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등판’의 진짜 의미는?

[정욱식 칼럼] 북한과 협상에도 지피지기가 필요하다

5월 16일 북한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의 내용을 짚어보기에 앞서 두 가지가 눈에 띠었다. 하나는 한 동안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계관이 등판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례적으로 김계관 개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을 성토하고 나선 것이다.

왜 그랬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미 협상의 산증인'인 김계관이야말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상대할 적임자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등판하자 백악관은 북한의 반발을 "예상했던 일"이라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리비아 모델은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공든 탑'이 김계관과 볼턴의 리비아식 모델을 둘러싼 설전으로 '모래성'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에 백악관은 긴급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그리고 세라 샌더스 대변인이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그는 '미국의 비핵화 해법이 리비아 모델인지 아니면 볼턴 개인의 주장하는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것이 우리가 적용 중인 모델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나는 리비아 모델이 (정부 내) 논의의 일부인 것을 본 적이 없다"면서 "우리가 (리비아 해법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로써 볼턴과 함께 돌아온 '리비아 모델'은 씁쓸한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도 커졌다. 대신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의 인정 투쟁 욕구를 반영하듯 "트럼프 모델"을 추구할 것이라며 "100% 자신감이 있다"고 장담했다.

CVID는?

김계관의 등장과 함께 볼턴이 그토록 신봉했던 리비아 모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문제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김계관의 성명에는 더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우선 김계관은 CVID에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볼턴은 "CVID라는 회담의 목적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라고 맞섰다. 여기에는 김계관과 볼턴의 오래된 악연도 깔려 있다.

CVID가 공개 석상에서 처음 등장한 시점은 2003년 4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미-중 3자회담 때였다. 이 자리에서 미국 대표로 나선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는 "CVID 방식으로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만 협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CVID는 켈리의 작품이 아니었다. 그는 네오콘의 허수아비로 불릴 정도로 실권이 없었고 CVID는 볼턴과 그의 네오콘 친구들이 창안한 것이었다.

그 이후 북한과 미국은 2년 넘게 6자회담 장에서 CVID를 둘러싼 거친 설전을 벌였다. 그 결과는 2005년 9월에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 담겼다. 완전한(Complete)과 불가역적인(Irreversible)이 빠지고 검증가능한(verifiable)만 남았다. 네오콘들을 상대로 설전을 벌여 이들 표현을 뺀 당사자가 바로 김계관이었다. 북한이 한동안 공개 석상에서 보이지 않았던 김계관을, 그것도 개인 성명을 통해 등판시킨 것은 CVID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치 않다. 리비아 모델은 볼턴 '개인'이 신봉한 것이지만, CVID는 볼턴이 안보보좌관으로 기용되기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 차원에서 북핵 해결의 목표로 제시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7월 베를린 선언에서 CVID를 언급한 바 있고, 이는 한미일의 공동의 목표처럼 되고 말았다. 해프닝으로 끝난 리비아 모델과는 달리 CVID는 그 생명력도 질기고 그래서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경제적 흥정물"이 아니라니까!

김계관의 담화에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있었다.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 한 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이는 실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폼페이오의 발언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5월 11~13일에 걸쳐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거나 "북한은 농업 장비와 기술, 에너지가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인데 김정은 위원장은 (핵포기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우리의 기업인과 모험가, 자본 공급자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이들과 이들이 가져올 자본을 얻게 될 것"이라며 "미국 민간의 투자를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국내 대다수 언론은 폼페이오가 '북한판 마셜 플랜'을 제시했다며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김계관은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핵 문제는 경제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북한의 오래되고도 일관된 입장이었다. 1990년대 초부터 핵 협상에 참여했던 김계관은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겠냐'며, 핵 포기의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운운한 폼페이오와 이를 두고 '북한판 마셜 플랜'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한 남한 언론에 일침을 가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경제건설을 "새로운 전략적 목표"로 천명한 김정은 정권도 미국의 대북 투자와 무역에 관심을 가지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김계관의 성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이미 조선반도 비핵화 용의를 표명하였고 이를 위하여서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그 선결 조건으로 된다는 데 대하여 수차례에 걸쳐 천명하였다."

협상의 기본은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있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 때에만 협상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을 상대로는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외면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마치 북한이 경제적 보상을 바라고 핵을 개발한 것처럼 몰고 가는 언론과 평론가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잘못된 진단은 황당한 기우로 연결된다. '미국은 돈을 안낼 테니 "2100조원"에 달하는 '북한판 마셜 플랜'에 소요되는 비용은 결국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될 것'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이자 상응 조치로 줄곧 얘기해왔던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공갈을 끝장내는 것"에 대한 논의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여전히 금기시되거나 게걸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조선 적대시 정책 철회"에는 크게 네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군사적 위협 해소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대북 제재 해제를 포함한 북미간의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가 바로 그것들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에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당사국들의 국익과 세계 평화와 번영에도 이로운 것이다.

미국의 대북 핵위협은 어떠했는가? 미국의 <에이피> 통신은 한국전쟁 발발 60년째를 맞이해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분석해 다음과 같은 전했다. "1950년대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반복적으로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왔고, 계획해왔으며, 위협해왔다."

그런데 이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 이후 오히려 미국의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더 빈번해졌고, 트럼프는 사실상의 핵 공격을 의미하는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 파괴" 등의 발언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선 북한을 60번 넘게 언급하면서 핵선제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면서 과연 한반도 비핵화가 가능할까? 그리고 그것이 온당한 것일까? 앞서 소개한 <에이피> 통신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미국의 핵 위협은 북한에게 핵무기를 개발·보유할 구실을 주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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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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