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개혁 없이는 우리 사회의 어느 것도 바뀔 수 없다
정권 초기 반짝 새로운 인물들이 기용되는가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자리는 고스란히 관료들로 채워진다.
우리 사회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대통령 한 사람이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채 마치 자기의 수족처럼 온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제왕적 대통령’ 현상과 함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 권력이란 전체 공무원 조직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정권을 잡았으되 곳간 열쇠와 부엌살림은 계속 공무원 집사에게 맡기는 ‘청와대 하숙생 신세’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들은 바뀌지 않은 채 언제나 강고하게 온존하면서 그 핵심적인 자리를 장악한다. 장관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이름을 아는 장관이 거의 없을 만큼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행정부 부처의 실질적 주인은 필연적으로 관료일 수밖에 없다. 환경정책이나 노동정책도 대통령과 장관이 지휘하는 듯 보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불과 몇 가지 정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정책들을 관료들이 행사하고 있다.
국회 역시 겉으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온갖 비난을 모조리 들으면서 정치와 입법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국회 입법관료들이 보이지 않은 실권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사실상 관료들이 지배하는 관치(官治), 관헌(官憲) 국가이다. 이 나라는 대표적인 행정 비대 국가다. 정책 하나하나마다 수백 수천 명의 이해가 걸려 있다. 관료들이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법제가 입헌군주 국가인 일본의 식민지 강점기에 만들어졌고, 그 뒤에도 그것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에 우리 법제에는 관헌국가적 잔흔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을 하고자 하는 자는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행정청의 권한을 간접적으로 규율하는 방식이 그 예이다. 국민은 행정권 발동의 단순한 수동적 존재로 설정되고 있을 뿐이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법’과 ‘규정’이 사회를 일상적으로 지배하게 된 이른바 ’87체제 이후 이들 관료집단의 지배력은 갈수록 확고해져왔다. ‘시험 권력’이 ‘선출 권력’을 사실상 조종하고 지배하는 이러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실종된 사회다.
‘행정’과 ‘사무’ 그리고 ‘규정’만이 군림하다
원래 행정사무 업무란 보조적 업무여야 한다. 그리하여 사무 및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그 명(名; 이름)과 실(實; 내용)이 부합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전반적으로 행정사무 업무가 오히려 상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그 대표적 사례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인사관리와 기획조정 업무를 장악하면서 스스로 법관에 대한 감독기관으로 군림하였다. 한편 독재 권력이 국회를 하수인 혹은 거수기로 전락시키기 위하여 도모한 국회사무처 소속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기제는 국회 입법관료에게 과도하고 ‘위헌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국회 전문위원’이라고 하면 명실상부 각계의 ‘전문가’들이 임명되어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모두 국회에서 순환 근무한 국회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검토보고’라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국회 공무원이다. 미국 의회의 위원회에 근무하는 전문가 스태프 조직은 모두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독일 의회에서 이들 정책 ‘전문위원’은 독일 사회의 각계 전문가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높은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시 정당 소속이다.
미국 의회 소속기구인 법제실의 법제관은 변호사나 법학박사 등 모두 법제 전문가로 구성된다. 반면 우리 국회는 모두 순환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또 미국 의회예산처의 처장은 주로 경제학을 전공한 인사가 임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주로 국회사무처 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 출신이 임명된다.
주객전도이며 본말전도다. 이런 사회는 공공성과 가치와 철학은 사라지고, 대신 오직 사무와 규정이 군림하면서 상명하복과 형식주의만이 만연될 수밖에 없다.
관료에 의존하는 정치는 앞날이 없다
엉망이 된 우리의 정치과 경제, 사회, 노동 그리고 환경문제의 저변에는 언제나 관료집단이 도사리고 있다. 관료집단은 본질적으로 현상 유지와 친(親)재벌 사고방식의 보수적이고 기득권 편향으로서 대부분의 경우 변화와 개혁에 소극적이다. 더구나 외부로부터의 진입이 철저히 차단된 독점구조에서 감시견제 기제가 결여된 채 책임감과 의식의 부재가 더해져 스스로 집단적으로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 등등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이 고착화되고 보수화가 강화되며 한 치의 변화와 개선조차도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은 바로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관료지배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심각하기 짝이 없는 기후 위기의 문제에서도 관료집단은 아무 의식 없이 그저 규정과 관행만을 내세우고 모르쇠, 시간끌기로 일관할 뿐이다. 참으로 우리의 앞날이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제 바로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관료집단을 새롭게 바꿔내야 한다. 더 이상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능력과 의지 모두 쇠락한 낡은 관료조직의 손에 무작정 쥐어줄 수 없다.
명백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관료집단을 새롭게 바꿔내지 못하는 한, 바로 우리 눈앞에 닥친 기후 위기를 비롯해 우리 사회 긴급 과제의 어느 것 하나도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전문가도 아닌’ 관료집단에 의존하면서 그 사고방식조차 포섭된 채 자기들은 정쟁에만 몰두하고 나라의 운명은 관료에 맡기는 정치권의 자세와 관행으로서는 그토록 원하는 ‘민심’도, ‘여론조사 지지’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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