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서 반전으로, 남북 6대 합의 진짜 의미는…

[정욱식 칼럼] 대북특사단, 한반도 희망을 쐈다

희망의 문이 열렸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험난하고도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막장으로 치달았던 한반도 정세에 반전(反戰)과 반전(反轉)의 계기가 만들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3월 6일 문재인 정부의 특사단이 발표한 '언론발표문'은 6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1, 2, 6항은 주로 남북관계와 관련한 내용이고, 3, 4, 5항은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첫 번째 합의는 "4월 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먼저 '가장 빠른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점이다. 1차 정상회담은 김대중 정부 출범 28개월 만에, 2차 정상회담은 노무현 정부 퇴임 4개월여 전에 이뤄졌다. 반면 이번 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채 안된 시점에 열릴 예정이다. 물리적 시간상으로는 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고 또한 정상회담의 정례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둘째는 사전에 북미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되었다는 점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북미대화가 급물살을 탔었고, 2차 정상회담 이전에는 북미대화와 6자회담이 선순환을 그렸었다.

반면 3차 정상회담 합의는 북미대화는 고사하고 서로간에 거친 말싸움과 신경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나왔다. 이는 북미관계 진전을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적인 여건으로 삼았던 과거의 공식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를 견인하겠다는 남북 양측의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셋째는 '판문점 평화의집'이라는 장소의 의미이다. 여기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 최고 지도자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측 지역을 방문하는 셈이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행간의 의미가 있다.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서명된 장소이다. 그리고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된다. 하여 3차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지금처럼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정세가 지속되는 속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이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 없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 평화의집'이 선정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수석 특사인 정의용(왼쪽에서 두 번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특사대표단이 김정은(왼쪽에서 세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에 위치한 노동당 국무청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청와대

두 번째 합의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하였으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키로 하였다"는 것이다. 양측의 최고 통수권자의 핫라인 설치는 그 자체로도 우발적 군사 충돌 방지 및 긴장완화의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수시로 소통도 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정상 국가 사이의 관계처럼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3, 4, 5항은 비핵화 및 이에 대한 상응 조치와 관련된 부분들이다. 3항에서는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고 했고, 4항에서는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하였다"고 밝혔다.

5항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하였고, "이와 함께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추후의 글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몇 가지 의미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이라며 직접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면서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보장, 그리고 북미 관계정상화를 제시한 점이 눈에 띤다. 이는 과거 북한의 입장과 흡사한 것이지만, 김정은 체제 들어 사실상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선적인 관건은 '비핵화'의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에 있다. 한미일이 추구하는 비핵화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핵 폐기(CVID)'를 의미하는 반면에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는 핵보유국의 의무까지 포함하는 사실상의 '비핵지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요구하는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보장, 그리고 북미 관계정상화를 둘러싼 공방을 어떻게 조율하느냐도 중대한 관건이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의사를 밝힌 것도 주목된다. 기존에는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상응 조치로 요구했지만, 이번에는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군사훈련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인 동시에, 최소한 미국의 전략 자산 투입 및 참수작전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은 자제해달라는 요구도 품고 있다.

무력 불사용 확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측을 향해" 핵무기 불사용 약속을 한 것은 최근 미국과 한국 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종말론적 주장, 즉 북한의 핵무기 보유 목적은 적화통일에 있다는 주장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래식 무기 불사용 약속도 북한이 핵의 위력을 믿고 국지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남북한의 협의 결과에 대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반응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불안한 징후들도 발견된다. 남북한의 '탈냉전' 분위기와는 달리 "강대국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냉전'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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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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