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5월 17일 백악관에서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과 시진핑이 5월 초순 중국 다롄(大連)에서 2차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가 변했다고 본 것이다.
트럼프는 닷새 후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 모두 기자회견에서도 두 사람이 "두 번째 만난 다음에 (김정은의)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시진핑을 "세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부르면서 "나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시진핑과 "좋은 관계"를 원하는데 시진핑이 뒤에서 북미정상회담에 훼방을 놓으면 자신도 돌변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 셈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주장은 팩트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우선 5월 초중순에 집중된 정상 외교 일정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중국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과 만난 시점은 5월 7~8일이었다. 정상회담을 마친 두 사람은 미국 대통령 및 국무장관과 소통에 나섰다. 베이징으로 돌아간 시진핑은 바로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한다"고 말했고, 트럼프는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발휘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화답했다.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은도 다음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 폼페이오로부터 트럼프의 구두 메시지를 전해들은 김정은은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대해서와 조미 수뇌 상봉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고 사의를 표하였다",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했다.
고무된 트럼프는 북한이 석방한 3명의 한국계 미국인들을 맞이하면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표출했다. 적어도 공개적인 발언을 놓고 보면 북중 정상회담 '직후'에 이상 기류는 발견되지 않은 셈이다.
오히려 북한은 북중 정상회담 '이전'부터 미국에 불만을 표출했었다. 5월 6일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이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3월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된 이후에 처음으로 나온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은 "최대의 압박의 성과"라고 주장하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할 때까지 최대의 압박을 유지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유지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누가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에 영향을 미쳤을까?
하지만 폼페이오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이러한 불만은 많이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나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적(adversaries)이었다"며 북미간의 적대 관계 청산 의지를 내비쳤다.
또한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미국이 더 이상 북한 체제를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할 것이 진정으로 가능하다고 믿도록 어떠한 대통령도 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북한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안전 보장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폼페이오가 구두로 전달한 트럼프의 "새로운 대안"에 만족감을 표한 것은 다름 아닌 "확실한 안전 보장"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폼페이오의 평양 방문 이후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물론이고 폼페이오도 또다시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존 볼턴은 북한이 가장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리비아 모델'을 운운했다.
폼페이오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고기 먹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이 역시 북한은 모욕적인 발언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발언은 북한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언급하고 나온 데에 영향력을 행사한 쪽을 굳이 찾으라면 중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정은이 듣기에는 미국측이 평양에서 한 얘기와 워싱턴에서 한 얘기가 달라졌다고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불거진 '차이나 패싱론'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차이나 패싱론'이 바로 그것이다. 청와대는 5월 22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두 정상이 남북한이 연내 추진키로 합의한 종전선언을 북미정상회담 이후 3국이 함께 선언하는 방안에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또다시 중국이 빠진 셈이다.
3자 종선 선언의 취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2일 언급한 바 있고, 판문점 선언에는 3자, 혹은 중국을 포함한 4자로 추진키로 했었다.
중국의 참여 문제가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종전 선언은 3자가 하고 평화협정에는 중국도 참여하는 4자 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월 4일 문재인과 시진핑은 전화통화를 갖고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중 두 나라가 긴밀히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해나가기로"도 했다. 문맥상 중국도 종전 선언부터 참여한다는 점에 합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나온 청와대의 발표에는 또다시 중국이 빠졌다.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이러한 양상의 내막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문 대통령이 시진핑과의 통화에선 중국의 참여에 동의했다가 트럼프를 만나고선 중국을 제외시키기로 했다면, 상황은 복잡해질 수 있다.
한중간의 전략적 불신이 또다시 불거질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40일 동안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의 혈맹 관계 복원을 공언한 북한의 입장과도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참여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은 한국전쟁의 핵심적인 참전국이자 정전협정 서명국이다. 또한 1990년대 후반에 있었던 4자회담에도 참여했었고 6자회담의 의장국도 맡았다.
이 사이에 중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영향력도 눈에 띠게 강해졌다. 이런 역사와 현실을 두루 감안할 때, 종전 단계부터 중국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한미간의 협의를 통해 중국의 참여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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