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장관 겸임, 이대로 괜찮은가?

[최창렬 칼럼] 권력 내부의 견제와 비판

"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나의 많은 행동이 선례로 남을 것이다." 이는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남긴 말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 자리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는 말이다. 실제 워싱턴은 5년의 임기 동안 위헌 여지가 있는 법안에 대해서만 단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후 미국 대통령들은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가 언급했듯이 제왕적 대통령의 조건을 갖추고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대통령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음으로써 권력을 얻는다는 원칙을 실천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뿐만이 아니라 권력은 절제되고 자제된 규범으로서 기능할 때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 순수 대통령제와 달리 한국은 내각제적 요소가 혼합된 대통령제를 운용하고 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차이는 의회와 행정부 권력의 융합 여부다. 엄격한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견제와 균형을 국정 운영의 기본원리로 삼는 대통령제와 달리 내각제는 의회의 다수파가 내각을 구성하거나 연정을 통하여 협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행정부와 의회의 융합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제와 구별된다.

한국은 국회의원과 장관의 겸임이 가능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헌법에는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할 수 없다'고 되어 있으나 국회법에 의해서 국회의원과 장관의 겸임이 가능한 구조다. 이는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과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 등의 내각제적 요소보다 강력한 내각제적 요소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각제적 권력 구조가 아니면서 국회의 한 축인 국회의원이 내각의 일원이 됨으로써 입법부와 행정부의 상호견제라는 대통령제의 핵심 원리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당·정·청으로 구성되는 집권연합 내부의 견제와 비판은 한국정치에는 금기시되고 있는 성역이다. 청와대와 여당 및 행정부가 여권을 구성하는 구조에서 집권여당은 청와대의 규정력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한국 권력구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야 간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에는 다차원적인 정치공학이 존재하지만 청와대의 일방적 우세를 바탕으로 집권여당이 청와대의 종속변수로 기능하는 당청 관계는 결정적으로 한국정치의 균열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한국정치 운용의 얼개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없이는 여타의 정치개혁은 부차적이며 진부한 요식행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내각제적 운용 원리가 아니면서 내각제의 핵심적 프레임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상호보완과 경쟁이 작동하는 정상적 여야 관계는 요원하다. 협치는 구조가 바뀔 때 가능한 것이지 정치윤리와 당위만을 강조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집권연합의 특징은 일사불란과 진영에 기반한 맹목적 편승이다. 물론 이는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 내의 소수 의견은 당 외부의 강성 지지자들을 배경으로 한 당 지도부에 제압당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장관직과 공천 및 당직이라는 유인책에 포획되고 만다.

모든 사안에 대해 완벽하게 일치하는 조직은 건강하지 않다. 한국정치에서 청와대의 압도적 우위는 집권당의 대중에 대한 반응성과 감수성을 둔화시키는 조건으로 기능한다. 청와대와 집권당이 건강한 견제를 바탕으로 합의를 모색하는 절차적 성숙성을 보인다면 이 과정에서 국회의 일각을 이루는 여당과 행정부의 균형이라는 대통령제 본연의 장점이 살아날 수 있다.

그 출발은 국회의원과 장관의 겸임이 가능한 제도의 폐지이다.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돼도 이내 동력을 잃는다. 여야의 공수가 교체될 때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절제된 권한 행사와 제도적 허점의 보완이 상생 작용을 할 때 지금의 구조적 반목 구조가 해소될 수 있다. 진영 여부를 넘어 한국정치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는 제도를 온존시키고 정치적 계산에 몰입한 결과가 연동형 비례제의 형해화요, 기형적 위성정당의 출현이었다.

미국의 플로이드 질식사 이후에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저급한 리더십과 명령에 반기를 드는 현직 장관의 모습은 그래서 신선하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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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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