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 그리고 권력 분산이 답이다

[최창렬 칼럼]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와 개헌

헌법은 국가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결단인 동시에 정치적 기획으로서 사회의 지향할 가치와 규범을 표상한다.

헌법 개정의 역사는 굴곡진 한국현대사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제헌 헌법 이후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꾼 1952년의 기형적 발췌개헌을 필두로, 이승만의 삼선을 가능하게 한 기상천외한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 1960년의 내각제 개헌을 거쳐,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의 제도적 완결판인 1962년의 개헌, 삼선개헌과 유신헌법, 전두환 독재의 토대를 마련한 1980년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 개헌 등으로 점철됐다. 이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최소한의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나 노동과 복지 등 평등을 지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담보하지 못했다.
한국 헌정사에서 아홉 차례의 개헌이 있었으나 4·19 혁명의 결과인 3차 개헌과 6월 항쟁의 산물로서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9차 개헌을 제외하고는 정당과 주권자의 참여가 배제되었다. 민의와 유리된 개헌은 권위주의적 방법을 통하여 정치권력에 의해 국민에게 강제로 부과되었다. 권력구조의 변경이 독재자의 권력욕구와 권위주의 체제의 지속을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개헌의 핵심 쟁점은 권력구조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지만 방법론에서 여권과 야당은 극명한 인식 차를 보이고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이원집정부제를 연상케 한다. 이원집정부제는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에 입각한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한다. 이른바 외교·국방·안보 등의 외치는 대통령이, 환경·보건·경제·복지 등 내치는 총리가 책임지는 구조다. 그러나 정치·경제·보건·복지·노동·환경·문화 등이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어 있는 국가의 기능적 측면에서 볼 때 경계 구분 자체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자유한국당은 분권형 대통령제의 방안으로 국회 선출 총리제를 주장하고 있다. 국회 선출 총리는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는 헌법 기관이다. 대통령 역시 국민의 직선에 의해 선출된 기관으로서 두 헌법 기구가 이념과 소속 정파가 다른 경우 이를 조정할 아무런 기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권력분산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헌법 기관들의 충돌에서 오는 부정적 측면을 비교할 때 실제 권력 운용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외치와 내치의 구분이 모호하고 정치적 정통성의 충돌로 야기되는 국정의 교착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개헌안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여권이 제안한 4년 연임의 대통령제는 대통령 권력의 견제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 분권형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미국의 순수대통령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법률안 제출권은 내각제의 핵심원리이다. 한국 대통령제의 내각제적 요소는 대통령 권력을 강화시킨다. 여당의 국회의원과 장관의 겸직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명시적으로 부인하는 요소다. 입법부가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제의 전형적 모습이다. 또한 예산을 대통령이 편성하고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면 감사원의 독립기구화는 유명무실하다. 사면권의 제한도 본질적으로 의회의 행정부 견제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대통령제의 운영 원리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다. 이는 실제 입법과 행정, 사법권의 융합을 거부하는 제도적 견제 장치를 의미한다. 한국 대통령제에서 실질적인 문제는 집권세력 내에서 청와대에 대한 견제의 부재다. 집권당이 대통령 후보를 공천하고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사실상 청와대 권력에 종속되는 구조에서 다른 제도적 개선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집권당 사이에는 국정을 책임진 집권 세력 내에서의 협력과 국회의 일각을 이루고 있는 정당의 권부에 대한 견제라는 다소 모순적 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당청 관계가 헌법 개정 변수는 아니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한 실질적 고민이 수반되지 않으면 권력분산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물론 선거제도 및 정당제도와 연계되어 있는 부분이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백년하청이었던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결국 개헌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야가 권력구조의 접점을 찾기 쉽지 않지만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한다는 공감대는 있다. 대통령 권한분산의 제도적 장치를 고민한다면 공통분모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에는 정당들의 정치적 이기주의라는 현실정치와 국민적 합의의 도출이라는 당위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각축한다. 과거 개헌과 달리 국민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개헌 과정을 지금이라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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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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