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착 타개 위해 비공개 특사 평양에 보내야

[황재옥의 '한반도 톡'] CVIP는 CVID의 마중물

지난 7월 취임 이후 남북 간 교류·협력 재개를 추진해 온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평화'라는 화두를 꺼냈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서 D대신 P를 대치한 CVIP(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Peace)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를 두고 현 정부가 남북대화 복원을 위해 비핵화를 물 타기 하려 한다느니, 비핵화 없이 남북관계만 끌고 가려 한다는 등의 시비가 많다.

필자는 이인영 장관의 CVIP 제안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아닌 방법의 전환을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 CVIP를 CVID의 마중물로 만들자는 뜻일 것이다.

그동안 남북 간에는 남북 간 합의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 비핵화와 관련한 '무엇(what)'을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들은 이미 다 나왔다고 본다. 단지 '어떻게(how)'가 빠지다 보니 그 제안(what)들이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남북 간 교류‧협력에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쪽을 이해시킬 수 있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시비와 오해가 있다고 분단 75년의 시간을 끝내고 남북이 화해협력과 평화번영의 역사를 회복하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성공은 끝이 아니고,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건 나아가는 용기다(처칠)' 라는 말은 남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일을 결과로 만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말하는 것 같다.

이인영 장관은 지난 7일 한반도 국제평화포럼에서 "분단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지만 평화는 노력 없이 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CVIP는 비핵화를 우회하여 평화로 가자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단지 CVIP를 먼저 시작해보자는 뜻일 것이다.

CVIP 과정을 먼저 시작해서 남북 간 상시적인 대화와 교류가 가능해지면 CVID가 뒤를 쫓아 같이 오게 하자는 함의가 담긴 말로 이해한다. CVID가 먼저 해결돼야만 CVIP로 갈 수 있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보자는 것, 즉 방법과 순서의 전환을 제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비핵화가 안 되면 평화협정도 만들 수 없고 북미수교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인영 장관이 말하는 CVIP와 미국 정부가 말하는 CVID는 불가분의 관계이자 표리관계다. 비핵화가 없는 평화는 단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순서를 바꿔보는 CVIP가 허황된 것이라는 시비는 옳지 않다.

한편 지난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지시하고, 강렬한 대남메시지를 쏟아내던 김여정 부부장이 7월 27일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김여정 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통치를 하고 있다느니,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느니, 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여정 부부장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는 등 관측이 분분하다. 그러면 지금 김여정 부부장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9월 11일 김여정 부부장이 비밀리에 대미 협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활동이 제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미 협상과 관련해 활발하게 비공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미국에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발언이 있었다. "북한에 경제적 어려움과 코로나 위험 등 여러 난관이 있다"며 인도적 지원을 위해 북한과 대화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일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수해 피해현장을 찾아다닐 정도로, 피해 정도가 심각하다고 한다. 유엔 대북제재, 코로나19에 수해까지 겹쳐 야심차게 추진해오던 경제발전 계획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한 정권 수립일인 9.9절(9월 9일) 행사도 올해는 생략했다.

상황이 어려운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한다면, 그리고 북미 간에 이 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 우리도 김여정 부부장과 인연이 있는 인물을 특사로 평양에 보낼 필요가 있다. 이인영 장관의 '평화' 화두로 시작된 남북대화 재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특사의 방북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정부의 남북간 교류 재개 의지에도 북한의 호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슨 '평화' 타령이며 특사파견이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누구를 특사로 보내느냐에 따라 북한의 호응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현 통일외교안보 특보)을 특사로 북한에 보내자는 민화협 이종걸 대표상임의장의 제안은 고려해 볼만하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이 김여정 부부장과 친분을 쌓았다. 다만 최근 북한의 내부 상황을 고려할 때 비공개 특사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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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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