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증언..."내 손으로 생매장, 잊을 수 없다"

부산시 실태조사 용역 최종 보고서에서 피해자들 진술...온전한 진상규명 필요

지난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첫 공식조사 결과에서 무차별적인 인권 유린이 일어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부산시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수용된 피해자들의 심층면접 결과 수용자들이 폭행을 당해서 죽거나 자살하는 것을 본 적이 있고 시신처리 과정도 목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탈출을 시도했다가 다시 재수용되면서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거나 형제복지원에서 당한 과거 피해로 인해 대부분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신상기록카드. ⓒ부산시

탈출에 성공했던 한 피해자는 "고향에 머물며 부산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끔찍하고 무서웠다"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무고하고 끔찍하게 죽어간 사람들...자신의 손으로 생매장을 했던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참혹했던 현장을 떠올렸다.

10대 때 형제복지원에 끌렸던 한 피해자는 "입소해있을 당시 70년대 중반에는 성인과 아동이 섞여 있었고 이때부터 발생한 성폭력은 80년대 아동소대가 생기면서 더 심해졌다. 아이들은 자기가 그렇게 당할까 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두 눈으로 성폭력이 자행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6살에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구타와 학대를 당했다는 한 피해자는 "불쏘시개에 인중을 찍혀 깊게 패인 상처, 돌멩이에 머리를 찍혀 깊게 패인 수술 자국 등 당시의 처참했던 기억은 온몸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며 "당시 후유증으로 종종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심한 두통이 몰려온다. 두통이 심할 때는 병원에 며칠 입원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미국으로 입양을 보낸 정황도 확인됐다. 중학생 때 끌려온 한 피해자는 "미국입양대상자에 포함되어서 형제복지원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입양 가기 하루 전날 박인근 원장이 '나중에 가족들이 찾으러 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제외시켰다"며 "지옥 같은 복지원에서 나가고 싶어서 3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로 인해 심판 폭행을 당했다. 수시로 성폭행도 당했다"고 말했다.

7살 동생과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온 한 피해자는 "안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나름 특혜를 받았다. 세라복을 입고 후원자도 있었다"며 "그러다가 해외입양이 추진됐다. 동생과 함께 가는 줄 알았는데 자신은 독일, 동생은 프랑스로 떨어지게 됐다. 합창단 선생님에게 울며불며 매달려 겨우 동생과 함께 형제복지원에 남게 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 여성 피해자는 "강간당하는 사람들과 낙태수술도 직접 하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정신병원에 있는 여성들에게는 성폭행이 더 심하게 있었다. 저도 성폭행을 당하고 탈출을 준비했다. 탈출하기 한 달 전쯤 또 성폭행을 당했는데 탈출하고 나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형제복지원 내부에서의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설명했다.

주민등록도 되지 않았던 어린 나이에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던 한 피해자는 육체적인 고통, 배우지 못함에 대한 한탄을 담아 "형제복지원에서 고통을 당하게 만들어 놓은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도 해줘야 되지만 명예회복도 시켜주고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게끔 만들어줬음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원생 폭행이나 살인에 가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 1980년 사업차 부산에 갔다가 싸움에 휘말려 수용된 한 피해자는 전기기술자라는 직업으로 특별대우를 받았었다. 그는 "원장실, 원장의 사택 등에 인터폰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며 원장실에 학대 도구와 피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 형제복지원 수송차량. ⓒ형제복지원

이번 용역을 맡은 동아대학교 산학협력단 남찬섭 교수는 지난 24일 최종 보고회를 통해 이같은 피해자 심층면접 결과와 함께 피해자 14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해당 설문조사에서 형제복지원은 부랑아 선도라는 명목으로 피해자들을 수용했다고 했으나 대부분 피해자는 수용 당시 대부분 15세 이하(74.5)였고 절반 이상(52.4%)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고 답했다.

또한 학대와 강제노역, 성폭력 등은 만연했으며 수용 기간 동안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보거나 직접 들은 경험은 83.2%에 달했다. 퇴소 후에는 절반(51.7%)이 1회 이상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남 교수팀은 "국가 차원의 공식조사는 아직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구체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데서도 그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며 "검찰의 비상상고도 있었고 검찰과거사위에 의한 조사도 있었지만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과거사정리법' 개정법률안을 새로운 21대 국회에서 다시금 논의해 온전한 진상규명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직접적인 심리지원을 위한 전문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피해자가 일상생활 속에서 통증을 호소하고 불편을 겪고 있으며 증상과 질환이 만성·고령화됨에 따라 치료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부산시가 피해자들의 치료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킨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건이다.

그러다 1987년 탈출을 시도한 원생 한 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형제복지원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실제로 형제복지원 12년 운영기간 동안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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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경

부산울산취재본부 박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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