따로 놀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고, 문제는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비핵화와의 결합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북-미의 뜻이 맞아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당장 평화협정 협상을 중단시킬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이 되고. 이를 통해 미국이 북한의 체제안정을 보장해주면, 이에 대한 대가로 비핵화를 성사시키는 내용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순간 비핵화가 마무리되고. 북한이 그토록 갈망하는 북미수교도 마무리되는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종전하고 불가침만 보장해준다면 우리가 왜 핵을 갖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겠습니까"라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와 평화협정을 바꾸고 싶다는 속내를 문 대통령에게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 속에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비핵화의 상관관계가 압축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셈이다.

2018년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의 말의 진정성을 인정했기에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1항)',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2항)', 한반도 비핵화(3항)의 공동선언에 합의한 것이다. 북미수교-평화협정-비핵화가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공동선언은 미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한편 2018년 9월 1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당사자인 남-북-미가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종전선언에 불참할 뜻을 시사했다. 그동안 중국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으로서 종전선언 과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주장해왔던 입장과는 사뭇 변화된 모습이었다. 시 주석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시작점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주체를 남-북-미로 제한했다.

그러나 종전선언 이후 전개될 평화협정 협상 단계에서는 개입하겠다는 취지도 분명히 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러시아는 합의된 공동의 로드맵이 있다. 한 축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다른 한 축으로는 한반도 평화 보장 기제를 건립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즉 비핵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 미국도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데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고,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해 중국은 북한이 바라는 종전선언을 돕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시 주석도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선후관계와 결합정도'를 이해하고 있고, 남-북-미 당사국 3자가 종전선언을 하는 것을 돕겠다고 나서는데, 우리 정치권은 종전선언을 정쟁의 이슈로만 삼고 있다.

혹시라도 김종인 위원장이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수교가 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이 올까 걱정해서, 그 입구에 해당하는 종전선언이 '대한민국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 걱정한다면 이것 또한 기우다.

종전선언으로 시작해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비핵화가 되고 북미수교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주한미군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동안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조건으로 북미수교를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의 동북아 국제정치 구조상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김일성 주석은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를 미국에 보내 미 국무부 차관에게 "미국이 수교만 해주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통일이 된 뒤에도 미군은 조선반도(한반도)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수교만 해준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 오히려 탈냉전 후에도 한반도의 미군 주둔이 동북아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던 북한이 평화협정 협상 과정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북미수교도 물 건너가고 평화협정도 그 날로 중단될 것이다. 나아가 미국의 불가침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북한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미군철수를 가져오고 한반도 전쟁 재발로 이어진다는 공포는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미중관계 때문이다. 빠른 경재성장의 결과로 집중적으로 군비투자를 해온 중국은 2차대전 이후 동북아에서 누려온 미국의 헤게모니(Hegemony)를 넘보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 이래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으려는 미국의 노력은 트럼프 정부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노골화되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포위를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초한 '쿼드 플러스(Quad+) 구상으로 중국 포위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2차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일본 주둔이다. 이제는 중국 때문에라도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주한미군이 바로 중국의 코앞에서 중국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서태평양을 비롯한 태평양 전체가 아직도 미국의 바다로 남아 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미중관계를 '신냉전의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고 할 정도로 미중관계가 복잡해지는 마당에 종전선언으로 주한미군이 철수한다? 걱정 안 해도 될 일이다.

여야가 따로 없이, 온 국민이 나서서 종전선언을 지지해도 속내가 복잡한 미국을 설득하기 모자랄 판에 종전선언을 정쟁의 이슈로 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북미간 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 남북간 관계를 주도적‧자주적으로 풀어가기 위한 전략적 초석이 남-북-미 종전선언 제안이기 때문이다. 이쯤 설명하면 김종인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도 '종전선언은 한국종말'론을 거둬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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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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