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한국 시각) 유엔 연설에서 또다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해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며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한 것이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 특히 일부 보수 언론들은 제대로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문 대통령의 발언을 힐난하기에 바쁘다. <조선일보>는 미국의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의 반응을 소개하면서 "현실성 없는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역시 "미국은 종전선언을 '한국의 어젠다일 뿐'이라며 자칫 실질적인 비핵화는 없이 김정은 체제의 안전만 보장해줄 수 있는 종전선언의 역효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종전선언은 2018년 6월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약속한 바였다. 그리고 북한은 7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의 방북 때 종전선언의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폼페이오는 '선 비핵화'를 앞세워 종전선언을 거부했다. 이는 종전선언을 한사코 반대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도 나오는 '팩트'이다.
미국에선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찬성하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회에서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이 논의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일부 보수 언론은 자신의 구미에 맡는 미국 사람들의 말만 전한다. 그리고 이게 미국의 전체 분위기인 것처럼 포장한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은 다른 각도에서 비판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종전선언에 대한 국내외의 부정적 인식을 의식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이 발언은 폼페이오의 종전선언 거부와 맞물리면서 북한이 종전선언에 흥미를 잃게 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도 있다.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지난 6월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있으나 마나 한"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단계적 군축"을 실현하기로 했던 남북정상 간의 합의가 문재인 정부의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으로 훼손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종전선언은 한국전쟁을 끝내고 공고한 평화를 만들자는 '정치적 신뢰 구축'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종전선언은 추진과 성사 못지않게 그 이후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종전선언을 했는데,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문재인 정부의 역대급 군비증강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종선선언으로 구축된 신뢰는 불신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 것이다.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공식적·공개적으로 거론된 지도 어느덧 13년이 지났다. 2007년 9월 한미정상회담과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을 추진키로 했었지만 이내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국내외 대북강경파들의 종전선언에 대한 체질적 거부감은 여전하다. 정부·여당의 실력과 진정성 부족도 여전하다.
정부와 여당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대통령도 하지 않겠다던 한미군사훈련을 계속하고 5년간 300조 원이 넘는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하면서 종전선언에 대해 북한과 국제사회의 호응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까?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을 만들겠다는 총선 공약을 내걸면서 종전선언과 단계적 군축이 포함된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실효가 있을까?
* 국내외 시민단체들은 한반도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전세계 시민들의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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