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분들을 만나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형제복지원에서의 이야기가 수십 년 전이지만 모든 분들이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괴로움은 굉장히 컸고 그들에게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첫 공식조사 결과인 부산시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용역'에서 피해자 심층면접을 맡았던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8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조사를 마친 심정을 이같이 말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면접 참여자 중 한 명을 거론하면서 "20대 전쯤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살아나오기 위해 소대장까지 올라간 분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가해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손으로 시신을 묻었다"며 "이분의 탈출은 영화 빠삐용이 따로 없었다. 실패하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과 탈출했다. 소대장으로 문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나오라고 문을 열고 나오셨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분은 사람들 시신을 묻은 장소를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70세가 넘어가면서 점점 기억이 소실되다 보니 자신이 배우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다. 배웠다면 글로 써서 증거를 남겼을텐데라며 죽기 전에 이를 밝혀야 한다는 의무감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제가 직접 면담을 하면서 시신 매장 얘기에서 말을 못 하시는데 그분의 눈동자를 통해서 아픔이 느껴질 정도였다"며 "나중에 이를 알리기 위해 부산시청과 언론사에도 가셨지만 당시 형제복지원 수용자였다는 것이 사회적인 낙인이다 보니 묵살당하기도 하셨다. 다른 분들도 그 당시 끔찍한 지옥을 견디고 잊지 못해 어떠한 형태로든 알리려는 몸짓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전화기술이 있어서 형제복지원 내 인터폰을 가설했기 때문에 박인근 원장실에 출입할 수 있었던 한 면접 참여자의 얘기를 꺼낸 박 교수는 "지금까지 구술이 이뤄진 수용자들 중에서 아무도 박인근 원장이 있었던 공간에 간 사람이 없었고 박인근 원장의 측근들 중 입을 연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형제복지원 내부에 관한 수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진술로 박인근 원장실 안에는 직접 고문을 자행한 공간이 있었고, 복지원 전체에 끔찍하고 악마적인 수용소의 행태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형제복지원에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 정권의 국가 공권력이 깊이 개입했고, 무고한 시민들이 경찰에 끌려서 수용되었다"며 “국가폭력과 박인근 원장과 그의 측근들이 행한 범죄 행위를 여러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심층조사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공소시효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는 모르겠으나 형제복지원이 만들어진 1975년 전부터 불법적 시신 매장이 있었고 이 문제는 절대로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며 사망자들의 수와 사례들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지금도 아픔을 겪고 계시고 실태 조사에서 확인됐지만 빈곤, 교육, 건강, 장애, 트라우마 등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데도 피해자분들은 견뎌냈고 사회로 그 분노를 쏟아내기보다 강인하게 버텨내신 것을 보고 존경심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박인근 원장이 국유지였던 형제복지원 부지를 불하받아, 무료로 이용하다가, 헐값에 매입한 후 수백억 원에 매매하면서 생긴 이익과 수용자들의 노동력 착취에 의한 수익 등을 거론하면서 "수용자들이 임금을 받고 일한 게 아닌데 도대체 그 수익금은 어디로 갔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형제복지원 내부에 있는 정신병동을 '지옥 속의 지옥'이라 표현하면서 "진술에 의하면 침대에 묶어 놓고 강간을 했고 지하에서는 불법 낙태가 이뤄졌다. 일반 소대와는 또 다른 지옥에다가 더 끔찍했다"며 "그곳에 있던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시설로 옮겨져 수십 년을 수용되어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피해자분들에게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심리적 치료와 명예 회복을 많이 얘기하셨다"며 "나중에는 배상까지 해야겠지만 우선 역사를 바로잡고 이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야 과거사법 처리 극적 합의했지만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은 아직 희망 고문
실태조사 용역을 총괄한 남찬섭 동아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1987년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 수사 외압이 들어간 것부터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당시 귀가 조치된 사람도 있지만 다른 시설로 간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밝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총장이 사과를 했으나 저희 조사에서 경찰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수용된 사람이 60%에 이른다. 어떻게 해서 많은 경찰이 동원되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갔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경찰도 사과해야 한다. 과거사위에서 이를 밝혀내 그동안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는 첫 번째 길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산시는 피해자들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고 심리 정서가 불안하기에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전문 치료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릴 수는 없기에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운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졌고 최승우 씨도 이를 믿고 농성을 풀었으니 더 이상 다른 조건을 내 걸지 말고 현 상황에서 과거사위가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희망 고문은 그만해야 하지 않겠는가. 20대 국회가 정말 다른 때보다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이것만이라도 꼭 통과시키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근거가 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에 대해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미래통합당 이채익 의원이 이달 임시 국회에서 수정안을 상정해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에 물꼬가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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