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동운전'의 시대

[이충렬의 정권+교체] 남북 공동운전으로 2+2시대를 열다

1. 새로운 메가트렌드로 접어든 한반도

지각변동,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축발시킨 대변동을 일컬음이다. 상시적인 전쟁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대결과 반목에서 협력과 경쟁으로.

무엇보다 감격스러운 것은, 이번의 대변동은 외부로부터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4.27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1945년이래 강요되어온 민족대결의 전쟁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남한과 북한이 새로운 행보를 시작하자마자 전세계는 두 코리아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분석하기 바쁘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중국 역시 남북한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자신들이 패싱당하지 않기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70여년만에 처음 맞이하는 진풍경이다. 우리가 민족분열의 소모전에 빠져있으면, 열강의 먹이감이 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치면 어느 열강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한다.

남북한에 평화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고 있다. 평화, 공존, 협력과 번영 등이 새로운 시대를 관통할 메가트렌드가 될 것이다. 이 메가트렌드에 적응하는 세력은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것이고,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세력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2. 북한의 계몽군주

이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계몽군주적 리더십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1년 집권했을 때부터 김정은 위원장은 새로운 노선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을 초청하기도 하고, 미국식 문화인 미키마우스와 디즈니랜드를 대중들에게 공개하기도 하는 등 외부세계와의 개방정책을 염두에 둔 흔적을 보였다.

결정적인 것은 2014년 9월 아시안 게임 폐막식 때, 당시 북한 정권의 2인자, 3인자, 4인자를 한꺼번에 파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은 면담조차 거부하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전력투구하게 된다.

국내적으로도 선군정치(先軍政治)를 뒤로 물리고 당 중심의 정치를 지향했다. 장마당을 활성화시키고, 경제개혁을 통해 새로운 경제모델을 지향함을 뚜렷이했다.

작년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해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뒤, 올초 신년사에서 노선변화를 공식화한 이래 그는 이때까지 알려진 것과는 전혀다른 면모와 신노선을 전세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래 북한은 오랜기간 '유훈통치'의 시대를 보냈다. 국제적인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내부적인 대기근으로 인해 체제유지조차 힘든 시기였다. 이때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종의 쇄국정책을 단행하였다.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였다.

2018년에 이르러, 김정은 위원장은 사실상 유훈통치를 마감하고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세계에 선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북한판 개혁개방시대의 개막으로 보인다. 그의 롤모델이 중국의 경제번영을 이끈 덩샤오핑이라는 평이 많다.

문화대혁명으로 정치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오쩌둥과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한 덩샤오핑의 차이점을 외국유학경험으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마오쩌둥은 평생 중국 농촌을 중심으로 사유한 반면에 덩샤오핑은 20대초 프랑스 파리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경험이 달랐다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세계관의 차이는 국가적 진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북한과 같은 수령제 국가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김정은 위원장과 사실상의 2인자인 김여정 노동당부부장은 10대를 유럽의 선진국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김위원장은 그의 관심이 체제안전보장과 인민들의 생활향상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북한체제를 흔들지 않는 이상 국제평화와 비핵화에 적극 협력할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인민들에게 주문할 생각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북한에 유럽식 교육을 받은 계몽군주가 출현했음을 우리는 인정하고, 이것을 계기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혹자는 그의 진심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만약에 북한이 국제사회를 실망시킨다면 다시는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없어질 것이다. 의심하기보다는 협력하여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3.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에 정반대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좋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촛불혁명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세운 민주정부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키고 또 한번 감격했다.

그런데 촛불혁명은 국내정치의 적폐청산과 개혁에 머무르지 않고 한반도의 대사변을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작년 북한의 핵미사일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이 전쟁 일보직전의 위기까지 치달았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공개석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제재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전쟁가능성에 대해서는 확고히 쐐기를 박았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보수정권은 북한붕괴라는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서 대결노선을 고집했었다. 이에 반해 문재인정부는 6.15선언과 10.4 정신을 계승하여 남북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미국과의 정면대결이라는 외통수로 치달려가던 북한의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만큼은 반대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그래도 믿고 상의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결단을 내렸다. 문재인정부를 믿고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을 밀어보기로 한 것이다. 한편 북한의 신뢰를 얻은 문재인 정부야말로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소중한 '중재자'로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통한 손익분석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문재인대통령이 보증한 북미 빅딜은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일 수 밖에 없다.

4. 남한의 냉전보수세력은 어디로?

대변동의 시대에 가장 당혹한 세력은 말할 것도 없이 남한의 냉전보수세력이다. 보수세력 중에서도 시장보수세력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남북경협과 북방경제밖에는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북한과의 화해를 적극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과의 대결을 생존의 밑천으로 삼고 있는 안보보수 혹은 냉전보수세력이다. 이들은 주로 정치권에서 둥지를 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이끌고 있는 홍준표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쑈'라는 발언을 했다가 자당의 후보들로부터도 집중적으로 성토를 당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손바닥으로 막아보려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북한과의 대화전략으로 돌아서자 멘붕상태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국회의석(115석)으로 정치를 동결시키고 있다. 입법부를 마비시켜 문재인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들은 현명하게도 자유한국당의 이런 국정마비전략을 눈치채고,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바닥까지 내려가야 보수세력이 정신을 차릴 것인가? 보수세력 내부의 혁신 움직임이 언젠가는 일어나길 바란다.

5. 남북 공동운전으로 2+2시대를 열다

새로운 시대는 2+2를 축으로 하는 시대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을 당사자로 하는 새로운 국제관계의 틀이다. 한국전쟁에서 피를 흘린 4개국이 평화체제의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이 새로운 체제의 기축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해관계와 안보전략이 공동의 목표를 행해 초점을 맞추기 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매우 아슬아슬하고 또 위태로운 국면도 많이 맞이할 것이다.

내전의 당사자인 두 나라가 체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제1의 협상파트너로 신뢰하고 인정할 때, 두 나라의 국익도 극대화될 것이다. 또 주변 강대국도 한민족의 자주성과 결정력을 존중할 것이다.

전쟁시대의 대결과 반목에서 평화체제의 협력과 경쟁이라는 미증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같이 개척해야 한다. 어느 한편의 주도권이나 일방적 독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민족적 각성을 바탕으로 한반도는 우리가 '공동으로 운전'한다는 원칙을 갖고 해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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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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