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 영국 일간지 <더 타임즈(The Times)>는 국제 인도주의 단체 옥스팜(Oxfam) 직원이 구호 업무 현지에서 성매매를 한 사실을 보도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국제 개발구호단체인 옥스팜은 이 폭로로 인해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고, 이후 다른 구호단체들에서도 성추문이 연이어 폭로되며 파장은 업계 전체로 뻗어 나갔다. 이 글에서는 옥스팜 추문으로 드러난 인도주의 구호 분야 의 성폭력 실태와 그 의미를 정리하고 우리나라에서의 시사점을 짚어 보고자 한다.
연이은 폭로 기사와 옥스팜 내부 보고서로 드러난 사건의 실체를 되짚어 보면, 지난 2011년 아이티(Haiti) 대지진 후 복구 및 개발 사업을 위해 파견된 옥스팜 직원 중 일부가 구호 예산으로 임대된 저택에 현지 여성들을 불러 성매매를 했다. 이 여성들은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당 직원들 가운데는 옥스팜 아이티 사업의 현지 총책임자를 비롯한 고위급 간부가 속해 있다. 옥스팜은 당시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 내부 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관련자들을 해임하거나 혹은 스스로 명예퇴직했다고 밝혔으나, 사건의 전모를 정부와 언론에 알리지 않고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옥스팜은 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공표했다고 반박했으나, 영국 정부의 자선기관 관리위원회는 이 같은 옥스팜으로부터 구체적으로 통보받지 못했다고 재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아이티 성매매 추문의 당사자인 고위급 간부가 지난 2006년 차드(Chad) 파견 업무 중 성매매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은 옥스팜이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고 비난했으며, 당사국인 아이티 대통령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옥스팜 재정 수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국 정부 및 유럽연합(EU)은 옥스팜 지원을 재검토할 것을 언급했고, 첫 언론 보도 이후 수일 동안 7000명이 넘는 기부자가 후원 중단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옥스팜은 핵심 고위급 임원의 사임, 독립 조사위원회 설치, 영국 정부의 신규 프로젝트 재정지원 중단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사과 및 자정 노력에 들어가기로 했다.
파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의료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내 아이티 파견 직원의 석연치 않은 사임이 성매매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대형 구호단체인 국제적십자사, 세이브더칠드런, 플랜 인터내셔널 또한 소속 직원 수십 명을 성매매 의혹으로 해임했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유니세프(UNICEF)의 고위급 간부가 세이브더칠드런 재직 중 있었던 부적절한 행위가 드러나면서 사임하기도 했다. 이제 성폭력 이슈는 국제개발 및 인도주의 구호 분야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인도주의와 권력
옥스팜에서 시작된 인도주의 구호 분야의 성폭력 실태는 인류애와 평화, 정의를 내세워온 비정부단체 구성원들이 보인 이중적인 행태로, 국제사회에 충격과 분노를 불러왔다. 특히 옥스팜의 경우 인권과 거버넌스 분야에서 옹호 활동을 활발히 펼쳐온 단체로, 인권과 좋은 거버넌스 이슈로만 각각 400~500건 이상의 자료를 출판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런 모순은 극심한 가난과 기아, 질병과 자연재해로 인프라가 무너진 개발도상국 고통의 현장에서 구호물자로 무장한 인도주의 단체가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를 보호해야 할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공공서비스가 없거나 열악한 그 가난한 오지의 땅에서 국제구호단체들은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고, 한 인간의 생존을 위한 식품과 물자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성적 대가를 요구하는 행태가 암암리에 만연해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백인들이 '원시적인' 현지인들에게 폭력과 성 착취를 저질러온 행태가 그대로 이어졌다고도 비판했다.
인도주의 구호 단체 구성원의 성매매 행위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해당 단체들이 공개적으로 반성하고 성토하기보다는 은폐에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당사자들은 심각한 처벌을 받지 않고 자발적인 명예퇴직 정도로 넘어가거나 동종 업계 내 타 직장에 취업하는 데 제약이 없었다. 이번 사태가 구호단체 분야 내부의 반성과 자정 조치를 넘어, 재발 방지를 위한 조기 경보 시스템이 확립되는 것으로 그 해결책이 모색되고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다. 옥스팜의 경우 성폭력 관련 부정행위를 저지른 업계 인물의 데이터베이스 개발과 여성 인권 및 젠더 폭력 관련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윤리위원회의 설치를 핵심 대책으로 약속했다. 데이터베이스 개발은 관련 비위 경력이 있는 직원들은 업계에서 목록을 공유하고 구호 활동과 관련한 직장이나 파견 업무에 있어서 진입을 제한하자는 방안이다. 후자의 경우 외부 위원회나 옴부즈만에게 비정부단체 내부 자료를 들여다보고 사건을 조사할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인도주의를 표방한 구호 활동 단체 내 이러한 구조적이고 제도적 시스템 마련은 필수적이었던 것일지 모른다. 더욱이 구호 활동의 규모와 예산 그리고 대상 범위가 매우 거대한 구호단체의 경우 이러한 조치는 더욱 필수적이다.
한국 돌아보기
인도주의 구호 분야의 성폭력 파장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해외원조를 시작한 한국은 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가입 후 개발원조 분야 정부 예산이 최근 십수 년 동안 급격히 늘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공공 기관, 학계, 민간단체들이 국제개발 및 인도주의 구호 분야에 관여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비정부단체들의 국내 지부 및 해외 상주 인력 또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증가에 비해 성폭력 이슈는 크게 떠오른 적이 없다. 가끔 해외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부 공무원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자를 성추행했다는 사례가 국정감사를 통해 적발되는 정도였다.
최근 SNS에서는 우리나라 국제개발협력분야의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는 미투(#Metoo)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발 사례가 생생할 뿐 아니라 고통스럽다. 봉사자로 파견 갔다가 현지 사무소 직원에게 당한 성추행, 현지 사업 조사차 출장을 갔다가 고위직 또는 교수·전문가에게 당한 성추행, 비정부단체(NGO) 명망가에게 당한 성추행 등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이 바닥'이 좁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국내 인도주의 구호 분야 미투운동이 벌어진 다른 분야처럼 수직적인 상하관계와 갑질문화가 횡행해온 것이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이 같은 피해 사실을 폭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모두 당사자이자 방관자가 아니었나 부끄러운 일이다.
국내 인도주의 구호 분야 내부에서의 성폭력에 대해서는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옥스팜 성매매 추문과 같이 개발도상국 사업지에서 우리나라 기관 및 단체 직원들이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바에 대해서는 거의 보고가 된 적이 없다. 최근 중남미 한 국가 소재 대사관 직원이 현지 여성을 성추행하는 장면이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돼 문제가 발생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에서 선의로 일한다고 해도 현지 주민의 인권과 여권에 대한 감수성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 또한 관련 사업에 종사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국내 기관으로부터는 인권, 젠더 감수성이나 윤리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현지인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관련 규정이 과연 존재하는지, 신고나 적발이 있어도 실질적인 처벌에 이르기는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국내 인도주의 구호 분야에서도 성폭력을 비롯한 젠더 이슈에 대한 윤리 규정 마련과 신고·조사 시스템 마련, 그리고 관련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던 업계 인물에 대해서는 엄벌과 함께 정보가 공유되어 향후 동일한 활동이나 용역 계약에 제한을 가하는 방안이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참가자들도 지난 5월 29일 공개 집회를 갖고 "유·무상 원조기관과 민간분야 주체들은 성차별·성폭력 가해자와 가해 기관을 확실하게 처벌하고 각종 연대 활동 및 현장 파견 등에 제약을 두는 제도를 마련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원조 체계가 분절화되어 영국의 국제개발부와 같이 관련 규제와 시스템에 단독으로 책임을 질 기관이 없지만, 대표적인 개발원조 분야 공공기관으로 무상원조를 총괄하는 한국국제협력단과 유상원조를 총괄하는 한국수출입은행이 공동으로 총대를 메고, 비정부단체의 경우 해외원조기관협의회의 명의로 민관협력 위원회를 통한 전수 조사 및 데이터베이스의 개발 및 유지에 나서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국제협력단의 경우 여성운동 경력의 중진 국회의원 출신 신임 이사장이 개혁에 의지를 보이는 만큼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해 보겠다.
옥스팜 직원의 성매매 사건으로 시작하여 점점 전모가 드러나고 있는 인도주의 구호 업계의 성폭력 불감증과 은폐 행태는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며 인도주의 분야 전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인도주의가 권력이 되는 시스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인도주의 단체들은 개발도상국 현지의 구호와 개발을 명분으로 거대한 원조산업의 혜택을 누려 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인도주의 구호 분야 자체가 이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취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한계도 보인다. 옥스팜 사태 및 이후 우후죽순처럼 드러난 현지인 대상의 성폭력은 예외 없이 서방의 언론을 통해서만 문제가 제기되고 논의가 이어졌다. 피해 당사자인 개발도상국 현지 주민의 목소리를 서구 주류 언론에서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이는 우리나라 개발원조 분야 내부의 자정 운동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한국인인 업계 내부자들 간의 갑질은 지적되지만 한국발 사업에 의해 현지인들이 어떤 갑질을 당하고 있는지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그간 개발도상국과 그 주민들에게 시혜적으로 구호를 베풀며 개혁과 개발을 요구했던 인도주의 구호 분야가 자신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치, 대변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위한 성찰과 개혁에 나서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신호일 것이다.
참고문헌 및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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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2018). 2018.4.24 접속: https://www.facebook.com/idcmetoo/
- 3월 30일 자 '발전대안 피다' 격월간 웹진 <피움> '미투, 우리 안의 '모순'을 마주하다'
- 5월 29일 자 <오마이뉴스>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도 '미투'... "인권 외치면서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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