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써야 할 나라 돈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나라 빚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8일 정부가 발표한 '2019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부채는 사상 최대치인 1743조 원을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38.1%이고, 국민 1인당 1409만 원에 달하는 액수다. 긴급하고도 불가피한 재정지출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사이의 엇박자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재정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격화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지출을 무리하게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벼랑 끝에 내몰린 민생을 구하기 위해 과감하게 지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의 사각지대가 있다. 바로 국방비 문제이다.
'또 국방비 타령이냐'고 반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차분히 따져봐야 할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국방비 조절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문제 완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올해 50조 원을 넘긴 국방비 가운데 5조 원을 줄이고 내년부터 4년 간 국방비를 45조 원 규모로 동결하면, 국방부의 중기계획과 비교할 때 약 65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0년 동안 45조원으로 동결하면 약 150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 이는 정의당이 발표한 '그린 뉴딜' 10년간 예산과 정확히 일치한다. 재정지출과 재정적자의 엇박자를 줄이면서 민생과 우리 사회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중한 재원이 국방비 조절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로 국방비 지출 계획도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사정이 이렇다면 '평화배당금' 창출을 통해 위기에 처한 민생을 돕고 '그린 뉴딜'을 통한 실업·환경·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적극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전환의 계곡'이 '죽음의 계곡'이 되지 않도록 국방비 축소로 생명의 다리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안보 본연의 가치에 충실한 것이다.
'안보를 무시한 철없는 발상'이라고 반문할 수 있다. 결코 그렇지가 않다. '군사 안보'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인간 안보'를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군비'를 얘기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군비에는 '군비(軍費)'와 '군비(軍備)'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군비(軍費)는 "군사상의 목적에 사용되는 모든 경비", 즉 군사비나 국방비를 의미한다. '군비(軍備)'는 "육·해·공군의 병력, 무기, 장비, 시설 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군사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까닭은 국방비를 소폭 줄여도 군사력은 오히려 증강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또 하나는 군사력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일시적인 국방비의 증감보다는 '국방비 누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국방비 지출을 비교해보자. 대개 무기체계의 수명을 30년 정도로 보는 것을 감안해 1990~2019년 30년 동안을 비교해 보면, 한국의 국방비 총액은 약 684조 원에 달하고 북한은 70조 원 안팎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하듯 미국의 군사력 평가 전문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는 2020년 군사력 순위로 한국을 세계 6위, 북한을 25위로 평가했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을 고려할 때, 우리가 국방비를 45조 원 정도로 동결해도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은 계속 보유할 수 있다. 국방비에서 비중이 작은 사병 급여를 지속적으로 높여도 군사력 건설과 직결되는 방위력개선비와 전력유지비를 합쳐 매년 30조 원 가까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도 상당한 수준의 군비증강이다.
국방비 조절을 통해 확고한 대북 억제와 적절한 주변국 억제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군사 안보와 인간 안보의 균형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반도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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