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SNS에서의 사례 폭로를 시작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 미투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개적인 집회를 통해 문제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다. 교수가 연구원에게, 전문가가 실무자에게, NGO 대표가 봉사자에게 등 다양한 피해 사례들이 있지만, 대개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상하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성폭력을 행사하는 형태는 전형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좋은 뜻으로 움직이는 국제보건의료, 국제개발원조 조직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러한 조직들은 당연히 성 평등도 보편 인권의 한 가치로 존중하고 있지 않을까? 이 분야에는 실무를 하는 여성들의 수가 많은데 왜 높은 자리들은 중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을까?
최근 국제보건의료 분야의 성 평등을 지향하는 단체인 'Global Health 50/50'에서 내놓은 보고서는 이러한 의문에 일단의 답을 제공해 준다.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of London) 젠더와 국제보건 센터(Centre for Gender and Global Health) 연구진이 주축을 이루어 펴낸 이 보고서는, 국제보건의료 분야의 전 세계 140개 단체를 대상으로 조직 운영과 사업 활동에서 성 평등이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지 따져 보았다. (☞바로 가기 : "The Global Health 50/50 Report 2018")
결과는 국제보건의료 분야의 단체들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것으로, 성 평등을 뚜렷이 규정하거나 건강 문제와 결부시킨 단체는 3분의 1 밖에 되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단체가 사업 전략에서 젠더를 언급하지 않았고, 단체들의 3분의 2가 자료를 수집하고 알릴 때 남녀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조직 내부적으로도 성 평등 정책을 갖고 있는 단체는 소수로, 여성의 경력 지원 제도를 갖고 있는 단체는 절반 이하였다. 지배와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여성이 더욱더 과소대표되고 있었다. 열 개 중 일곱 개 단체는 남성이 대표였고, 열 개 중 여덟 개 단체의 이사회는 남성 위주였다.
저자들은 선행 조사들에 비해 국제보건의료 분야의 성 평등이 나아지지 않은 실태를 우려하였다. 더불어 국제보건의료 단체들이 젠더가 건강과 웰빙에 미치는 영향을 지각하고, 성 평등 정책을 갖고 실천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해보면 어떨까? 각종 국제보건의료 관련 대학·연구기관, 공공기관과 NGO의 대표가 여성인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려워 보인다. 모성·생식보건 사업을 하는 단체들조차, 과연 성 평등 정책을 보유하고 실천하고 있을까 회의적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변화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를 책임지는 공식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지난해 창립(1991년) 이래 처음으로 여성 수장이 취임했다는 것이다. 여성운동가이자 중진 정치인 출신인 이사장은 취임 후 여성 임원과 보직자 비율 50%를 5년 내로 달성한다는 혁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향후 이 분야의 미래를 이끌 젊은 실무자와 연구자에 여성이 많으니 자연히 성 평등이 이뤄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업계와 기관 차원에서 성 평등에 대한 의지와 실천이 없는 한 여성들은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탈락해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 폭력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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