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안심하고 받자...과잉 공포 포로 되지 않아야

[안종주의 안전사회] 배달 물품 때문에 감염된 사례 보고 없어

쿠팡, 마켓컬리 등 여러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거의 동시다발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물류센터 발 감염 확산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는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태원 클럽 발 확산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쓰나미’라는 극단적 용어까지 들고 나왔다.

방역당국과 지자체 등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물류센터 노동자들을 통해 2차, 3차 감염으로 이어져 수도권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하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사태 초기 방역에 비협조적이었으며 가장 심각한 집단감염 사태로 파악하고 있는 부천 쿠팡 신선물류센터 2공장에 대해 14일간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사실상 이 기간 동안 물류센터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다.

이 지사는 이런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면서 “물건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배달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섬뜩한 말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택배를 받고 있는 시민들의 불안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위험 메시지다.

쿠팡 등 감염자가 무더기로 나온 일부 택배업체뿐만 아니라 자칫 우편과 대한민국 전체 택배업체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시민들은 택배를 받을 때마다 꺼림칙한 것을 넘어서 감염 불안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는 자칫 택배 상자를 일일이 소독하거나 택배 주문을 하지 않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SNS 등에는 벌써부터 치킨 배달을 시켜야 하느냐 마냐를 고민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신발과 모자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를 통한 전파 가능성과 이런 환경에서 얼마나 바이러스가 오래 살아남느냐에 대해 묻고 따진다. 신발과 모자에서도 생존하기 때문에 택배 상자에 바이러스가 묻어 가정으로 전달될 때 고객에게 바이러스가 옮아갈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려 보도한다.

종이 상자에서 하루 생존 가능, 실제로는 이보다 더 짧아

미국 국립보건원(NIH)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프린스턴대 등의 공동연구를 통해 발표한 논문을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이보드(골판지)에서 24시간,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등에서는 2~3일, 구리 표면에서 4시간쯤 생존한다. 택배 종이 상자 표면에서 코로나는 길게는 하루 동안 남아있을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환경에서는 이보다 더 짧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된 확진자의 몸 안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대화, 기침과 재채기, 땀 등 체액을 통해 몸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상식이다. 감염자가 활동하면서 퍼트리는 비말을 통해 감염되거나 감염자가 오염시킨 문고리나 물건 등 물체에 남아 있는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이 손으로 만진 뒤 감염위험 행위, 즉 제때 손을 씻거나 소독하지 않고 눈·코·입으로 가져갈 때도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또한 귀에 따갑도록 들었다.

하지만 신발과 모자 등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보도에 이를 통해 물류센터 노동자들끼리 전파된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또 감염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옷이나 모자, 신발 등에 남아 있는 바이러스를 퍼트려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에게 감염시키는 것이 아닌지 괜한 걱정을 하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다.

배달 물품 때문에 감염된 사례 보고 없어

이재명 지사가 말한 ‘바이러스를 배달할 수 있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택배 배달원이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잘 모르고 계속 일을 하면서 마스크를 잘 쓰지도 않고 고객도 마스크 없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면서 택배를 받을 경우와 감염될 위험과 바이러스에 오염된 택배 상자를 받아 이를 손으로 만지면서 오염된 손으로 곧바로 자신의 눈·코·입 부위를 만질 경우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최근 거의 대부분 대면하지 않고 문 앞에 배달물품을 두고 가기 때문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 또 배달원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고객과 대면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본다. 후자는 택배 상자 겉이 바이러스에 오염되었다 하더라도 실제 이것이 배달 받은 고객을 감염시킬 위험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바이러스에 오염됐다고 해서 그 오염원이 타인을 감염시키지는 않는다. 오염된 정도, 즉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에 오염됐는가와 사람의 몸에 침입해 증식을 할 수 있는 정도로 활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일정 양 이상 몸에 들어와야만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물류배송 작업 과정이나 코로나19에 감염된 택배 노동자가 배달 과정에서 상자에 기침이나 재채기를 해 왕창 오염시켰거나 바이러스로 범벅이 된 손으로 작업 또는 배달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여러 과정이 안 좋은 쪽으로 겹쳐서 일어날 때 감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택배 물품을 통한 ‘바이러스 배달’로 인한 일반 시민들의 감염 위험성은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아직 택배 물품을 통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험소통에서 위험메시지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바이러스 배달’과 같은 용어는 듣는 사람의 귀에 쏙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자칫 과잉 불안을 야기해 불필요한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택배 물품 때문에 감염될 위험성이 제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제로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우편이나 물품 배달에 모든 국민이 소독제를 그 위에 뿌려대는, 다시 말해 가정에서 하루에 수천만 번이나 소독하는 ‘기괴한 풍경’이 벌어지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상식적이지 않다. 사람에 따라 이런 소독 행위를 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지만 과잉 공포의 포로가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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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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