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필자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솔직히 필자는 아직 전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목이 메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안쓰럽고 그리움에 사무칩니다. 잠도 잘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니 너무도 슬프기 때문에 더욱 하고픈 얘기일 수 있을 것입니다. 먼 길을 떠나간 아내도 필자가 다시 일어서 성실하게 사회적 공적 활동을 실천하는 모습을 가장 바라고 있을 것이므로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예전에도 아내에게 자문을 많이 구하며 글을 썼기 때문에 이 글도 아내가 옆에 있으면서 같이 수행하는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관련해 그간 두 차례에 걸쳐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썼는데,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한 분 한 분에게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필연적 환경 재앙,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현실로 다가온 이 음산하고 암울한 잿빛의 기후 재앙과 환경 악화를 눈앞에서 목도하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의 전 지구적 확산 역시 극단적 환경 파괴의 후과라는 커다란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산업혁명 이래 석탄, 석유 등 지하자원의 무제한적 개발로 인한 ‘지속 불가능한 성장’, 소비의 극단적 추구 그리고 인간 욕망의 극대화라는 외길로 치달아온 필연적 결과일 것입니다. 불행하지만, 어쩌면 이미 임계점을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바야흐로 모든 인간과 생명이 절멸될 미증유의 대위기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생명과 생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아내와의 이별을 겪어서인지 필자에게는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가 이제 눈앞의 자그마한 나의 이익을 넘어서 이 생존 위기를 가장 시급하고도 절박하게 해결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일에 앞서 선결적으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제와 성장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혹시 우리 세대는 어떻게 견뎌 나간다 할지라도 아무리 늦어도 우리 바로 후대, 후손들은 반드시 겪고야 말 중차대한 현실입니다.
먼저 정치권이 각성하여 ‘기후악당 국가’라는 오명을 떨쳐내야 합니다. 또한 언론계를 비롯하여 학계, 시민단체 등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층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환경 보호란 본래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각자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실천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 파행적 정쟁을 지양하고 공적 가치로 집중해야 합니다
현대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는 세계적으로 대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본래 정당이란 대중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고 정치를 통해 이를 관철시키는 것을 임무로 합니다. 그리고 국가와 대중을 위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통하여 선거에 의해 대중들에게 선택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정당은 미국을 위시하여 세계적으로도 비슷비슷 유사한 정당끼리 정책이 아니라 오직 정쟁의 끝없는 확대재생산과 선동에 의한 대중들의 극단적 분열에 기생하고 의존하는 생존방식이라는 퇴행적 행태만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정당이 유발하고 선동하는 이 적대적 대결과 반목은 신속하게 사회 전체로 확산됩니다. 대중들은 정치가 유발시킨 적대적 대결의 ‘소용돌이’에 매우 손쉽게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휩쓸리면서 전체 사회가 적대적으로 분열되고 대치합니다. 이것이 현대 정치, 현대 사회의 실제적 모습입니다. 지금 세계 모든 나라의 정치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나라는 가장 극심하게 표출되어 나타나는 나라에 속합니다. 이 땅의 정치는 정쟁 외에 그 어떠한 무기도, 수단도 없습니다. 이는 결국 공도동망(共倒同亡), 공멸의 길일 뿐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모두 우리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가치입니다. 새는 좌우 날개가 있어서 비로소 그렇게 날 수가 있습니다. 보수는 보다 합리성을 갖춰나가야 하고, 진보는 진정 진보적인 사고방식과 정책으로 사회와 시민들에게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인류 생존의 위기라는 이 절체절명의 현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 공적 가치와 공공성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사적 이익과 당리당략만을 추구하고 오로지 상대 진영에 대한 비난과 부정에 토대하여 정치공학과 선거 유불리에만 매몰되는 현재의 파행적 정쟁은 이제 그만 지양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 시대가 정치권에 부여하고 있는 지상 과제이며 엄숙한 명령입니다.
우리 삶이 바뀌기 위하여, 관료조직의 변화가 절실합니다
일부 고위공직자의 언행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국가 정책은 정치권이 좌우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 보이는 몇몇 정책이나 조치에 불과할 뿐 대중들의 삶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시책에서 대부분 관료조직이 그 결정권자인 경우가 지배적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주주의(官主主義)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관료조직은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은 중요한 제도적 토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국면에서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부의 편중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은 요인 중 주요한 한 요인은 바로 보수적이고 오직 ‘관행’과 ‘규정’에만 익숙한 관료집단의 존재입니다. 이러한 ‘낡은’ 관료조직이 우리 사회 운용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한, 우리 사회의 변화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료조직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관료조직 스스로도 변화의 자세를 갖춰야 하고,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관료조직의 개혁과 변화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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