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한국이 '국방비 감축'을 세계에 호소한다면

[정욱식 칼럼] 슬기로운 재정정책을 위하여

취임 3주년을 맞이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라는 포부를 밝히며 ‘인간안보’라는 화두를 던졌다. “오늘날의 안보는 전통적인 군사안보에서 재난, 질병, 환경문제 등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에 대처하는 ‘인간안보’로 확장되었다”며, “‘인간안보’를 중심에 놓고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국제협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세계적인 칭송을 받고 있는 ‘K-방역’의 자신감의 표현이자 무엇보다도 인간의 안전과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나갈 준비를 갖추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중심에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군사안보 위주에서 인간안보를 중시하는 포괄안보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온 국방비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 이래로 국방비가 줄어든 적은 딱 한번 있었다. IMF 환란 때였다. 1998년 13조 8천억원이었던 국방비가 이듬해에는 0.4% 줄어든 13조 7천5백억원으로 책정된 것이다.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군축 논의도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졌다. 일례로 LG경제연구원은 ‘한반도 군비감축의 경제적 효과’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방비의 24.5%와 군병력의 53%가 줄어들 경우 GNP에 미치는 효과가 매년 1.27~1.56% 정도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아 상당한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 버금가는, 혹자들은 훨씬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는 ‘코로나19 시대’에 군축 논의는 사실상 실종되다시피 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국방비 삭감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대다수 언론과 정치권에선 이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국방비 소폭 감축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방비가 무려 4배 가까이 늘어나고 인간안보 수요는 폭등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무엇을 ‘우려’해야 하는가?

정부도 올해 국방예산을 일부 삭감해 추경에 투입하고 있다. 2차 추경 당시에는 1조4758억 원을 줄였고 3차 추경에선 약 7000억 정도의 삭감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자 상당수 언론에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력 증강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기획재정부는 “아직 확정된 바 없으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시기 바란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국방비 일부 삭감에 따라 전력 증강이 일부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짚어볼 문제는 있다. 먼저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 상당 기간은 민생의 위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우려’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전환의 계곡이 죽음의 계곡이 되지 않도록 구원의 다리를 곳곳에 놓아야 하고 국방비 감축을 통해 그 재원의 일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미 한국은 세계 6위의 군사강국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군사안보를 튼튼히 해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력은 세계 12위 정도이다. 국가 역량에 비해 군사력 건설에 과도한 투자를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에 따라 군사안보의 비중을 줄이고 인간안보와의 균형을 도모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셋째는 국방비를 줄인다고 해서 군사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올해 국방비에서 5-10조원을 줄이고 내년부터 국방비를 40조원 정도로 책정해도 상당한 수준의 전력 증강은 가능하다. 군사력 건설과 직결되는 방위력개선비 및 전력운영비를 합칠 경우 매년 25조원 정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의 공세가 걱정?

국방비 감축의 필요성을 주장하면, 많이 듣게 되는 우려 가운데 하나는 보수 진영의 안보 공세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2017년) 세계 12위였던 한국의 군사력은 2018년과 2019년 세계 7위를 거쳐 올해에는 세계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순위가 높아진 것이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비해 국방비 증액율을 2배 가까이 높인 데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스스로도 강조한 인간안보를 위해 과감한 국방비 감축에 나서야 한다. 군사대국화와 인간안보 위기가 교차하는 시기인 만큼 국민적 공감대도 넓힐 수 있다. 신뢰의 위기에 빠진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고 전 세계적 위기 대처에 선도국가로서의 위상도 확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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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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