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의원단'도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다

[최창렬 칼럼] 국회 개혁, 시민들이 나서야 할 때

지난 21일 국회는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홍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 경민학원의 공금횡령 혐의로, 염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 부정청탁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헌법 조항인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국민의 대표를 탄압하고 억압하는 국가의 폭력적 권력 행사의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다. 17세기 초 영국에서 법제화되고, 미국 연방헌법에 의해 성문화되면서 헌법상 제도로 발전했다. 이는 국회의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여 국회 권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군사권위주의 정권을 지나 법치민주주의가 정착된 상황에서 불체포특권은 국회 이기주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조차 원천적으로 막는 독소 조항이다. 비리와 부정청탁 혐의 의원을 특권의 우산 아래 비호하는 행위가 어떻게 입법 활동 보장이고 국회 권능 강화인가. 국민의 대의기구를 보호하고 국회의 기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는 불체포특권의 명분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한국 국회에게 불체포특권은 반민주적이고, 시대를 거스르는 분수에 맞지 않는 과분한 보호막일 뿐이다.

논점은 두 가지다. 우선 국회에게 삼권분립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의기구로서 특권과 성역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 대한 비판은 정치불신으로 이어지고, 정치폄하가 세상을 바꾸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인식에서 과도한 정치혐오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 국회의 몰염치와 극단적 패거리주의는 국민적 심판의 대상에 오를 때가 됐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거대 이슈까지 사회적 의제에 대한 집단적 의사표시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국회에 대한 비판은 늘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이제 본질적인 고민을 할 때가 됐다. 시민이 나서서 국민의 대표라는 허울에 안주하는 국회에 직접적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학자나 전문가들이 자문위원회 등을 구성하여 대안을 내놓아도 의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더 이상 국회제도개혁위원회니 하는 식상한 조직은 배제하고 주권자로서의 시민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압도적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두 번째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위선적 이기주의다. 두 의원의 체포동의안 반대표가 한국당 의석수인 113표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에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다른 야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적지 않은 이탈표가 나온 것 같다. 특히 염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에는 반대가 한국당 의석수보다 59표나 많았다는 점은 민주당이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촛불시민들의 열망에 조응할 수 없는 세력임을 방증한다.
지난 1년여 동안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와 적폐 수사 등이 이어졌다. 적폐는 사회전체에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적폐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일상적 정치발전과 정치개혁 어젠다는 정치 엘리트들의 극단적 이기주의의 실체를 고발하지 못한다. 국회 제도개혁 논의가 전문가 그룹과 국회의원들에게 맡겨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사회적 격차의 일상화,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한국사회 전 부문에서의 권력관계를 구조화했다. 촛불시위는 박근혜·최순실 등 국정문란 세력 탄핵은 물론 이러한 기존 질서의 근본적 혁파를 요구했다. 개혁과 혁신은 시민의 자발적인 지지와 동의를 바탕으로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집단이 세력으로서 변화를 추동하고 개혁을 이끌 때 가능하다.
구체적으로는 개혁 엘리트로 지칭할 수 있는 청와대가 목표와 지향을 설정하고 제도화 주체로서의 국회, 집행수단으로서의 관료의 수평적 연대가 이루어질 때 추동될 수 있다. 개발독재 시대의 군부·관료·재벌의 삼각동맹과 대척에 있는 세력과 시민사회의 조응이 이루어질 때 촛불시위는 비로소 혁명의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홍문종·염동열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에 임했던 민주당은 개혁연대의 한 축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민주당은 국회의 구성인자로서 개혁을 추동하고 정당으로서 시민의 균열과 갈등을 조직화해야 하는 핵심 세력이 되어야 하지만 민주당도 여타의 보수정당과 마찬가지로 정당이기주의에 매몰된 통념적 정치세력일 뿐이라면 한국사회의 개혁에 시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적 제도화는 국회만이 할 수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길은 시민이 직접 나서서 대의기구를 압박하는 일이다. 박근혜 탄핵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국회가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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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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