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가습기살균제법, 국회는 응답하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약 없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

"억울해서 못 살겠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가슴을 치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말이다. 당시 기업들은 빈번히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물때와 세균 걱정없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가습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허위·과장 광고를 하였다. 광고를 믿고 친환경적인 제품이라는 말에 속아서 오랫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장기간 사용하다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질환을 앓는 많은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억울할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사용하던 제품이 유독성 제품이란 사실을 알고 많은 피해자들은 억울함만이 아닌 죄책감까지 감당해야만 했다. 피해자들은 유독성 제품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제품을 구매해서 가족들에게 정기적으로 사용했던 데 분노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주된 성품은 유독성이며 그 종류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 그리고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으로 구분된다.


제품별로 다르지만 대체로 1994년부터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되었다. 미국화학학회지 학술지에 보고된 자료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제품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통해 계산된 호흡성 값은 CMIT/MIT 9.41, PHMG 2500, PGH 1만500이였다. 호흡독성값은 1보다 크면 위험하고 숫자가 크면 클수록 위험도가 커진다.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발표 이후 이 사건이 공개되었고 그해 11월 11일 모든 제품 리콜 조치가 시행되었다. 물건은 회수되었을지 몰라도 독성물질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피해자들의 건강 악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증상도 다양하다.

지난 4월 20일을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접수만 무려 6011명이다. 아직 억울함도 풀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은 무려 1321명이다. 다수의 피해자는 있지만 정부는 폐섬유화에 한정해서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비특이적인 질환인 천식, 비염, 폐렴과 같은 호흡기계질환과 눈병, 피부질환, 심장질환, 간질환 등을 앓는 많은 피해자는 정부의 기준에서 배제되고 있다. 정부로부터의 배제된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넘어서 분노감이 점점 더 스스로 지킬 힘조차 없어지고 있다. 정부는 2011 년 11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무려 6년이 지난 시점 가운데 2017년 8월 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제정되었다.

ⓒ오승훈

특별법이 지닌 문제

세월호 참사 및 가습기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최예용 부위원장은 "특별법은 지난 2월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반쪽짜리"라며 "당초 특별법 원안은 모든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구제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법으로 처벌하자는 내용이었으나, 현재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모든 내용을 담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특별한 문제점들이 있다. 환경부 및 보건복지부가 구상권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선지급한 보상금을 기업으로부터 받지 못하리라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향후 기업이 파산 신청을 한다거나 혹은 다른 변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피해자 인정 범위를 협소하게 만들었다. 1250억 원 규모의 특별구제계정 기금만으로는 피해 구제 재원을 국한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특별법안에는 국가의 책임을 확실히 하지 않았다. 유독물질인 PHMG, CMIT·MIT 등에 대한 제조·판매 허가를 내린 정부의 사과와 책임이 이 특별법에서는 적용되기가 어렵게 되었다. 소멸시효로 인해 구제 대상에서 빠지는 사례가 나타났고 끝으로 징벌제가 삭제되는 등의 문제로 인해서 개정의 필요성이 지속해서 제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15명을 청와대에 초청해서 간담회를 했고 정부를 대표한 사과 및 법률의 개정이나 제정에 필요한 사안들을 이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 2017년 8월 8일 청와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족들을 초청해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까지 개정안을 제출하였으나 쟁점 법안으로 분류가 되었다. 특별법의 문제점을 3개의 관점으로 각각 바라보았기에 총 3개의 개정안이 상정되었고 결국 쟁점법안으로 분류되어서 계류 중이다. 각 법안의 공통점들은 피해자 범위 확대, 조사연구계획, 추모사업, 특별구제계정에서 정부출연금, 구제급여 손해배상청구권 삭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범위를 누가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절차를 거칠지는 각 법안이 다르게 규정한다. 각 법안별로 조사연구를 수행할 계획은 있지만, 어떤 목적으로 진행할지는 서로 차이가 있다. 이미 소천한 피해자 1321명의 추모사업을 지원하는 방향도 법안마다 다르다. 억울하게 떠난 피해자들의 유가족들은 징벌적 손해 배상제를 강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정의당은 20배 혹은 더불어민주당은 10배 이내에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실은 징벌적 손해 배상 요구를 하면 법사위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을 고려해서 포함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 시효가 20년이라는 문제점이 모두 있어서 적게는 25년(박주민 의원, 임이자 의원)에서 많게는 40년(이정미 의원)으로 확대하였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적용을 배제하였다. 향후 국가 어떻게 적극적인 역할을 규정하고 이 문제를 대처하며 예방까지 해야 할지 차이가 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가 지난 3월 27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안을 논의할 알았으나 미세 먼지 관련 법안만 논의했고 이번 개정안들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였다. 각종 현안들로 언제 또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가 개최될 수 있을지 모른다. 피해자들은 그저 답답하게 기다리는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남은 과제들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국가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3조 항목). 피해자들의 신고 접수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고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둘째, 손해배상 책임 조항에서 사업자에게 입증 책임 의무가 주어져야만 한다(4조 항목). 셋째, 피해자 판정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는 먼저 권역별 거점 병원의 판정 표준화를 위해서 통합 조정할 기관을 제정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는 정신, 심리 지원의 필요성이 있는 이들에게 완화 의료적인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완화 의료는 임종기 환자뿐 아니라, 희귀병·난치병에 걸린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으며 그의 가족까지 지원하는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돌봄 서비스이다. 호스피스 완화 의료는 진단부터 통증 완화, 가족들을 위한 상담, 사별 이후 가족들까지 고려하기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가장 적절히 요구되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는 이들에게 의료적, 심리적, 정서적 및 종교적 지지까지 통합된 완화 의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오승훈 영국 더럼대학교 박사 연구원은 호스피스 완화 의료 사회복지사입니다. 오승훈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seunghoon.oh@durham.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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