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꼼수 비례'에 몸을 싣지 않은 이유

[정욱식 칼럼]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병폐는?

"네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 거다."

정의당의 선택을 두고 '노회찬'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떠오른 표현이다. 그렇다. 노회찬은 진보정당의 가장과도 같은 사람이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부터 40년 진보정당의 외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야만 정의당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정의당의 남은 식솔들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노회찬의 유지를 가슴 깊이 새기고 정도(正道)를 걷고 있다. 비례연합정당 합류를 거부한 정의당의 선택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 실망한 사람도 있고 분노한 사람도 있다. 생각이 차이,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얼마든지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금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해보라. 과연 정의당이 '정의당'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정당의 이름으로 비례대표 선거전에 뛰어드는 것이 노회찬의 유지에 맞는 것이었을까? 판단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의당이 이런 선택을 했다면, 적지 않은 정의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은 등을 돌렸을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정도를 선택한 정의당에 '노회찬'을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게 도리는 아닐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남은 식솔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그렇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자들은 정의당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도 있다. 우리 정치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극단적인 불일치'에 있다. 거대 양대 정당들의 의원들과 출마자들 상당수는 사회경제적으로는 상층부에 속한다. 가치와 정책으로는 민주당은 중도 내지 중도 보수이고 미래통합당은 극우 보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정당이 번갈아 집권해도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해소되지 않는다.

범민주당(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의 압승보다 정의당의 약진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정권재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이러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원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 협력과 견제의 변주곡을 울리며 정부여당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이하 노회찬재단)이 설립 1주기를 맞이해 2020년 1월 2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기념식 '우리, 이어지다'를 열었다. ⓒ프레시안(조성은)

아마도 2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선 코로나19 사태로 그 필요성이 절박해지고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과 환경·실업·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그린 뉴딜'이 핵심 쟁점으로 등장할 것이다. 멈춰버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미국의 갑질로 가성비가 갈수록 떨어지는 한미동맹 문제도 중대 이슈로 부상할 것이다.

이런 이슈들이 대선에서 제대로 공론화되고 대선 이후 하나둘씩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여당보다 반걸음 내지 한걸음 앞서 이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힘 있는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한다. 정부여당을 상대로 악의적 발목잡기에만 몰두해온 미래통합당을 강력히 비판·견제하면서 정부여당과도 선의의 협력과 경쟁을 할 수 있는 정의당의 존재가 절실한 까닭이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우려되면서 경계해야 할 결과는 중도-진보 진영 사이의 근친증오이다. 소수정당들의 원내 진출을 돕고자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근친증오의 온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범민주당의 승리가 예견되는 현실에서 진보정당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총선 이후 대한민국의 다른 미래를 기약하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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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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