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이 알려주지 않는 곳, 남쪽의 최북단

[남북 교류와 만남 읽기] 파주 DMZ와 민북 지역을 가다 ①

지도와 내비게이션의 도움이 제한적인 지역을 가다

2020년 봄 연재 글(파주 임진강이 낯설게 다가온 이유)에서 나는 자유로를 달리면서 그동안 몰랐던 임진강 너머 세 풍경, 북한 지역, 비무장지대, 민북(민통선 이북) 지역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임진강 하구의 중립 지역이 어디쯤인지를 이제야 알기 시작했음을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여름과 가을에 파주 DMZ와 민북 지역을 갈 때마다 나의 무지함과 생각하지 못했던 난관을 만나곤 했다. 그중에 하나이다.

2020년 민북 지역에 대한 구술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 가운데 하나가 있었다. "이 지역(민북 지역)은 내비게이션도 안 되는 지역"임을 말하곤 했다. 간혹 차량용 내비게이션 가운데 안내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대표적인 내비게이션인 T-map에서 민북 지역에 위치한 "통일촌"을 검색하면 가는길에 지나가야 하는 통일대교는 화면에 글자로만 보인다.

▲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으로 민북 지역에 위치한 통일촌을 검색한 화면이다. 대부분의 내비게이션의 통일촌 안내는 통일대교 앞까지만 표시되어 있다.(2020년) ⓒ강주원

그런데 다리 그림은 임진강에 없다. 통일촌으로 향하는 도로도 없는 내비게이션 지도를 보게 된다. 화면에는 통일촌에 도착 표시는 있지만, 통일대교 남단에서 통일촌까지는 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차량은 통일대교 앞에 멈추어야 하고 임진강을 건너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안내는 통일대교 앞에서 멈추어져 있다. 이는 "구글 맵스"도 별반 차이가 없다.

파주의 민북 지역은 분명 대한민국 행정 지역에 속하면서도 지도와 내비게이션의 도움이 부분적으로 제한되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런 경험을 처음 할 때는 민간인 출입 통제선의 줄임말인 민통선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통일대교로 갈 때마다 생각의 꼬리는 이어진다.

2020년, 공식적으로 남북 관계는 중단된 모양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남북 교류와 만남의 길을 다시 여는 것이 빠를까?" 아니면 "한국 사회에 속한 민북 지역도 모든 내비게이션에서 안내를 받을 수 날이 더 빨리 다가올까?"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쉬울까?", 그것도 어쩌면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2020년, 언젠가 다가올 남북 교류와 만남을 위해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맞을까?"와 같은 바보 같은 질문을 계속 나에게 던진다.

자유로를 달리면서 마주친 상징물들

연구 차원에서 파주의 DMZ와 민북 지역 일대를 갈 때마다, 1994년에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과 오두산 통일전망대 29km 구간이 완공된 자유로를 달리게 된다. "통일경제도시,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라는 대형 문구가 먼저 반긴다. 그리고 더 달리면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숫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통일로 가는 경기도"라는 문구와 함께 이 지점에서 "개성 20km, 평양 160km"라고 표시한 옥외 대형 광고판만이 이 지역이 북한 땅과 가까운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평화 둘레길 자전거길"이라는 작은 간판만이 자유로를 따라 간혹 보인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근처, 자유로가 끝나는 지점에 설치된 교통표지판이 민통선과 관련된 분단 풍경을 그리고 있었고 그곳에 있었다.

▲ 자유로에서 개성은 20km가 남았고 평양 160km만 가면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2020년) ⓒ강주원

▲ 국도 77호인 일명 자유로는 이 교통표지판을 지나자마자 국도 1호를 만나게 된다. 미승인 차량은 회차를 해야한다.(2020년) ⓒ강주원

사진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도 77호인 일명 자유로는 여기에서 국도 1호를 만나게 된다. 국도 1호라는 숫자 옆에는 판문점과 남북출입사무소를 향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고 "전방 1.5km부터 민통선 지역임(미승인차량 회차)"라는 글씨와 직진 표시의 그림 위로 빨간색의 "X"가 그려져 있다. "민통선", "판문점", "X" 그리고 국도 표시인 "①"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하여튼 내비게이션의 안내로 여기까지 왔고 그다음은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통일대교 입구이다.

민통선, 통일대교를 넘어가다

자유로의 끝자락에 "출입규정준수"라는 작은 간판을 끼고 달리면, 바로 국도 1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바로 눈에 들어오는 다리가 있다. 1998년 6월 15일 개통한 다음 날, 현대그룹 회장이었던 정주영 회장이 이 다리를 이용해 소떼를 몰고 방북한 일화로 유명한 통일대교이다.

통일대교는 민통선을 통과하는 관문이지 DMZ로 들어가는 남방한계선의 통문이 아니다. 입구 초입은 임진강 이남의 강변이다. 좌우로 민통선으로 추정되는 철책선들이 가로지른다. 이 철책선을 볼 때마다, 민북 지역과 관련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다리 주변에서 사람들은 동상이몽을 한다고 한다. 임진강의 철책선을 보고 누군가는 민통선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남방한계선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DMZ로 들어간다고 말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고 한다.

그다음 통일대교 남단이라고 불리는 지점에 검문소가 있다. 그곳에서 군인과 함께 "통일의 관문 파주"라는 문구가 보이고 출입절차(1. 출입증 제출 2. 동승자 확인 3 차량검문 4. 확인 후 통과)를 안내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 차량들이 대기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더불어 그 순간 시야에 보이는 것은 계절별로 시간대가 바뀐다는 "영농인 출입시간" 안내판이다.

처음에 이 다리를 혼자서 건너고자 계획할 때는 민통선을 통과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막막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인 파주중앙도서관이 국방부에 공문을 보내준 덕분에 이미 신상정보는 검문소로 전달되어있는 상황이었다. 행선지와 핸드폰 번호를 확인한 뒤, 주민등록증을 건네주고 받은 통행증을 가지고 통일대교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평양 208km, 개성 21km, 대성동과 판문점은 직진, 통일촌과 장단출장소는 우회전을 알리는 교통표지판이 민북 지역으로 넘어왔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고개를 한번 젓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대교를 건너기 약 10km 전, 자유로에 설치된 광고판에서 분명 "평양 160km, 개성 20km"를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기서는 평양과 개성이 더 멀리 표시되어 있다. 어떤 표지판이 맞는지 혹은 어떤 기준으로 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떠나서 약간 허탈하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의도하지 않게 뒷걸음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2020년 남북 관계의 현주소를 생각하면서 표지판을 다시 바라보니 더 씁쓸하다. 하여튼 이 교통표지판은 남북 교류와 만남과 관련된 사진전에서 또는 남북 관계를 설명하거나 표현할 때, 상징적으로 많이 애용되는 사진 중에 하나이다. 낯익다.

▲ 남북 교류와 만남과 관련된 사진전에서 또는 남북 관계를 설명하거나 표현할 때, 상징적으로 많이 애용되는 교통표지판이다. 개성과 평양의 남은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2020년) ⓒ강주원

남북 협력의 길을 제안하기에 앞서서

앞으로 쭉 달리던 나는 JSA 부대 앞에서 멈추곤 했다. 항상 민통선을 통과하는 사전 승인 절차를 받고 다니지만, 판문점과 대성동 자유의 마을로 가는 길목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선인 남방한계선을 통과하는 사전 승인 절차를 매번 받지 않았고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도로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지만 다시 켜본 내비게이션에는 "인근에 길 안내용 도로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만이 뜬다. 그렇기에 유턴을 하곤 했다. 그러면 또 하나의 교통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고개를 젓게 된다.

분명 국도 1호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턴을 했기 때문에 직진하는 도로는 국도 1호가 맞다. 이 도로가 향하는 정면 방면의 서울과 문산 표시는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통일대교를 넘어서 민북으로 향할 때는 주목하지 못했던 표시들이 있다. 우회전도 국도 1호라는 교통 및 분기 표지판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민북 지역에 국도 1호가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모양새이다.

나로서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없었다. 다만 이 길은 파주와 개성공단을 연결하는 도로로 통상 "경의선 육로"로 알아 왔었다. 그 길이 국도 1호로 교통표지판에 표시되어 있음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반면에 판문점으로 가는 국도 1호가 다양한 남북의 만남 사연을 담고 있음은 한국 사회에 살면서 듣고 배웠기에 익히 알고 있었다. 우회전을 한 다음에 잠시 차를 세우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 파주 민북 지역에서 국도 1호는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지만, 각각의 길에서 개성과 평양으로 가다 보면 "다시 만나지 않을까?"라는 생각해 보았다.(2020년) ⓒ강주원

또 하나의 국도 1호이자 경의선 육로로 알려진 이 길은 약 15년 넘게 개성공단을 넘나들던 수많은 사람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10월 2일 평양을 갈 때 지나갔던 바로 그 길이다.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던 국도 1호는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향하던 그 길이다.

이번에는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니고 끄덕였다. 2000년대 이전에는 남북 관련 역사의 현장은 판문점으로 이어지는 국도 1호뿐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 이후부터는 경의선 철로, 경의선 육로이자 국도 1호 그리고 기존의 국도 1호, 이 세 길을 통해서 각각 이루어져 왔다. 이처럼 파주 DMZ와 민북 지역에서 남북을 연결하는 통로는 하나에서 긴 세월의 노력으로 세 갈래로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 길들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2020년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이쯤에서 또 바보 같은 질문을 나에게 한다. "예전처럼 개인 소유의 차를 몰고 개성공단으로 가는 날이 빨리 올까?" 아니면 "민통선 통과를 할 때 사전 승인 혹은 검문 없이 통일대교를 넘어서 남방한계선 바로 앞인 도라산역, 남북출입사무소까지 아니면 최소한 통일촌까지라도 직접 운전을 해서 갈 수 있는 날이 더 빨리 다가올까?" 이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2020년 한국 사회는 전자, 즉 북한의 협력이 전제조건이자 필수인 DMZ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후자에 주목하는 목소리는 듣기가 힘들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전자와 달리 민북 지역 전체가 아니고 민통선을 넘어 남방한계선까지 가는 길들만이라도 마음 놓고 다니게 하는 변화는 한국 사회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후자는 전자보다 더 노력과 세월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하나는 분명하다. DMZ로 가기 위해서는 통일대교를 넘어 민통선 이북 지역인 민북의 길들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 여정에서 이런저런 경험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이 많아질수록 남북 평화는 조금 더 한국 사회에 다가와 있고 남북 교류와 만남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한국 사회가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는 민북의 문화와 민통선의 성격 변화를 덜 고민하면서 DMZ와 관련된 남북 협력만을 제안하는 모습이, 약 20년 동안 인류학의 눈으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현장인 압록강이자 북중 국경 지역을 바라본 나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온다.

평화와 안보의 목소리가 얽히고 설켜 있는 한국 사회다. 백두산 천지를 볼 준비를 꾸준히 하면서 일상에서 넘어야 할 앞산과 뒷산 그리고 언덕도 많다.

▲ 현재도 북한사람과 함께 사무실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국 단둥의 지인은 9월 19일에 있었던 북·중 관계의 상징인 항미원조기념관의 재개관 소식과 함께 9월 20일 오후의 압록강과 신의주의 풍경들을 메일로 보내왔다. 사진들을 열면서 코로나 19를 핑계 대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두 번째 책,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눌민, 2016)에 쓴 "압록강의 물결은 흐르고 흐르다 황해에서 대동강과 한강에서 흘러나온 물과 섞인다. 유구한 세월 동안 그런 흐름을 멈춘 적이 없다."라는 문구가 이 순간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다고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앞산을 등산하면서 백두산에 올라갈 체력을 만들기 위해 신발 끈을 고쳐 묶었다.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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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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