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에서 '건강 불평등'을 말하자

[복지국가SOCIETY] 새로운 지역건강정치를 시작하자

정치는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된다. 하나는 정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정책 과정과 관련된 측면이다. 정책 과정은 정책 의제 형성, 정책 결정, 정책 집행, 정책 평가의 네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국가 및 사회의 운영과 관련된 주요 정책 과정은 다양한 정치적 담론을 형성한다. 국가 및 사회의 운영과 관련된 주요 정책들은 공공 정책으로 명명할 수 있으며, 공공 정책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권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는 건강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

정치는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 정치는 국민의 소득과 주거를 결정한다. 정치는 실업률을 결정하고 국민이 지출하는 의료비를 결정한다. 정치는 교육의 질을 결정하고 식수와 공기의 질을 결정한다.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정치는 많은 결정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결정은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익히 알고 있듯이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다. 유전적 요인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생물학적 요인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흡연, 고위험 음주, 부적절한 영양 섭취, 운동 부족과 같은 생활양식과 관련된 요인들뿐만 아니라, 대기의 질, 식수의 질과 같은 물리적 환경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구분하는 교육 수준, 소득 수준, 직업계층도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계층을 양산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는 가장 높은 심급에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이상의 건강 결정 요인들 중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생물학적 요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요인들은 국가의 공공 정책의 영역이며 정치의 영역이다.

결론적으로 정치는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정치는 권력을 기반으로 하고, 권력의 크기에 따라 공공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건강에는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소득 수준, 교육 수준, 직업 계층에 따른 건강 불평등은 특정 건강 위험 요인에 대한 특정 사회경제적 계층들의 노출의 양과 크기를 결정하지만, 그 안에는 권력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공공 정책은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을 결정하지만, 동시에 건강의 사회경제적 불평등도 결정한다.

캐나다 출신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ivd Easton)은 정치는 사회를 위한 권위적 정책의 채택과 시행이며, 정치적 삶은 사회를 위해 채택된 일종의 권위적 정책과 그것이 시행되는 방법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행위라고 했다. 정치는 다양한 영역에서 작동하며 건강 영역에서도 작동한다. 이런 맥락에서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치 및 정치적 삶에 대한 정의를 건강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2017년 8월 9일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기 위해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건강 정치의 등장과 지방선거 공간의 중요성

이를 건강 정치라고 이름 붙인다면 건강 정치는 사회구성원들의 건강 및 건강 불평등 개선을 위한 권위적 정책의 채택과 시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건강 정치를 한다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건강과 건강 불평등 개선을 위해 채택된 일종의 권위적인 정책과 그것이 시행되는 방법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건강 정치를 사고한다면 우리는 권력과 공공 정책 과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우선 건강 정치의 맥락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권력은 사회구성원들의 건강과 건강 불평등의 개선을 주요한 정부 의제로 설정하고, 때에 따라서는 정치적 경합의 전면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권력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정치가들이 정치 권력을 획득하여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에 대한 책임성을 구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건강은 누구의 건강인가? 국가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민의 건강이며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지역주민들의 건강이다. 결국 건강의 주체는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다. 정치 권력의 주인들은 주기적으로 바뀌고 이들은 때로는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을 해치는 결정을, 때로는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을 도모하는 결정을 해왔다. 그러므로 건강 정치는 지속적으로 수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건강의 주체인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은 결정의 영향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 객체에 불과했다.

이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을 건강의 주체로 설정한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역사이다. 이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 결정 과정에 어엿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건강 정치를 한다는 것은 건강의 주체인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공공 정책 과정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다시 선거 정국이 형성되고 있다. 이번에는 지방선거다.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는 다양한 정치적·정책적 토론을 발생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지역 차원의 새로운 건강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건강 정치는 국가적 차원에서 시도될 수도 있지만, 지역 사회 차원에서도 시도해야 한다.

오히려 지역 사회는 새로운 건강 정치를 더 효과적으로 시도하고 제대로 작동할 환경을 가지고 있다. 지역 사회에는 지리적으로 한정된 지역에 같이 살고 있는 공동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공동체 주민들 간에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유대가 존재한다. 또한 공통적인 건강 결정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건강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보편적인 민감성을 가지고 집합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방의 정치 권력은 중앙의 정치 권력보다 지역 사회의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있다.

지역 건강 정치의 중요성과 새로운 가능성

돌이켜 보면,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의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과 관련한 지역 사회의 저항은 전국적 차원의 폐업 반대 운동과 결합해서 급기야는 '공공 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를 이끌어 냈고, 공공 의료 강화의 중요성을 전 사회적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주장 중에는 고압 송전탑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해친다는 내용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03년부터 진행된 성남시 의료원 설립 운동은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조금씩 그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새로운 건강 정치는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만 진행해서는 안 된다.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지속적·누적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 결정들 중 많은 부분은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르는 일상적인 행정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새로운 건강 정치는 일상적인 생활 정치로 구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건강 영역의 생활 정치는 그 자체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생활 정치를 구현한다는 맥락에서 지역 사회는 유리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지역 사회의 구성원들은 공동의 생활 공간에서 일상적인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다. 일상의 공유에 기반을 둔 생활 정치는 가장 구체적인 풀뿌리 동네 단위에서부터 시도할 수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미치는 요인들을 쉽게 발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공동의 의제로 만들고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돼 해결해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작은 승리(small win)'를 지속적으로 맛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시민사회가 새로운 건강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역량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풀뿌리 단위의 의사 결정은 그 결정의 영향력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넓혀 나가는 기본 단위가 될 수 있다. 즉, 풀뿌리 단위의 의사 결정은 기초지자체 차원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아가서는 광역지방정부 차원의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이런 노력들은 지방의 권력들과 의사결정자들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일상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서울, 부산, 강원, 경북, 경남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역 주민들이 지역 사회의 건강 문제를 도출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구체적인 사업을 기획, 수행,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역의 공공 보건 인력 및 전문가들과 협력하는 이른바 '주민 참여'에 기반을 둔 건강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조그만 시도이지만, 이들 사업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일상적인 생활 정치로서 새로운 건강 정치를 지역사회에서 시도해 본 경험, 그리고 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즉 역량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면서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의 작은 승리의 기반을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초기 주체들이 필요하다. 작은 승리는 실천을 통해서만 구현되며, 이런 작은 승리들의 축적은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을 주체화하게 된다.

시민들이 건강의 주체로 개입할 수 있는 지방권력 창출해야!

이와 관련해서 최근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6월 13일 지방선거 공간을 활용하여 건강 불평등을 정책 의제화하기 위해 그간 축적해 온 시·도 및 시·군·구 단위의 건강 불평등 현황 자료를 이용하기로 했다. 건강 불평등 연구 및 정책 활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시·도 지역별로 구체적인 노력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방선거의 주요 후보자들이 건강 불평등의 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설정하게 하고, 향후 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진행할 수 있게끔 하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많은 지역들에서는 정책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언론 등이 공조 체제를 이루어 지역의 건강 결정 요인과 건강 불평등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선거 이후에도 관련 사안들과 관련된 실천을 주체적으로 지속해 나가기 위한 논의들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의 건강과 건강 불평등의 개선을 목적의식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지방 권력의 창출, 이와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시민 권력의 확대를 위한 기반의 구축, 이 두 가지 내용을 지역에서 구현하는 것이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건강형평성학회의 이런 시도가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를 시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이 과정에서 풀뿌리 동네부터 광역지자체 단위까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공공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시민들이 건강의 주체로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들과 이와 관련된 요인들이 지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조선 산업에 대한 중앙 정부의 산업정책은 거제시의 경기와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제시민들의 건강과 의료 이용에 변화를 야기한다. 이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협력업체 사장들과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복지국가 시대를 여는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

중앙 정부의 많은 결정들은 더욱 광범위하게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아가 건강 불평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중앙 정부의 주요 공공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시민사회가 하나의 주체로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지역 사회 내에서의 새로운 건강 정치 경험은 '건강은 개인의 책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집합적인 책임성과 관련된 것이며 사회적 연대와 협력에 의해 획득하고 유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는 담론과 인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한 구체적인 지역 사회 내의 실천들이 서로 만날 때 건강 정치의 새로운 국면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차원의 공공 정책 과정을 건강과 건강 불평등이라는 렌즈로 조망하고, 이 과정에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가 강력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과 관련된 국민투표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지만, 지방 분권이 시대적 과제가 된 현재의 시점에서 지역 건강 정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는 단순히 건강을 증진하고 건강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의 주체가 돼서 지역 사회의 건강 결정 요인을 통제하고, 이와 관련된 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정신과도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는 건강 불평등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고, '모든 사람의 건강'을 추구하는 사회적 환경을 창출하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서 건강권을 보장하고 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지역 건강 정치는 복지국가의 핵심적 구성 요소인 민주주의, 인권, 공공성과 같은 인간 사회가 목적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와도 연관성이 깊다. 수단적 측면에서도, 목적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의 모색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러므로 이번 6월의 지방선거가 복지국가 시대를 여는 새로운 지역 건강 정치 구현의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백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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