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을 공동체 7년, 무엇을 이뤘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마을 공동체, '바텀업'으로 만들어가야

지난 4월 27일 대학로에 있는 공공그라운드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마을 공동체, 서울의 현장은 강화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공개 포럼이다. 서울시나 관련기관이 아닌 마을 공동체에 관심 있는 개인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연 행사였다.

성과 공유 대회가 되어버린 마을 공동체 사업 평가

공공, 행정이 주관하는 사업에 대해 평가하는 자리를 시민단체, 학계 등 민간이 진행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대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사업'에서만은 다소 달랐다. 그동안 서울의 '마을 공동체 사업'과 관련한 평가 및 연구는 서울시 및 중간 지원 조직(서울시 마을 공동체종합지원센터, 이하 서마종)이 주도해왔다. 사업의 당사자이자, 평가의 대상자여야 할 이들이 평가의 주체 역할까지 맡아왔다. 자연스럽게 이들이 주도한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의 평가는 '성과 공유 대회' 방식으로 진행되곤 했다. 결론은 대부분 '약간의 아쉬움도 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사업을 시작한 7년 동안 '새로운 주민의 등장'이라는 모호한 개념 외에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날 포럼에서도 이러한 목소리가 나왔다.


활동가, '어공' 그리고 관료화의 딜레마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이후 많은 활동가들이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 혹은 중간 지원 조직의 직원이 되었다. 마을 공동체 관련 어공 및 서마종에서 근무하는 주요 활동가들의 다수는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다. 이들은 과거 공공의 행정과 사업에 대해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 시민사회 출신들이기에 공무원 혹은 중간 지원 조직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기존의 공공이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일각에서 "마을 공동체 관련 어공과 중간 지원 조직 담당자들이 빠르게 관료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서울의 마을 공동체 사업이 7년을 경과하며 예산의 규모는 커지고, 사업의 구조는 고도화되고 있다. 공공과 중간 지원 조직에 정보와 경험이 집중되고 있다. 초기 마을 공동체 사업의 설계와 판단이 25개 자치구 마을 공동체 관련 민간대표가 참여하는 '마을넷 연석회의'를 통해 이뤄졌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넷 연석회의'의 기능은 유명무실화하고 있다. 서마종과 '자치구 마을지원센터'라는 중간 지원 조직 간 협의가 마을 공동체 사업 관련 공식 채널로 자리잡고 있다. 민간의 자발적 활동이 축소되고 공공 혹은 공적 예산이 투입된 조직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 관련 체계가 재편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런 부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비판에 대한 '이전에는 활동가였으나 지금은 공무원이 된 이들'의 반응이다. "아는 사람끼리 너무하는 거 아니야?", "우리도 할만큼 했어", "공공에 들어와 보니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와 같은 반응이 점차 패턴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공론장으로 끄집어내 속풀이 끝장 토론을 벌여도 부족한 판에 감정적 반응으로 암묵적 침묵을 요구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사업의 대부분은 탑다운 방식의 공모사업으로 설계되었다. 대부분의 마을 공동체 사업은 서울시의 보조금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임기관 담당자의 불편한 감정적 반응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이들은 흔치 않다. 결국 많은 이들이 요즘 유행어로 '할많하않(할말을 많으나 하지 않기로 한다)'의 상태가 되고 있다. 점점 문제의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공론장이 필요한 사람들

4월 27일의 행사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90석의 공간에 무려 150명이 들어왔다. 준비된 자료집 100권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행사 예정 시간보다 30분 더 늦게 끝났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많은 이들이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시간이 부족해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는 목소리를 전해왔다. 실제로 행사에 참여자들의 질문성 비판의 수위가 높았다.

"보조금을 받은 주민이 주체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리라는 기대는 한계가 예상된 출발"
"중간 지원 조직은 공무원이 자기 일을 미루는 계기가 되는 듯"

행사 참여자는 마을 공동체 사업 참여자, 중간 지원 조직 담당자, 공무원, 학자 등으로 다양했다. 마을 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마을 공동체 사업이 만들어낸 성과 이면에 존재해온 어려움과 답답함을 호소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과 공유의 장'이 아니라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끝장 토론 수준의 '공론장'이다.

현장을 위해 만든 사업이 현장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있다

서울시가 내세우는 마을 공동체 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시민의 등장'이다.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는 13만 명에 이른다. 서울시민의 1%가 약간 넘는 수치다. 마을 공동체 사업을 본격 시행하면서 시민들은 법인격이나 큰 경험이 없이도 공공/행정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의미 있는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역시 어느 시점에서부터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우선 새로운 시민이 많이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지역의 주요 활동가들이 1인 4역, 5역을 맡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입에서 '마을 피로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서울시의 지원금, 일자리를 둘러싸고 갈등과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새로운 주민의 등장'을 이어갈 성장 전략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산을 투입하면 사업이 늘어나고 사업이 늘어나면 참여자가 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양이 늘었다고 해서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서울시의 지원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시점에서도 현재의 참여자들이 지속적으로 기존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부분은 서울시로서도 딜레마일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역 자산화', '마을 기업' 등의 제도를 논의하고는 있지만, 이 역시 서울시의 예산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역 사회와 주민의 성장, 변화 속도가 더딘데 반해 행정은 예산을 투입해 빠른 성과를 요구한다. 무르익지 않은 관계와 사업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행정은 그것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작은 실패와 부작용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더 큰 사업이 투입되는 현상이 흔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마을자치센터>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다.

누구를 위한 마을자치센터인가?

서마종은 서울시의 중간 지원 조직이다. 서마종은 지난 수년간 각 자치구마다 '자치구 마을 공동체지원센터'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서울시는 당초 '자치구 마을생태계조성 사업단(자생단)'이라는 이름으로 자치구의 마을 공동체 사업을 보조해왔다. 그러나 규정상 같은 사업에 대해 3년 이상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

시는 불법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보조금으로 운영하던 자생단을 '3년 제한'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운 민간 위탁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서마종의 의도와는 달리 대부분 자치구는 지역내 갈등, 역량부족 등의 이유로 '마을지원센터'를 만들지 못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다양한 당근책을 제시했다. 자치구 마을지원센터가 민간 위탁으로 만들어질 경우 운영비와 사업비 전액을 서울시가 지원했다. 자치구 마을 공동체 중간 지원 조직의 유형으로 '네트워크형, 공공형, 민간위탁형'을 제시하고 민간위탁형을 선택할 경우 가장 많은 예산을 교부하기로 했다. 이런 당근에도 불구하고 25개 자치구 중 30% 정도의 자치구만이 자치구 마을지원센터를 설립했고, 심지어 그중 절반은 민간 위탁형이 아닌 공공형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시의 기대와 달리 마을의 역량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 자치구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서울시의 호흡으로 사업을 탑다운 한 결과다. 지역의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이 '자치구 마을 공동체지원센터'를 위탁받기 위해 하나의 법인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조직과 개인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고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정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러나 행정은 그런 현장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했고, 예산과 제도를 탑다운해 사업 추진을 밀어붙여왔다. 결국 4, 5년에 걸쳐 진행된 '자치구 마을지원센터 민간위탁화'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나는 서울시가 25개 자치구의 현장 활동가들을 모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8년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시행되는 시점에 '자치구 마을지원센터'와 '주민자치회 사업단'을 결합한 '자치구 마을자치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마을자치센터'는 주민자치회 담당 2인, 마을 공동체 담당 4인, 주민자치회 담당관 5인 등 무려 11명의 상근자가 근무하는 자치구 단위로는 매우 큰 조직이다.

자치구 민간 영역의 현실상 3~4인이 근무하는 규모의 마을 공동체지원센터도 만들지 못했는데 후속 대책으로 11명이 근무하는 더 큰 조직을 만들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게다가 서울시와 서마종은 통합 위탁이 되지 않을 경우 마을 공동체 관련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였고, 탑다운 방식의 사업이었다.

마을 공동체, '바텀업'으로 만들어가야

지난 7년간 추진해온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다고 해서 지난 시간 전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간 서울시가 다양한 의미있는 시도를 해왔음에 동의한다. 이웃과 이웃이 만나고, 공공과 민관이 협력하는 계기가 조성되고 있다. 부모커뮤니티, 이웃만들기, 주민참여지원사업, 마을기금, 마을 계획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마을'이라는 단어가 매우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빛이 있으면 그늘이 발생하듯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7년은 의미 있는 성과와 함께 우려점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공론화하고 함께 협의하며 해결해나가는 '마을스러운' 방식이 아니라, 행정 편의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만들어온 성과와 한계들을 고스란히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 그 열린 토론을 위한 공론장이 필요하고, 공론장을 통해 필요하다면 방향도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제 진정한 '바텀업'을 시작할 때다. 25개 자치구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공론화의 장을 만들자. 공론화를 통해 사업을 설계하고 현장을 강화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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