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검사, '드라이브 스루' 이은 K방역 새 브랜드

[안종주의 안전사회] 방역과 인권은 원래 하나, 하루빨리 익명검사 받기를

박원순 시장, 인권과 생명 존중을 담은 익명검사 공 쏘아 올리다

코로나19 익명검사가 승차 검사(드라이브 스루)에 이어 K방역에 새로운 명품 브랜드로 도약할 것인가?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태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와 경기도가 선보인 익명검사 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승차 검사가 코로나19 검사 대상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검사를 받을 수 있어 바이러스 전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역 시스템이라면 익명검사는 성소수자를 포함해 신분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맞춤형 검사이다.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가 ‘익명검사’ 제도를 도입해 재빨리 시행한 것이 화제다.

누구는 이를 두고 ‘신의 한 수’라고까지 평가했다고 한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매우 적절한 대응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태원 클럽 감염 사태가 터지자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시간 싸움이라고 했다. 방문객 가운데 있을지 모를 감염자를 서둘러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 감염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등 지역사회에서 전파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문제의 시기에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숨지 않고 최대한 빨리 자발적인 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왜 거기를 갔느냐는 비난이나 힐난하고 있을 계제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익명검사가 나온 것이다.

익명검사와 승차검사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완전 새로운 것은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매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 안에서 주문하고 받는 것을 코로나19 검사에 응용한 것이 승차검사이다. 지나고 난 뒤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는 물론 지금에 와서 곱씹어 보아도 정말 응용력이 돋보였다. 전 세계가 따라 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익명검사는 검사를 받는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배려의 검사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에이즈는 유행 초기부터 감염자와 환자에 대해 사회적 혐오와 낙인이 심했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는 감염이 의심되더라도 물 밑으로 숨을 가능성이 짙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익명검사'를 처음 도입하면서 방역과 인권을 함께 고려했다. 사진은 경기도에서 검사를 원하는 시민들이 익명 검사를 받는 모습 ⓒ경기도

낙인, 혐오, 차별의 대명사 에이즈에서 익명검사 시작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는 잠복기가 길고 10~20년이 지나도 환자로 발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장기간에 걸쳐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감염자를 최대한 일찍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점은 코로나19와 상당 부분 닮았다.

그리하여 정부는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유행 초기부터 에이즈의 경우 익명검사를 제도화 했다. 따라서 30년 넘게 익명검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 에이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서도 코로나19 익명검사는 하지 않았다. 한데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태에는 신분 노출을 꺼리는 집단이 포함돼 있었다.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매우 많은 것으로 파악되자 서울시가 이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익명검사’라는 ‘킹·퀸’ 카드를 꺼냈다. 묘수 아닌 묘수였다. 감염병 익명검사는 에이즈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새로운 검사 제도처럼 비칠 수도 있다. 서울시의 코로나19 익명검사는 감염병 방역과 관련해 새로운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를 재빨리 도입해 시행한 것은 큰 박수를 받을 만하다.

꼭 이 익명검사 덕분은 아니겠으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에이즈 확산을 막고 잘 통제하는데 성공한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에이즈 감염자/환자(HIV/AIDS)가 급증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국외(아프리카)에서 걸려 한국으로 귀국한 한국인 첫 환자가 나왔다. 1980년대를 통 털어 누적 감염자(환자 포함)는 72명에 그쳤다.

코로나19 이전, 한국은 에이즈 확산 저지 성공한 대표적 국가

1990년대에도 신규 감염자를 연간 두 자릿수 또는 1백 명 대로 유지했다. 2000년대에는 연간 2백 명 대에 접어들어 후반기에는 800명 가까이 육박했다. 이 시기는 상당한 효과를 지닌 에이즈 치료제의 ‘칵테일 요법’이 개발돼 에이즈가 ‘죽음의 병’에서 만성질환으로 전환한 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뒤 2010년대 들어서는 연간 1천명 안팎에서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의 감염자 발생은 엄청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캐나다 등에 견줘 50~1백분의 1 수준이다.

코로나19 익명검사라는 새로운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낸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감염 의심자와 접촉자를 대상으로 익명검사를 도입한 뒤 서울의 진단검사 건수가 평상시보다 8배로 뛰었다고 밝혔다. 이태원 사태 뒤 누적 검사 건수가 14일 현재 2만4082건이라는 것이다. 그 효과가 이태원 너머에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 시장은 이태원 클럽 관련자인지 아닌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익명검사를 요청한 사람들 중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만약에 하나 그가 이태원과 관련이 없다면 조용한 전파를 할 수도 있었던 감염자를 코로나19에 처음 도입한 익명검사라는 히트상품으로 찾아낸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박 시장은 시민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한 익명검사까지 도입했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깔아뭉개면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면 고발 조처를 통해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단호한 뜻을 나타냈다. ‘익명검사’ 카드까지 동원했음에도 14일 현재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2500 명가량 된다는 분석 때문이다.

방역과 인권은 원래 하나, 하루빨리 익명검사 받기를

익명검사가 용의 얼굴에 마지막 점을 찍는 ‘화룡점정’의 ‘신의 한수’가 되려면 이성과 상식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19 확산을 이 정도로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묵묵히 불편을 견디며 방역 당국의 지침과 지시에 잘 따라준 국민 덕분이다.

우리 사회는 방역과 인권이라는 두 마리의 토기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이 두 마리 토끼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다. 아니 두 마리 토끼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마리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 인권의 최고 가치는 생명이며 방역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오랜 연륜을 지닌 성소수자인권단체인 ‘친구사이’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오던 거의 모든 인권단체가 이번 이태원클럽 집단감염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 낙인과 차별, 혐오 조장을 거부하며 인권 의식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행동에 나선 것도 환영할 만하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다름 아닌 생명과 안전, 그리고 인권의 문제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아니라 인권을 지키고 생명을 아끼는 목소리만 존재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생명을 존중하는 인권 대통령, 인권 시도지사, 인권 국회의원, 인권 언론인, 인권 시민만이 존재해야 한다. 반인권 의식은 아무짝에도 필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응당 검사를 받아야할 사람들은 불안과 회의에서 떨쳐 일어나 당장 선별진료소로 가서 익명검사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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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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