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당신, 저 세상에서는 부디 아프지 마오

너무나 빨리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나는 아직도 당신이 떠나간 것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너무나 젊고 젊은 나이에 당신은 무엇이 급해 그렇게 빨리도 내 곁을 떠나야 했는지, 하늘은 왜 그리 무심하게도 당신을 데려갔는지. 나는 오늘도 당신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합니다.

어제는 모처럼 용기를 내어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려 했다오. 하지만 모든 골목과 어귀에 당신과의 추억과 기억이 아로새겨져 어디로 가든 목이 메고 눈물이 핑 돌아 얼마가지도 못했다오.

너무나 그립고 사무치게 보고 싶소. 언제나처럼 당신의 온화한 미소가, 당신의 따스한 숨결이.

당신을 구하지 못한 이 절망 속에서

병상에서 당신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었소. 고마워요. 당신. 그리고 너무 사랑해요. 여보.

그러나 나는 실제로는 항상 너무나 부족하기만 했고, 언제나 변변치 못했다오. 당신의 병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과 불찰이 너무나 미안하오. 마지막 모든 힘까지 쏟아 필사적으로 당신을 구하고자 했지만, 끝내 해내지도 못했소.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오.

이제 내가 당신을 위해 살아가려 하오

당신이 떠난 이 세상에서 나는 어찌 살아가야한다는 말이오.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는, 이 가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속절없는 이 그리움은 또 어떻게 견디란 말이오. 지금껏 스스로 강철과 같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당신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도무지 자신이 없소.

언제나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한 치의 피해도 주지 않으려 평생을 노심초사 살아간 당신, 오로지 나만을 챙기고 나만을 위해 살다간 당신, 당신의 삶은 곧 진심, 순수 그리고 전심전력이었소.

이제 내가 당신을 위해 살아가려 하오. 내가 다시 일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굳굳히 살아가는 것이 당신이 바라는 나의 모습이라고 억지로 생각하고자 하오. 나의 남겨진 삶은 당신이 바라던 나의 모습으로 살고자 노력하려 하오.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오

당신이 떠난 뒤, 집안의 파키라 화분 밑동에서 새로 가지가 자라났다오. 나는 그대가 나를 보러 온 것으로 여긴다오. 그렇게 계속 나의 곁에 있어주오.

저 세상에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살아요. 그리고 부디 아프지 말아요. 여보.

평소 우리가 약속했던 것처럼, 다음 세상에서 그리고 그 다음 세상에서도 우리는 영원히 다시 만날 것이오.

글쓴이 소준섭의 아내 김선희님은 췌장암 투병 중 지난 8월 9일 영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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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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