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족집게 과외', 트럼프-김정은 통할까?

[정세현의 정세토크] "비핵화·북미수교·평화협정 삼위일체 돼야"

2018년 4월 27일,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2000년, 2007년에 이어 또다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지만, 그 무게와 의미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이 핵 문제보다는 남북관계를 우선적으로 다뤘고 2007년 회담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략의 큰 테두리에서 진행됐다면, 2018 정상회담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운전자로 나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7년 정상회담은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무장 속도를 늦추기 위한 미국의 계획 및 전략 테두리 내에서 진행됐다고 봐야 한다. 북핵 능력의 고도화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의 주문을 받고 정상회담을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런데 이번에는 북한이 국가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했고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까지 나오는, 즉 북핵 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진입한 상황에서 북미 간 갈등‧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됐다.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독대했을 때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을 대해야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코치해줬을 것이고,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해줄 것"이라며 "우리가 말 그대로 '운전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건데, 이렇게 양쪽에서 조율하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빠른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이 올해 안으로 시한이 정해진 반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시기가 명시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 정 전 장관은 "비핵화의 시한을 정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몫이다. 문 대통령이 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화낸다"고 일갈했다.

그는 "주방장인 트럼프 대통령이 메인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재료 손질해주고 준비해주는 정도가 돼야지 다 해놓으면 안된다"며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트럼프가 빛나게 해줘야 한다. 비핵화뿐만 아니라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정 전 장관은 미북 양측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비핵화와 북미수교, 평화협정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사한 및 이를 몇 단계로 나눠서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과 우리가 바라는 빠른 비핵화를 이루려면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물리적으로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에 정 전 장관은 "트럼프가 2년 이상을 기다릴 수가 없다. 본인의 대선 때문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2년 내에 이 모든 과정을 끝내야 한다"며 시일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는다. 정전협정은 서로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협정 자체가 내용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복잡할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물론 기술적으로는 북한의 핵 능력 상태를 봤을 때 완전한 비핵화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한다. 기술적으로 검증하고 신고가 제대로 됐는지 따지고 들어가고 실무회담에서 까다롭게 굴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핵 물질은 들고 나가고 시설은 폐기하겠다면서 현재 있는 무기는 비싸게 팔겠다는 식으로 가면 2단계로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3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2018 남북 정상회담과 지난 2000년, 2007년 있었던 정상회담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정세현 :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는 북한의 핵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기본 합의가 있었고 이후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미국도 북한이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죠. 오히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북한이 핵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서 3개월 내로 북한과 무역 및 투자 장벽을 낮춰주기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합의 타결 2주 뒤 열린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의회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혔습니다. 제네바 합의 이행에 차질이 생긴 것이죠.

그럼에도 북한은 경수로 공사에 대한 기대 때문에 핵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핵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간 화해 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경우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앞서 2005년에는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성명 직후 미국이 BDA의 자금줄을 묶으면서 합의는 사실상 깨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를 목도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압박으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9.19 공동성명에서 이야기한 평화체제까지 달성돼야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1월 하노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김정일을 만나 종전선언을 협의하자"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남북 정상회담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또 2007년 2.13 합의가 나오면서 북한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졌던 측면도 작용했습니다.

즉 2007년 정상회담은 핵실험 이후에 북한의 핵무장 속도를 늦추기 위한 미국의 계획 및 전략 테두리 내에서 진행됐다고 봐야 합니다. 북미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이죠. 즉 북핵 능력의 고도화를 예방하기 위해서 미국의 주문을 받고 정상회담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한이 국가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했고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까지 나오는, 즉 북핵 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진입한 상황에서 북미 간 갈등‧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됐습니다.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죠.

지난해 11월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미국은 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 대기권 재진입을 하든 못하든, 일단 북한이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쐈다는 것이 북한에게는 도발이지만 미국에게는 수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북한에 대해 자극적인 말을 하지 않고 방향 전환을 준비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걸 감지한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핑계로 남북대화가 재개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등에 업혀서 워싱턴으로 가려고 한 것이죠.

즉 북한은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비핵화도 북미 관계 개선이 확실하게 가시권 내에 들어오면 실행할 준비를 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징검다리 차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 남북 정상회담 시기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있지도 않았었죠.

프레시안 : 이전의 핵 협상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남한이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제네바 합의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북미 협상을 반대했습니다. 당시 협상 방식으로 북한을 다루면 기고만장해져서 일을 그르치니까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바람에 오히려 미국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릴 정도였죠.

미국은 북핵 문제가 소위 '기 싸움'이나 '오기'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서 눌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남한을 끼워주지 않았던 겁니다. 나중에 남한이 중간에라도 들어가려고 하니까 미북 모두 '나중에 결과 통보해 줄게'라는 식으로 남한을 소외시켰습니다. 당시 귀동냥하느라 애 좀 먹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면서 트럼프의 귀를 잡아둔 것 같습니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배석자 없이 독대했을 때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을 대해야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해 코치해줬을 것이라고 봅니다.

▲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배석자 없이 독대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이건 김 위원장 입장에서 반드시 알아가야 할 정보였을 겁니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이 이른바 '최고 존엄'이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는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의 성과를 끌어내야 '최고 존엄'의 능력을 인민들한테 인정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편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종의 '족집게 과외'를 해주는 셈이죠. 우리가 말 그대로 '운전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건데, 이렇게 양쪽에서 조율하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빠른 성과가 나올 수 있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끌어내려면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6월 초 이야기까지 나왔던 북미 정상회담을 5월로 당겼죠?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을 북한에 보낸 이후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고, 이후에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서 확실하게 자신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가지고 북한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급하다고 할 정도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리 잘될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 것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이번에 성과를 내서 11월 중간선거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2년 내에 비핵화를 끝내서 본인의 재선에도 영향을 미치고 싶어할 겁니다.

또 그는 25년 동안 전임 대통령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북한 핵 프로그램을 본인이 확실히 해결하겠다고 주장할 겁니다. 이게 근거만 있다면 사실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히 되는 거죠.

물론 북한의 CVID만 보장 받고 미국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갔을 때 북한으로부터 'CVID를 끌어내고 싶으면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를 하라'라는 요구를 받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프로세스, 북미수교 프로세스 등 3개의 프로세스가 물려 들어가는 구조로 판을 짜야 할 것입니다.

프레시안 : 돌이켜보면 지난 3월 31일 ~ 4월 1일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갔고 이달 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건 미국과 교감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세현 :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다녀온 뒤 그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각)에 주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과 회담이 멋질 것이라고 말했죠. 이는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대화하면서 CVID 약속을 받고, 대신 미국이 종전문제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결과로 보입니다.

종전선언은 사실 평화협정의 입구입니다. 북한은 이걸 미국이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을 겁니다. 미국과 수교하고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자신들이 비핵화를 못할 이유 없다고 했을 겁니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이 "앞으로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살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분명 이 말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종전선언? 체제 인정? 북미 수교? 평화협정? 해주지 뭐! 이런 반응을 보였을 수 있습니다.

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트럼프의 생각을 확실하게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방미 때 트럼프가 절반 정도 입장이 바뀌었고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북한에 가면서 북한과 협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입장으로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 시각)에는 종전 논의를 축복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이건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서론을 띄우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을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필요하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만나는 프로세스를 트럼프가 결정하도록 해놓으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이 제대로 치러졌습니다. 올해 종전을 선언한다는 건 평화협정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인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해야 할 것들의 절반 이상을 남북 정상회담에서 마무리 해놓은 셈입니다.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 문제를 선언문에 명시했는데 완전한 비핵화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비핵화에 바꿔야 하는 과정이죠. 또 평화협정은 북미 수교와 표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결국 비핵화와 북미 수교, 평화협정이 삼위일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에 대한 운을 뗀 정도가 아니라 절반 정도의 반제품을 만들어 놓은 상황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완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를 언제까지 끝낸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등도 어떤 단계를 거칠지가 착착 맞물려 들어가야 합니다.

프레시안 : 판문점 선언을 보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경우 연내 추진하겠다고 시한을 못박았습니다. 하지만 비핵화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만 있고 그 시한은 없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정세현 : 비핵화의 시한을 정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몫입니다. 문 대통령이 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화냅니다. 주방장인 트럼프 대통령이 메인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재료 손질해주고 준비해주는 정도가 돼야지 다 해놓으면 안됩니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트럼프가 빛나게 해줘야 합니다. 비핵화뿐만 아니라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미시간 주에서 열린 유세집회에서 "북한과 만남이 오는 3∼4주 이내에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물론 미국과 국내 일부 세력은 북한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에 시한이 없다, 북한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도 미국을 못 믿는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은 2007년 2.13합의에 입각해 2008년 7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24만 톤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한 조건으로 이뤄진 것인데요. 문제는 미국이 직후에 식량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북미 양측이 서로에 대해 신뢰가 깊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비핵화와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은 동시에 맞물려 진행돼야 합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시한 및 이를 몇 단계로 나눠서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2년 내에 비핵화를 끝낸다고 하면 북한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핵 무기 폐기는 마지막으로 남겨 두고 핵 물질과 핵 시설을 동시에 폐기하는 식의 2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협정도 이에 맞춰서 2단계로 가야 합니다.

미국과 우리가 바라는 빠른 비핵화를 이루려면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빨리 끝내야 합니다. 그러면 북미 수교도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연락대표부는 언제까지 설치하고 무기 폐기를 언제까지 하면 대사관을 설치하는 등의 단계별 로드맵이 있어야 합니다. 평화협정도 가안을 언제까지 마련하고 최종적으로 언제 평화협정에 사인할 것인지 등의 로드맵을 잡아야 합니다.

"핵 무기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 잘 살수 있는 상황만 손에 쥐어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김정은의 이야기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 대신 값을 치러달라는 겁니다. 그게 북미수교이고 평화협정인데, 중간에 경제지원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 기존에 있던 핵 무기 폐기 과정에서 돈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당시 비핵화할 때 기존 무기를 돈을 주고 팔았던 사례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 비핵화와 북미수교-평화협정이 같이 맞물려야 한다는 것인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1990년대 초 비핵화할 때 최대한 순조롭게 했지만 2년 반이 걸렸다고 하던데요. 2년 반 뒤에 가서야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한다고 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런데 트럼프가 2년 반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본인의 대선 때문입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2년 내에 이 모든 과정을 끝내야 합니다. 2020년 5월이면 이걸 무기로 재선 선거운동을 할 수 있거든요.

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정전협정은 서로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협정 자체가 내용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평화협정은 그렇게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북한의 핵 능력 상태를 봤을 때 완전한 비핵화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합니다. 기술적으로 검증하고 신고가 제대로 됐는지 따지고 들어가고 실무회담에서 까다롭게 굴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죠. 그런데 김 위원장이 핵 물질은 들고 나가고 시설은 폐기하겠다면서 현재 있는 무기는 비싸게 팔겠다는 식으로 가면 2단계로도 가능합니다.

종전선언을 입구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적대관계가 청산되니까 북미 수교도 가능합니다. 북미가 각자 영토에 상대방의 대사관이 들어서고 미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면 그 다음부터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치지 못합니다. 북한은 이런 물질적인 보장을 원합니다.

또 북한은 국제적인 협조 체제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정전협정은 이를 보장하는 국제 협조 체제가 없었다는 것이 큰 약점이었습니다. 북한과 중국, 유엔사령부가 3자로 추진했고 한반도의 직접 이해 당사자인 소련(현 러시아)과 일본도 없었습니다. 이게 빠졌기 때문에 한쪽이 깨면 그대로 깨지는 취약성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평화협정 추진은 남북미중을 비롯한 관련국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성명을 내든지 유엔 안보리의 지지를 받는 것과 같이 못을 박아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마음 놓고 개방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춰나갈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중국도 참여해야

프레시안 : 그런데 '완전한 비핵화'가 한반도의 비핵화 아닙니까? 주한미군 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의 전략자산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의 대북특사단이 평양에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한 북미 수교도 선대 유훈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이미 이건 1992년부터 계속 나왔던 이야기고요. 이를 정의용 실장이 트럼프와 만났을 때 전했을 겁니다. 그게 트럼프에게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일 수 있습니다. 미군을 한반도에 놔두는 조건에서 북미 수교해주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물론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고가의 전략 무기를 파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수익원이 줄어들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제 정치인이 돼있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냉전 이후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이자 '희대의 악마'로 불리는 북한을 상대로 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적잖은 성과입니다. 트럼프는 이러한 성과를 내고 싶어 할 겁니다. 우리가 이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 앞에서 정상회담 이후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판문점 공동 취재단

전략자산의 경우 태평양 쪽에 있는 태평양 사령부 휘하에 있는 핵무기 실은 항공모함이 한반도에 진입하기도 했는데, 상황이 변하면서 이런 전략자산이 쉽게 들어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사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목적은 북한을 핑계로 한 중국 견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그 핑계가 없어졌으니 한반도 쪽으로는 힘들 겁니다.

다만 태평양 함대가 이제는 한반도가 아닌 남중국해 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현재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북한이 미국의 품 안으로, 그것도 남한의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중국은 남북미 3개국이 자신을 견제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 이번 회담 결과로 7월 27일에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요.

정세현 : 남북미중 정상회담 통해서 7월 27일에 판문점에서 할 수도 있죠. 트럼프 대통령이 결심하기 나름입니다. 10.4 정상선언에는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한국전쟁의 공식 종료를 선언하자고 돼 있고, 이번에 판문점 선언으로 그 프로세스가 시작되기 때문에 종전선언을 그 자리에서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을 빼면 안됩니다.

프레시안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정세현 : 종전선언 및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되고 평화협정 및 북미수교 협상이 시작되면 법리상 유엔 대북 제재는 유보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비핵화가 되고 북미수교랑 평화협정이 마무리 되면 제재는 정지되는 겁니다.

협상이 시작되면서 북한의 대외 경제활동이 정상화될 수도 있습니다. 협상 시작되면 유엔 결의는 유보 상태로 해주고 이와 함께 남북 간 경협을 판문점 선언을 기반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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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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