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파업 멈추고 보건의료 '개혁'으로

[서리풀 논평] "정부와 의사의 시간에서 '시민의 시간'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 '논평'을 작성하는 일요일 오후까지 전공의들의 단체 행동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결정하기에 앞서 밤새 토론 중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29일 밤 10시부터 30일 오전까지 파업 지속 여부를 놓고 밤샘 회의를 한 전공의들은 해당 안건을 투표에 붙였으나 파업 지속 의견이 과반 정족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그러나 재논의를 하고 두번째 투표를 한 결과 파업 지속을 결정했다. 편집자) 아무쪼록 이 글이 '뒷북'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정부 정책과 의사 파업이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못이라는 판단은 정책과 파업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국민과 시민의 관점에서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으며, 그런 뜻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첫째, 파업을 중지할 것

우리는 어느 직종이든 이해관계를 표출할 수 있고 단체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권력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권력에 대해서가 아니라 직접 국민 또는 시민을 위협하는 행동 방식은 반사회적이다.

무슨 윤리니 전문직 규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성원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의사의 노동은 면허라는 제도화된 독점으로 보장되고, 따라서 일정한 사회적 기능과 책임을 동반하지 않으면 정당성을 잃는다. 공권력을 독점하는 국가 권력에 항상 책임과 정당성을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명분이니 전략이니 하는 입바른 소리는 모두 생략한다. 다만, 한 가지 의사 면허의 독점성이 의사나 의료와 관련이 있는 모든 정책과 사회적 결정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책의 전문성은 그만두고라도, 민주주의 정체에서는 이 모든 갈등에 대해 경쟁하고 토론하며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일한 원칙은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 방역보다 (눈에 덜 보이는) 필수 의료 붕괴가 더 위험하다. 어떤 환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사회 구성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행동의 첫째 기준으로 삼기 바란다.

둘째, 정부는 새로운 정책 패키지를 제시할 것

정부안을 '철회'하느냐 '보류'하느냐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는 것은 부질없다. 정책이 틀렸다는 관점에서는 어떻든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책 목표, 실행 가능성, 정책 효과부터 다시 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있기는 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그것도 의심스럽다.

건강에 대한 어떤 국가 정책이 한 가지만으로 효과를 내기는 실로 어렵다. 정부가 말하는 문제의식이 진심이라면, 예를 들어 지역에서 좀 더 많은 의사를 구할 수 있으려면 정책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 그 이상이라야 한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 필수 의료가 최소한이라도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부 당국이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무슨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쪽이 있지만, 그들도 알 것이다. 시설, 인력, 재정, 관리, 나아가 체계 전반을 ‘개혁’하지 않으면 약간의 개선도 쉽지 않다는 것. 또한, 그런 개혁은 하고 싶지 않거나 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제까지 늘 반대했다는 것. 이에 대해 혹시 의견이 다르면 과학적 근거와 가능성을 내놓기 바란다.

아마도 국가와 정부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또는 모든 정책을 한꺼번에 하기가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인력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추진하겠다고. 국가 정책이란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하나 마나 한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라고 모든 정책을 동시에, 종합적으로, 근본적으로, 당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그게 그렇게 쉬우면 지금까지 묵고 곪았을 리 없다.

최소한, 믿을 만한 정책 구성(policy-mix), 전략, 정치적 의지가 같이 있어야 한다. 의대 입학 정원과 공공 의대 정책도 그 구성요소로 검토되고 논의되는 것이 맞다. 그러다 보면 그런 패키지에는 혹은 공공 의대의 비중이 더 커지고 공공병원이 확 늘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나아가 진짜 개혁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담대하게 상상해야 한다.

그러니 정부가 내놓을 '타협안'은 당연히 의사만을 위한 것일 수 없다. 의사 인력 정책 자체가 의사 인력에 대한 정책이지 의사들이 정하는 정책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이 원칙을 버려서는 곤란하다. 누구에게 제안하든 그 안은 미봉책이 아니라 개혁에 대한 것이라야 한다.

셋째, 시민 참여의 관점에서

의사 인력 정책에 한정해도 남의 일이 아니다. 경남 산청이나 전남 장흥에 사는 주민에게는 왜 물어보지 않는가? 어차피 그들은 잘 모른다는 소리는 지난 세기 엘리트주의의 유산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숙의'는 정보와 지식 그리고 열린 토론을 전제로 한다.

'시민다움(civilité, 시빌리테)'을 갖춘 공적 시민과 함께, 여러 이해 당사자의 참여도 불가피하다. 단, 의사 인력 정책에 한정해도 의사만 이해 당사자라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사에 대한 것이다. 그 '아수라장'에 진저리를 칠 사람이 많겠지만, 민주주의의 원리를 따르는 한 누구나 그 비효율과 지루함을 참아내야 한다.

모든 정파를 아우르는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아울러 강조하고 싶다. 지금 논란은 적어도 10~20년 기간에 걸친 것이다. 다음 정권이나 다음 여당이 '우리는 모르는 이야기'라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파와 현실 정치를 말했지만, 보편성을 강제하는 힘은 결국 시민에게서 나온다. 부탁이나 청원으로 될 일이 아니다.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를 포함해, 어떤 보건의료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부와 의사의 시간에서 '시민의 시간'으로 옮겨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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