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제대로 이용하고 계십니까?
'내과(內科)'와 '외과(外科)'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국민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뜻에 대해서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열 명 중에 한 명도 되지 않는다.
내과는 안을 보는 과이고, 외과는 밖을 보는 과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제일 많은데, 안과 밖을 보는게 어떻게 다르냐고 다시 물으면 대부분이 답을 하지 못 한다. 일부는 외과는 외상을 보는 과이고, 내과는 질병을 보는 과라고 대답하는데, 맹장 수술은 외상도 아닌데 왜 외과에서 진료하는지 반문하면 이 역시 대부분이 답을 하지 못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외과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몸 외부의 상처나 내장 기관의 질병을 수술이나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의학 분야'라 되어 있다. 반대로 내과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내장의 기관에 생긴 병을 외과적 수술에 의하지 않고, 물리 요법이나 약으로 치료하는 의학 분야'라 되어 있다. 안과 밖을 의미하는 대조적인 한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의미는 안팎과 거의 관련이 없다.
내과는 주로 약물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분야를 말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일반적인 의사는 모두 내과 계통 의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에 외과는 '수술'이라는 특별한 수단을 이용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분야를 말한다. 외과 계통의 의사도 약물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주된 수단은 분명히 수술이다.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신경과 등의 임상 과목들은 내과 계통이고,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임상 과목들은 외과 계통이다.
응급의학과는 외과일까요, 내과일까요?
따라서 내과와 외과는 치료에 접근하는 시각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응급의학과 전문의라고 소개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인상 때문에 외과 계통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실제는 내과 계통 의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가 흥건한 교통사고 환자를 진료할 때도 어떤 약물과 수액을 사용하여 치료할지를 고민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처럼 한 사람의 멋진 의사가 응급실에서 응급 처치부터 수술방에서의 수술까지 이어서 진행하는 경우는 없다. 수술방에서 진행되는 수술적 치료에 대한 고민은 오롯이 외과 계통 의사들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통, 요통, 복통 등 가벼운 통증의 경우 가급적 내과 계통의 의사에게 먼저 진료를 받기를 권한다. 몸에 부담이 적은 생활습관 교정, 물리 치료, 약물 치료 등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광고 혹은 주변의 경험담에 이끌려 외과 계통부터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선택한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경우가 많다. 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환자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내과 계통 의사가 외과 계통 의사에게 수술을 의뢰하도록 하는 게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아플 때도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하다.
헷갈리는 병원 명칭
의료기관의 명칭 역시 익숙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요통을 주로 진료한다고 광고하는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그 명칭은 척추전문의원, 척추전문센터, 척추전문병원, 척추전문종합병원 등 각양각색이다. 국민 대부분은 단순한 명칭의 차이 혹은 규모의 차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의료기관 명칭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병원을 찾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료기관을 입원 병상 수와 진료 과목에 따라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 종합병원, 전문병원, 요양병원으로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병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최소 30개 이상의 병상을 운영해야 한다. 종합병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최소 100개 이상의 병상과 최소 7가지 이상의 임상 과목 전문의가 상근해야 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명칭의 사용은 모두 불법이다.
이와 같은 명칭의 차이가 무엇이 중요한지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진료비가 대표적이다. 외래 진료비 중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다르다.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은 보험 적용 대상 진료비 중 50%를 환자가 부담하지만, 일반병원급 의료기관은 40%, 그 이하 의료기관은 30%만을 부담한다.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는 그 차이가 더욱 크다. 물론 비급여 진료비의 경우 기관마다 자율적으로 청구하기에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평균만을 놓고 보면, 전체 의료비 중 비급여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의료기관에 따라서 대단히 다르다. 2015년 기준으로 의원과 종합병원은 14.8%와 17.3%인데 비해서, 일반병원은 31.2%에 이른다. 두 배가 넘는 큰 차이이다.
의료기관의 명칭에 따라서 의료기관이 통과해야 하는 인증평가의 기준도 상이하다. 의료 광고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명칭으로 OO전문병원이 있다. 하지만 특정 질환 환자 구성 비율이나 전속 전문의 충족 여부 등의 기준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전문병원'이라고 지정받은 의료기관은 전국적으로 총 108개 기관에 불과하다. 그 외 전문병원들의 경우 시설이나 인력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의사와 환자의 정보 불균형 개선해 가야
사실, 환자 입장에서 의료기관을 현명하게 이용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정보의 불균형' 때문이다. 의료인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갖고 있는 의학 지식의 양과 수준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격차가 있다. 흔히 알려진 질환 중의 하나인 빈혈(anemia)만 하여도, 평범한 시민들은 보통 '철결핍성 빈혈'만을 떠올리지만, 의료인들은 최소 십 수 가지 이상의 여러 가지 빈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차이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사가 권하는 치료를 무시하기 어렵다. 이른바 '공급자 유인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는 대표적 예가 의료서비스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서구의 여러 국가들은 '주치의 제도'라는 제도를 통해서 환자의 질병에 관한 의학적 판단을 의료인에게 위탁하여 왔다. 하지만, 한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치의 제도가 자리잡지 못 하였다. 그 결과 부족하고 부정확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 스스로 의학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버렸다. 환자가 환자 역할이 아닌, 의료서비스 '소비자'와 같은 역할에 더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의료기관을 현명하게 이용하기 어려운, 이런 왜곡된 의료 환경을 빠른 시간 내에 개선하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주치의 제도 도입이나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같이 국민에게 익숙하지 않은 개혁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즉, 앞으로도 한 동안은 한국의 환자들은 환자 역할과 함께 의료서비스 소비자 역할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도, 의료계도, 시민사회도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공공 의료기관의 상담 기능 강화나 의료 상담 전담 콜센터의 운영 등 올바른 의료 정보 제공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계는 더 상세한 설명을 통해서 환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시민사회도 환자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강화하는 데 연대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각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할 때 국민은 현명한 의료서비스 소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대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는 내만복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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