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 임신은 남녀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것인데 남성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부담이 없는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 낙태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낙태죄 조항은 여성만 처벌하고 있는데, 여성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성차별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법무부 측 대리인 : 그렇게 보이는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임신이라는 것이 주어진 조건으로 그렇게 나타난 것 아닌가 싶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병역의 의무를 이야기할 때 일부 남성들이 지금 낙태죄에서 여성들이 하는 부분들을 제기했던 것 같습니다. 신체 조건이 달라서 생기는 그런 문제이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법무부가 '낙태죄 합헌'을 주장하는 공개변론 자리에서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냈다.
법무부는 2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 제269조 제1항(낙태 여성에 대한 처벌 규정), 270조 1항(낙태 수술 의료인에 대한 처벌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공개변론에서 이해관계인으로 출석해 "태아 생명권과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할 때 태아의 생명권이 우위에서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부인과 의사 A 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A 씨는 1심 재판을 받던 중 낙태죄 관련 조항이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하자 지난해 2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이날 법무부가 말하는 보호의 대상에 여성은 없었다. 오로지 태아만 있었다.
낙태죄가 성차별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지적에 대해 법무부는 "신체 조건으로 인한 문제이지 정말 심각한 문제로 보긴 어렵다"며, 임신‧출산 등에 대해 여성이 지는 부담을 '병역의 의무'에 비유하기도 했다.
"피임 실패로 인한 임신 비율도 낮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출산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여성에게 가혹하지 않으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대해 "규범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면 "태아는 자기를 지킬 힘도 없는 나약한 존재", "태아는 심장 소리로 자기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따름"이라며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했다.
이따금 "여성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심각한 문제인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국가 제도적으로 봤을 때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그런 부분까지 국가가 어떻게 허용할 것인지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낙태 시술이 가능하다"며 "낙태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과 그것이 위헌이라고 선언돼야 한다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이같은 인식은 예견된 바다. 법무부는 공개변론에 앞서 헌재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서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썼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SNS를 중심으로 법무부에 대해 "여성 폄훼"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법무부장관_경질' 해시태그를 붙인 글이 대거 올라오기도 했다.
반면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여성 스스로의 의지 아닌 한 임신과 출산은 기적이 아니라 천형(天刑)"이라며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일각에서는 낙태를 주장하는 여성에게 '자유로운 성행위'를 운운하지만, 임신 사실 자체로 여성이 해고되는 차별적 현실, 미혼모나 미성년자 임신부가 영아 살해를 하고 해외 입양을 보내는 현실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에게만 낙태 책임을 지우는 것은 단순한 부당함을 넘어 평등권을 침해하는 수준"이라며 "이는 여성이 임신하면 당연히 어머니가 돼야 한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볼 때, 낙태가 허용된 나라에서 오히려 더 낙태율이 낮게 나온다"며 생명 경시 풍조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엄밀히 말해 태아는 '내 몸'이 아닌데, 그 생명에 대한 박탈을 여성의 권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엔 "여성은 태아의 생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낙태에 대해서도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체인데 낙태죄 담론에는 이런 여성의 입장이 배제돼 있다"고 답했다.
또 "현행 모자보건법으로도 낙태가 가능하다"는 법무부 측 의견에 대해 모자보호법이 규정한 예외 범위가 너무 좁아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모자보호법은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도 조산자 시술이나 약물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낙태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낙태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선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도 "태아는 말이 없다고 하는데 여성도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여성은 위축되고 소외돼왔다. 태아와 다를 바 없다"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지난 2011년에도 낙태죄 공개변론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결론은 4대 4 의견으로 합헌이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려면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이진성 헌재소장을 비롯해 김이수·강일원·안창호·김창종·유남석 재판관 등 6명이 낙태죄 폐지 또는 개정 찬성 의견으로 분류된다. 이 소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일정 기간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조건부 낙태 허용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헌재는 이날 변론 내용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심리에 돌입한다. 공개변론 이후 3개월 이내 결론을 내리는 통상적 절차에 따라 올해 9월 이전에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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