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좌초 위기...무엇이 문제인가?

[정욱식 칼럼] '힘에 의한 평화' 상당 부분 갖췄는데...군비 증강 여념 없는 정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문 대통령이 가장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사안은 한반도 평화였다. 당시 한반도 정세가 엄중했던 탓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재도약과 한반도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년 3개월 지난 오늘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좌초 위기에 처했고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최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불가항력이었던 것일까? '하노이 노딜'을 비롯한 북미 관계의 규정력은 막강했지만, 분명 문재인 정부의 잘못도 있었다.

북미 간의 동상이몽과 이상 징후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부터 드러났지만, 북미 회담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연합 훈련 중단 약속을 지렛대로 삼아 30년 동안 이어져 온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남북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해놓고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에 나서고 말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안보팀의 무능과 부실함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팀 코리아(Team Korea)'를 이뤄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모래알'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국방부는 2018년에 찾아온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질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미 연합 훈련과 대규모 군비 증강을 밀어붙였고 통일부는 이러한 중대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부처 간의 입장과 정책을 조율해 국가 안보 전략을 마련해야 할 안보실은 미국 눈치 보기에 치우쳤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의 존재감도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뒤늦게 통일안보라인을 개편하면서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실제 정책 방향은 개편 취지를 무색게 하고 있다.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악재로 작용해온 한미 연합 훈련 및 대규모 군비증강 입장에 거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장면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7월 23일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충분한 사거리와 세계 최대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최고 군통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23일 국방과학연구소에 방문해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청와대

하지만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했던 만큼, 이 발언에는 '전략적 선택'이 깔려 있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의 미사일 강국, 세계 6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만큼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대규모 전력증강도 조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미 연합 훈련을 축소해서라도 실시하겠다는 것이고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군비증강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극초음속 미사일 및 스텔스 무인기 개발, 경항공모함 건조 및 여기에 탑재할 F-35B 도입 검토, 그리고 40대에 이어 F-35A 20대 추가 도입 검토 등이 망라되어 있다.

하여 문재인 정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로 남북경협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한미연합훈련을 계속하고 역대급 군비증강도 지속하면서 어떻게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살릴 수 있느냐고. 2018년 판문점과 평양에서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했던 북한군의 수뇌부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어떤 보고를 하겠느냐고.

나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군사 문제 해결을 먼저 시도한 것을 두고 '신의 한 수'라고 부른 바 있다. 남북경협이 여의치 않은 현실에서 선경후정(先經後政, 경제협력을 먼저 추진해 정치군사 문제의 해결도 도모함)이라는 햇볕정책의 오랜 문법에서 벗어나 '선정후경'을 시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 이후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전자와 관련해선 하노이 노딜 직후에 "제재의 틀 내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그리고 철도·도로 연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 해당된다. 하지만 제재의 틀 내에서 이들 사업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음이 이후에 판명되었다.

후자는 앞서 언급한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역대급 군비증강의 하향 조정이다. 이것들은 제재와 같은 국제적 제약과 무관한 것이어서 정부가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 및 한반도 평화보다는 전시작전권 전환 및 군사대국 건설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이유이다. 연합 훈련 실시가 전작권 전환에 반드시 유리한 것도 아니다.

흔히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것과 오늘날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북한의 핵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대단히 강해진 것 역시 과거와는 달라진 상황이다.

그런데 이건 타자들만 본 것이다. 시선을 우리에게 향한다면, 한국의 국력, 특히 군사력이 엄청 강해졌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출범 때보다 국방비가 무려 4배가 늘어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북한보다 경제력은 50배 정도, 군사비는 20배 정도 높다.

이는 곧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힘에 의한 평화'의 물리적 토대는 상당 부분 갖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군비증강의 욕심은 여전하다. 정부의 심사숙고를 강력히 촉구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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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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