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호트? 더블링? 풀링검사?...한글날, 코로나 용어를 돌아보다

[안종주의 안전 사회] 한글날, 코로나 용어를 톺아보다(1)

말을 다루는 언론, 감염병 우리말 용어 사용은 인색

말과 글은 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말과 글은 정보를 담는 그릇이다. 쉬운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효과적 소통에서 고지를 점령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어려운 말이나 글은 소통의 걸림돌이다.

감염병에는 외국어가 많이 등장한다. 영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의 국민에게 살갑게 다가가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낯설다. 다시 말해 영어로 된 용어라 해도 되도록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소통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어, 즉 말은 인간이 사유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이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영어로는 생각하지 못한다. 영어만 쓸 줄 아는 타인과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몸짓과 표정 등 비언어 또는 몸짓언어(보디랭귀지)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매우 간단한 의사소통만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물과 사건, 현상 등을 설명하고 이해할 때 언어는 생명과 같은 존재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말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쉬운 우리말이 매우 중요하다. 감염병과 같은 과학과 의학의 영역에서는 영어 내지는 외국어가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를 언론 매체를 통해 듣게 될 경우 이해력이 완전히 떨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언론인과 언론사는 언론수용자, 즉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쉬운 우리말로 보도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특히 감염병과 관련한 용어는 고학력자라 할지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평소에 잘 듣지 못했고 학교 등에서도 배우지 못한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감염병 보도 준칙에도 쉬운 용어 사용 권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인들이 지키도록 만든 ‘감염병 보도준칙’ 가운데 기본 원칙에 감염병 관련 의학적 용어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은 감염병 보도 기본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가? 이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감염병 보도준칙

■ 기본 원칙

1. 감염병 보도의 기본 내용

가. 감염병 보도는 해당 병에 취약한 집단을 알려주고, 예방법 및 행동수칙을 우선적, 반복적으로 제공한다.

나. 감염병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이나 장비 등을 갖춘 의료기관, 보건소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 감염병 관련 의학적 용어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일반인들에게 팬데믹(pandemic)이란 용어도 이제는 거의 시사 상식 내지는 일반 상식이 됐다. 하지만 팬데믹이 영어여서 정확하게 어떤 상태를 설명하는 것인지 단박에 모르는 사람도 제법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팬데믹’을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감염병) 세계적 유행’을 ‘에피데믹(epidemic)’의 대체어로 ‘(감염병) 유행’을 각각 선정했다. 이런 내용은 정부가 이를 발표한 2020년 3월 10일 전후해 거의 모든 언론사가 다루었다.

<위키백과(영어)>에 따르면 팬데믹의 pan은 모두를 뜻하는 그리스어 πᾶν에서 유래했고 demic은 ‘사람(demos)’을 뜻하는 그리스어 δῆμος에서 왔다. 우리는 전 세계 여러 대륙 또는 전 세계에 퍼져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펴진 감염병의 유행을 팬데믹이라고 한다. 감염된 사람들의 수가 안정된 광범위한 풍토병(endemic)은 팬데믹이 아니다. 계절 독감의 재발과 같은 안정적인 수의 감염된 사람들을 가진 광범위한 풍토병은 일반적으로 전 세계에 퍼지기보다는 지구의 큰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팬데믹에서 제외된다.

기사 본문에서는 팬데믹을 감염병 세계적 유행으로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팬데믹을 어떻게 우리말로 바꿔 쓰고 있는가? 그것이 알고 싶어 인터넷에서 각 언론사의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정부가 발행하는 '정책브리핑'은 팬데믹을 ‘감염병 세계적 유행’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한겨레21>의 2020년 7월 19일 발행판은 ‘’서현수의 북유럽 정치학‘-‘핀란드 코로나’를 멈춰 세운 34살 산나 마린 총리와 여성 각료들‘이란 제목의 외부 전문가 기고 글에서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이라고 정부가 선정한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뉴스1>도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 세계적 유행이라는 말이 팬데믹보다 길기 때문에 많은 언론사는 제목에는 물론이고 본문 기사에서도 그냥 ‘팬데믹’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하지만 <매일경제>는‘팬데믹 골드러시..금값 2000달러 눈앞 최고가 행진’(2020년 7월 26일자), <헤럴드 경제>는 ‘SK가스, LPG충전소 방역체계 구축..“2차 팬데믹 대비”(2020년 7월 27일자)의 제목과 본문 등에서 보듯이 각각 ‘팬데믹(전 세계 대유행)’과 ‘팬데믹(대유행)’으로 표기하고 있다.

‘새말모임’(어려운 외국어 신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제공하기 위해 국어 전문가를 비롯해 외국어, 교육, 홍보·출판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참여하는 위원회)은 감염병을 포함해 언론과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외국어 따위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정리해 대체 용어를 발표해오고 있다.

새 말 입에 배이도록 언론이 길잡이 구실 해야

국립국어원은 새말모임이 정기적으로 정리한 대체어들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을 통해 알리고 홈페이지에 게재해 시민들에게도 홍보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지구촌에서 대유행을 하고 국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언론이 2020년 1월 말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자 새말모임은 코로나19 관련 새로운 외국어와 어려운 의학 용어 등을 재빠르게 검토하고 있다. 이런 작업에는 대체할 적확하고 쉬운 우리말을 만들거나 선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때 늦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말이란 것은 일반 대중들에게 한번 굳어지면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스를 지금 와서 다른 말로 바꾼다고 하면 큰 혼란이 와 쉽지 않다. 감염병이 확산되기 시작한 뒤에는 아무리 좋은 진단도구나 진단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 확산을 막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새로운 말도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해 입에 배이게 되면 이를 바꾸는 것도 매우 어렵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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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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