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 오거돈 성추행 사퇴 속 부산 안개 정국 걷힐까

변성완 권한대행 체제로 시정 공백 최소화 총력...오거돈 경찰 조사 받으면 처벌 불가피

코로나19라는 악재로 인한 경기 침체로 힘겨운 걸음을 걷고 있는 부산은 오거돈 전 시장이 '여성 공무원 성추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터트리며 자진 사퇴하면서 대혼란을 겪고 있다.

부산의 '제2의 도약'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시정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고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사태 수습에 심혈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오거돈 전 시장과 함께 사퇴 의사를 나타냈던 정무직 1명이 논란 끝에 다시 복귀하긴 했으나 시정이 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전대미문의 '부산시장 성추행 사퇴'라는 흑역사 안기고 잠적한 오거돈

▲ 지난 4월 23일 오전 11시 부산시청사 9층 브리핑룸에서 사퇴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프레시안(박호경)

지난 4월 23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오거돈 전 시장은 "저는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며 '여성 공무원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를 선언한 후 곧바로 잠적했다.

또한 부산시청에 있었던 정무직들과 함께 연락을 끊은 채 잠적한 그는 한 지역언론사의 끈질긴 취재 끝에 지난 5월 4일 거제도의 펜션에서 모습이 포착됐으나 다시 사라진 후 현재까지 행적이 묘연하다. 사퇴 23일 만인 지난 16일에서야 관사에서 짐을 뺀 것이 그나마 알려진 그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부산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본인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고는 '자진 사퇴'한 것 말고는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3전 4기 도전이라는 그의 뚝심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진 시민들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움과 함께 분노와 비난의 눈초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또한 오거돈 전 시장이 정무직들과 함께 잠적하면서 사퇴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부산시청 공무원들은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시 고위 공무원들은 한목소리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 "아무리 그렇더라도 정해진 임기는 마무리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 볼멘 목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게다가 오거돈 전 시장이 사퇴 입장문에서도 나와 있듯이 "이런 부끄러운 퇴장을 보여드리게 되어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부산을 너무너무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말을 했다면 적어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본인의 성추행을 인정하고 사퇴했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다"며 "이 때문에 오 전 시장이 정말로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맞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제기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급작스러운 시정 공백에 선제적인 조치 보여야 할 정치권은 동상이몽

▲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부산시당. ⓒ프레시안(박호경)

오거돈 전 시장과 정무직의 일괄 사퇴로 부산시정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로 돌입했다. 변성완 행정부시장이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맡아 시정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으나 동남권 관문공항,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굵직한 지역 현안사업들을 추진할 동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21대 총선을 통해 부산은 18개 의석 중 15개를 미래통합당이 차지하면서 주도권을 다시 잡았고 더불어민주당은 6석에서 3석으로 줄어 힘이 빠져 버렸다. 다만 민주당이 전국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하면서 부산을 이끌 주축으로 어느 정당이 될 것인지는 아직까지 미확정이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여야를 떠나 부산 발전을 위해 모두와 소통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으나 현 상황에서는 지역 정치권을 비롯한 여야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통합당은 오거돈 전 시장의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중앙당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연일 비판 성명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부산시에는 재발 방치 대책과 함께 다수 석을 차지한 통합당이 시정에 도움을 주겠다는 손을 내미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21대 국회 통합당 부산 당선들의 모임에서 차기 부산시당위원장으로 추대된 3선 하태경 의원(해운대갑)은 "오거돈 시장 사퇴 후 공백이 없도록 집안의 맏형과 같은 통 큰 협치 시대를 열겠다"며 그동안 민주당이 강조해왔던 '협치'라는 단어를 자신들의 것으로 흡수하는 등 시정 공백 최소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민심을 다잡으려 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민주당은 셈법이 복잡하다. 당장 차기 시당위원장 선출해야 하는 과정에서 현직 국회의원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 오거돈 전 시장의 사퇴로 인해 진행되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치뤄야하고 20대 대통령 선거까지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야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한 국회의원은 "변 권항대행이 결정하는 것이지 정치권에서 요구하고 지적할 사안은 없다. 부산 발전을 위해서 국회의원의 역할을 할 뿐이다"며 같은 당 소속이었던 오 전 시장으로 인해 발생한 시정 공백을 적극적으로 메우기 위한 모습보다는 조용히 있음으로 시민들의 비난을 피해 보겠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 이들의 대응방식에 대한 실망감은 가중되고 있다.

오거돈 최측근 신진구 대외협력보좌관 복귀했으나 시정 정상화 도움에는 의문

▲ 지난 4월 24일 오전 11시 부산시청사 9층 브리핑룸에서 변성완 부산시 행정부시장이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퇴에 따른 대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박호경)

오거돈 전 시장의 사퇴와 함께 부산시청에 근무하던 정무직들도 모두 사퇴 의사를 나타내고 잠적했었다. 그러나 지난 13일 그의 최측근이었던 신진구 부산시 대외협력보좌관이 '사퇴 의사 철회서'를 제출하고 다시 시청으로 복귀했다.

신진구 보좌관은 "엄혹한 시기에 질서 있는 정리가 필요하다.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 듯하다. 부산시정을 위해 백지장이라도 맞들겠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하겠다"며 복귀 이유를 설명했으나 당장 통합당과 부산공무원노조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다.

통합당은 지난 15일 부산시당에서 성명을 내고 "성추행 사건으로 부산에 제대로 먹칠을 하고 부산시민들과 여성들에게 극도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도 모자라 오거돈 전 시장의 최측근인 신진구 보좌관을 다시 부산시로 복귀시킨 것은 부산의 이미지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만행(蠻行)이 아닐 수 없다"고 질타했다.

또한 통합당 소속 부산시의원들은 18일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신진구 보좌관 스스로 사퇴하거나 변 권한대행이 직권면직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노조도 이날 오전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는 등 "중대한 시국에 느닷없이 오 전 시장의 핵심 측근이었던 신진구 보좌관의 복귀 소식은 부산시의 안정화 노력에 똥물을 끼얹는 꼴이다"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부산시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놓고 "민선7기가 시작하고 공무원과 정무직이 겪었던 갈등이 되풀이되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선을 지켜서 업무를 분담해야 한다"며 "변성완 권한대행이 선두에서 분란을 야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018년 10월 '왕특보'라고 불리며 전권을 휘두르던 박태수 부산시 정책특보가 부산공무원노조와 업무 관련으로 마찰을 빚다가 돌연 사퇴한 후 그해 11월 다시 복귀하는 등의 모습으로 볼 때 오거돈 전 시장마저 없는 부산시청에서 정무직과 공무원 사이에서 다시 갈등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과 같다.

또 다른 부산시 고위 관계자는 "변성완 권한대행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현안 사업에 대해 행정이 모든 걸 결정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부분을 소통하기 위한 사람은 필요한 상황이다"고 전하는 등 신진구 보좌관의 복귀로 시정 정상화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보다 변성완 권한대행 체재에서 정치와 행정의 명확한 분리 운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같은 우려를 예상이라도 한 듯 변성완 권한대행은 18일 내부 직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신 보좌관 복귀 결정에 대해 "시정을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회·시의회 등 정치권의 협력과 정당과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하며 대외협력 부분을 위한 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뜻을 밝혔다.

또한 정무직 개편과 함께 공무원과의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역할 분담을 철저히 해서 "공직자가 주인인 시정을 만들고 노력이 인정받고 결실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권한대행 체제에서의 시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부산경찰청 '오거돈 성추행 사건' 수사 가속화...소환 조사 임박

▲ 부산지방경찰청 전경. ⓒ프레시안(박호경)

결국 오거돈 전 시장이 자진 사퇴를 넘어서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부산시정과 민주당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더욱 커져 갈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형사적 처벌까지 진행될 수 있는 경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오거돈 전 시장의 수사는 부산지방경찰청에서 담당하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시민단체와 통합당 등 7건의 고소장을 받아 사건을 수사하고 있으며 사태 수습을 맡았던 정무직들에 대한 수사와 함께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경찰 등의 말을 종합하면 오거돈 전 시장 사건의 수사전담팀은 지난 주말 동안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휴대전화 등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또한 정무라인 등은 비공개 소환해 오 전 시장이 성추행 이후 피해자와 접촉해 어떻게 사퇴 공증을 받게 됐는지 등의 경위와 과정 등을 조사했다.

이는 정무라인이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피해자와 만나 사퇴 시기 등을 논의하는 등 수습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다만 성 관련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경찰은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했다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주변인들의 대한 수사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잠적 중인 오거돈 전 시장이 빠른 시일 내로 경찰에 출석해 정식 조사를 받을 것으로 확인되면서 새로운 변곡점이 찾아왔다. 스스로 경찰에 나와 본인이 저지른 성추행에 대한 진술을 하게 된다면 법적 처벌도 가능해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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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경

부산울산취재본부 박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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