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퇴임사에서 북한 탄도미사일 거론된 까닭은?

[정욱식 칼럼] 한일관계 개선에 앞서 던져야 할 질문

"북한은 탄도미사일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요격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삶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현재 냉엄한 안보환경을 고려하여 미사일과 관련된 안보 정책의 새로운 방침을 협의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8월 28일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코로나19 사태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 "두 가지에 대해" 보고했다. 그만큼 북한의 위협을 엄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 있다.

북한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 상공 위를 지나가는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고, 최대 60개의 핵무기 및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이 북한을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아베 정권을 포함한 일본 정부가 이러한 위협 인식에 걸맞은 외교적 노력을 해왔느냐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오후 5시께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정식으로 표명했다. ⓒ연합뉴스

치밀한 방해 공작, 그 결과는?

일본 정부, 특히 아베 정권은 북한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마다 재난 및 긴급상황을 통보하는 'J-얼럿(Alert)'을 발동하곤 했다. 이럴 때마다 아베의 지지율도 상승하곤 했다. 또한 북한의 위협을 평화헌법 개정 시도 및 군비증강의 가장 큰 구실 가운데 하나로 삼아왔다. 미국과 미사일방어체제(MD) 일체화에 박차를 가해왔고, 적기지 공격론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본은 북한 위협을 '존재론적 위협'인 것처럼 말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해왔는데, 왜 북한의 위협이 증대되어왔다고 간주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명하다. 한편으로 일본 우익은 북한의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 대응 일변도의 접근이 군비경쟁 및 안보딜레마를 격화시켜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존재했어야 할 외교적 노력이 정반대로 향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화된 2018년과 2019년 초에 훼방꾼 노릇을 자처하고 만 것이다. 이는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에서>에 잘 담겨 있다. 아베 정권은 전방위적인 외교력을 동원해 크게 세 가지 입장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에 주입시키려고 했다.

하나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요구하면서 여기에는 핵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폐기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수용해선 안 되며, '선 비핵화'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제에 완강히 반대한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가지 요구는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주도로 만들어진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하노이 노딜'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일본의 입장을 '찬양'했지만, 그 결과는 일본의 '진짜안보'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베가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북한 위협 대처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강조했을 정도로 말이다.

한일관계 개선, 그 취지는?

아베의 퇴임을 한일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이러한 필요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주장이 있다. "한일관계 악화는 북한만 이롭게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소미아 논란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북한 위협 대처에서 찾는 것과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문제이다. 아마도 근래의 역사에서 한일간의 대북정책 공조가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2008년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에 6자회담과 남북·북미대화가 선순환을 그리면서 북핵 해결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의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었다.

그런데 2008년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찰떡 공조'를 과시하면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유실시키고 말았다. 3단계에서 다루기로 했던 북핵 검증 문제를 2단계로 가져왔고 가장 강력한 사찰 요구가 담긴 '검증 의정서' 채택을 요구했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명박 정부와 아소 타로 정권은 6자회담에서의 약속이었던 대북 에너지 지원을 '같이' 중단했다. 그 결과 6자회담은 좌초되었고 12년째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이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크게 향상되고 말았다.

이 사례를 소개한 이유는 이렇다. 한일관계 개선과 강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압박과 제재 위주의 한일공조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미국을 상위 파트너로 삼아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것도 역효과가 크다.

그렇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핵심은 한반도와 북일수교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에 맞춰져야 한다. 과유불급의 어리석음과 일방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만 일본의 안보와 번영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놓고 진솔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일본에는 또 하나의 잠재적인 욕구가 있다. 전후 미해결 과제 가운데 하나인 북일수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잠재성에 주목·견인·지지·협력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중요한 목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년 전에 김대중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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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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